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에서 폭행으로 숨진 장애인 첫 민사소송… 1심 “시설장과 지자체, 배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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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방법원 동관 입구 ©더인디고
▲서울중앙지방법원 동관 입구 ©더인디고
  • 평택 미신고 시설 활동지원사에 의한 상해치사
  • 시설장·지자체·대한민국 상대 국내 첫 민사소송
  • 법원, “학대시설, 국가 제외 민사상 책임 첫 인정”

[더인디고 조성민]

미신고 시설에서 한 중증의 발달장애인이 활동지원사에게 폭행을 당해 의식을 잃고 사망한 사건에 대해 법원은 해당 시설장과 지자체에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27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6민사부는 고인의 유가족들이 시설장과 지자체, 그리고 국가를 상대로 낸 국내 첫 민사소송(사건번호 2021가합512414)에서 “미신고 시설인 평강타운 시설장과 평택시는 1억 4200만원을 유족에게 공동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단, 시설장과 평택시의 공동불법행위를 인정하되, 각각 100%와 70%의 책임을 부과했고, 피고 대한민국의 책임은 기각했다.

지금까지 장애인 시설에서 폭행이나 학대 등이 발생하면 가해자에 대한 형사 책임이나 시설폐쇄 등으로 끝났다. 하지만 이번 판결은 직원 등 시설을 관리·운영하는 원장과 해당 시설의 지도·감독 및 학대 방지 등을 책임져야 할 지자체에 민사상 책임까지 인정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장추련)에 따르면 지난 2020년 3월, 중증 발달장애인 김모(사망 당시 만37세)씨는 평택시 소재 평강타운에서 활동지원사 정모씨에게 폭행을 당해 의식을 잃고 숨졌다.

3월 8일 활동지원사 정씨는 김씨가 새벽예배 참석을 거부하자 발로 머리를 세 차례 걷어찼다. 이날 오후에도 정씨는 자신의 캔커피를 바닥에 쏟았다는 이유로 발로 머리를 또 때리자 김씨는 호흡곤란 증세를 보였고,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19일 외상성 뇌출혈 및 뇌부종으로 끝내 숨을 거뒀다.

가해자인 활동지원사는 형사재판에서 상해치사 혐의로 징역 5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하지만 장추련 등 5개 장애인 인권단체는 해당 사망 사건은 단순히 가해자의 일탈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2월 유족을 대리해 시설장뿐 아니라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평택시와 국가를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

판결문에 따르면 목사이기도 한 시설장은 2006년부터 해당 지역에 미신고 복지시설을 운영했고, 2011년에서야 해당 건물을 장애인복지시설(사랑의집)과 단독주택(사랑의교회)으로 용도를 변경했다. 하지만 2012년부터는 사랑의 교회 내에 또 미신고 시설(평강타운)을 운영하며 김씨 등 일부 거주인을 이전토록 했다.

사건 발생 당시 사랑의집과 평강타운에는 각각 4명, 14명의 장애인이 생활하고 있었다. 또한 평택시에 정식 등록된 종사자는 시설장과 딸 2명이었지만, 시설장과 사실혼 관계인 오모씨, 가해자 정씨를 비롯해 여러 명의 장애인 활동지원사가 함께 숙식하며 마치 시설종사자와 다름없이 운영한 것으로 확인됐다.

시설장은 미신고 시설 거주인의 경우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 등을 악용한 셈이다. 특히 정씨는 시흥 소재 모 협동조합의 소속임에도 이면 계약 등을 통해 관리해온 것으로 파악됐다.

▲나동환 장추련 변호사가 1심 판결에 대한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더인디고
▲나동환 장추련 변호사(사진 가운데)가 1심 판결에 대한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더인디고

소송대리인인 나동환 장추련 변호사는 “다양한 불법 운영뿐 아니라 당시 시설에서 함께 살던 10여 명의 거주인의 증언에 의하면 ‘시설장과 오씨는 폭행과 학대를 묵인하고 방조함은 물론, 직접 학대 가해행위를 자행해 왔다”면서 “주로 매일 새벽예배 등 종교 강요, 폭언, 폭행, 심지어 활동지원사들에게 ‘말을 안 들으면 입에 피가 나도록 때리라’고 시키거나 실제 때리는 시범까지 보였다”고 말했다.

나 변호사는 이러한 근거를 바탕으로 소송 당시 시설장에 대해서는 “사용자로서 정씨의 관리 감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점, 그리고 거주장애인들을 직접 폭행하거나 지시·묵인 즉 본인의 불법행위 등 2가지의 책임을 물었지만, 법원은 사용자로서의 책임만 인정했다. 하지만 현재 시설장에 대한 형사재판도 진행이라 그 결과가 나오면 불법 책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선고 후 장추련 등 장애인단체들과 유족 및 원고대리인 등은 오전 10시 30분 법원 서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사건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27일 오전 10시 30분, 장추련 등 5개 장애인인권단체 관계자와 유가족, 소송대리인 등이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있다. ©더인디고
▲27일 오전 10시 30분, 장추련 등 5개 장애인인권단체 관계자와 유가족, 소송대리인 등이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있다. ©더인디고

소송대리인 중 한 명인 김남희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공익법률센터 변호사는 “지금까지 시설 내 학대의 경우 형사 책임을 물었지만, 시설장과 지자체의 민사상 배상 책임이 인정된 것은 처음”이라며 “지자체에 장애인의 인권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향후 인권침해 발생 시 지자체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각인시킨 결과”라고 평가했다.

김 변호사는 또한 “지금까지 수많은 시설장이나 지자체, 국가 등은 우발적 사고, 혹은 직무수행 과정에서 인권침해 행위가 있다는 사실을 예견할 수 없다며 책임지지 않으려고 했다”고 전제한 뒤 “이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이번 사건의 경우 시설장은 ‘(평강타운은) 임대업을 준 것’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하지만 법원은 시설장이 사실상 동일 건물 안에서 두 시설 모두를 관리 운영했고, 활동지원사도 불법으로 고용한 점 등을 감안, 사용자의 책임을 인정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평택시와 국가(복지부)는 몇 년 전부터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아, 지속적인 학대와 사망이라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점에서 비록 국가의 책임은 기각됐지만, 과연 자유로울 수 있겠냐”고 꼬집었다.

▲김남희 변호사(좌)와 이정하 활동가(우) ©더인디고
▲김남희 변호사(좌)와 이정하 활동가(우) ©더인디고

실제 법원 판결문에 의하면 평택시 관련 공무원은 법령 따라 반기별 1회 이상 정기점검을 해야 함에도, 2018년에는 실시조차 하지 않았고, 2019년에는 연 1회 축소 실시, 그리고 2017년과 2019년 점검 당시 시설운영위와 인권지킴이단이 설치되어 있지 않음을 인지했음에도 ‘지적 없음’으로 점검을 완료했다고 명시했다.

법원도 장애인복지법령을 위반한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이 사망 사건 발생과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한 것. 특히, 해당 시설에 인가·미인가 시설이 혼재되고 그에 따라 정원 초과 등의 문제도 있다는 것을 인지, 두 차례 현장출장까지 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점을 종합하면, 피고 평택시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법원은 원고 측이 주장한 국가의 적극적인 보호의무와 장애인 거주시설의 인권실태 및 소관업무를 지도·감독할 의무가 있는 피고 대한민국에 대해선 절박하고 중대한 위험상태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상당한 우려가 있는 경우가 아닌 한, 원칙적으로 공무원이 관련 법령에서 정해진 대로 직무를 수행했다면 공무원의 부작위로 인한 국가배상 책임은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이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복지부 관계자는 ‘전국의 모든 장애인복지시설과 미신고 장애인시설의 불법행위를 파악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상식적으로 과도한 부담이기에 F등급을 받는 시설(해당 시설도 2016년, 2019년 F 등급을 받음) 등의 경우 컨설팅과 전원 조치밖에 할 수 없다’는 식으로 발언을 함으로써, 국가의 방임과 무능을 스스로 인정했다”며 “미신고 시설에 대한 최소한의 행정조치를 과도한 부담이라 말하는 국가는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2년의 재판의 시간이 흐르는 사이 전남 화순에서도 18세 발달장애인 김윤호씨가 사망했다”며 “그동안 유가족에게 한마디 사과나 반성의 태도를 보이지 않았던 피고인들에게 사망 사건의 책임으로 깊이 새겨지길 바란다”고 일침을 가했다.

한편 해당 시설에 대해선 2020년 8월, 평택시가 인권침해를 이유로 폐쇄명령을 내렸다. 시설장은 이에 불복 수원지방법원에 시설폐쇄 취소 소송을 제기했지만, 수원지법은 지난해 5월, 사랑의집과 평강타운을 하나의 시설로 인정, 시설폐쇄 처분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나 변호사는 “현재 시설장은 장애인 학대 등의 혐의로 기소돼 형사재판을 받고 있고, 또 이번 민사소송에 대해서도 항소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관련 재판에 대해 적절한 대응과 동시에 국가책임에 대한 항소도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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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장애인이 학대를 당하고 있거나 의심되는 상황에 있다면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나 경찰에 신고해야 합니다. 장애인학대 신고전화는 1644-8295(카카오톡, 문자 등) 또는 112로 신고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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