[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귤의 계절이 왔나 보다. 학교 급식에도 자주 가는 식당의 식탁에도 새콤달콤한 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
친한 친구들이나 동료들이 커다란 귤 박스로 선물을 보내주기도 하는데 상자를 열 때마다 하는 걱정이 있다.
수십 개씩 한 데 들어 있는 귤들이 모두 온전한 모양이면 좋겠지만 들어 나르고 옮겨지는 과정에서 부딪히고 눌리고 하면서 깨지고 다친 것들이 몇 알씩 발견된다.
과일을 넣는 기술이나 상자의 재질도 전보다 나아지면서 그 개수가 조금 줄어들긴 했지만, 강도와 모양이 다른 것들이 며칠 동안 좁은 곳에서 함께 뒹굴다 보면 상처 난 귤이 몇 개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 과일가게 아주머니는 이렇게 다친 귤들을 상품성이 없다면서 따로 모아두기도 하셨고 어떤 어른들은 그런 걸 먹으면 부정 탄다고 버리기까지 하셨다.
이파리 파릇파릇하게 붙어 있는 다른 것들과 비교되어 어린 나의 눈에도 그것들은 왠지 모르게 손이 가지 않는 못난이로 여겨졌다. 크고 싱싱한 것들만 진짜 귤이라는 듯 골라 먹는 나 때문에 조금 다른 모양이 되어버린 귤은 어머니와 할머니가 도맡아서 드실 수밖에 없었다.
철이 조금 들기 시작하던 무렵엔 터진 귤을 드시는 할머니께 그런 것 말고 멀쩡한 것 좀 드시라고 말씀도 드렸지만 그렇다고 내가 대신 그것을 집어 먹을 정도로 새로운 의지를 갖추지는 못했다. 여전히 그런 귤들은 내게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조금 이상한 것들이었다.
“이렇게 생긴 것들이 더 맛있는 거란다.”라는 어른들의 말씀은 그저 어린아이들에게 더 좋은 것을 먹이기 위한 배려라고만 생각했다.
선물 받은 귤들을 스스로 정리하고 관리해야 하는 최근에서야 난 다치고 터진 녀석들을 할 수 없이 한두 개 먹기 시작했다. 살림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생각보다 그 녀석들은 맛있었다.
당연한 결과였겠지만 실제로 그것들을 맛 보기 전까지는 뭔가 싱싱한 귤과는 다를 것이라는 의심이 있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그것도 같은 나무에서 같은 양의 햇볕을 보고 자란 아무 다를 것 없는 같은 종자의 귤일 뿐이었다.
조금 심하게 다친 것들이 있긴 했지만 그것들 또한 그 부분만 잘라내면 나머지 부분은 똑같은 과육과 과즙이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어릴 적 동생들과 서로 먹겠다고 다투던 이파리 달린 모양 예쁜 귤도 다른 일반적인 모양의 것들과 맛이 특별히 다르지 않았었다.
한 상자 안에 담긴 귤 중엔 조금 더 단 것도 조금 더 신 것도 있긴 했지만, 귤 맛을 보증하는 것이 귤의 모양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했다.
손자 손녀들에게 조금 더 예쁜 것을 먹이기 위해 터진 귤이 더 맛있다고 하시던 할머니의 말씀도 진실이 아니었지만, 이파리 달린 것이 더 맛있을 거라고 착각하던 내 생각도 틀림 없는 허상이었다.
귤을 한 개씩 개별포장을 하지 않는 이상, 한 상자 안에 몇 개 정도의 이파리 달린 귤과 몇 개 정도의 다친 귤들이 존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귤들이 조금 다른 모양을 가지지만 여전히 귤이라는 존재는 같다. 그리고 겉모양은 적어도 과일의 본질인 맛을 결정하는 잣대가 되지 않는다.
난 귤 상자에서 비로소 우리들의 삶을 본다. 한데 뒤섞여 사는 사람들도 부딪히고 다투고 어울리다 보면 깨어지고 다치기도 한다.
운 좋게 이파리 달린 귤처럼 으스대는 이도 있겠고 마음 한구석을 도려낼 만큼 크게 다친 이들도 존재한다. 각자 따로 떨어져 사는 삶이 아니라면 우리들도 그 이치를 벗어날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모두 분명 인간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겉모습으로 그 본질의 우열을 가리지 못한다.
오늘 또 터진 귤 하나를 입에 넣는다. 역시 맛있다. 귤은 귤이라서 맛있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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