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뻐꾸기에게 감사 인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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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 사진=픽사베이
▲뻐꾸기. 사진=픽사베이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우리 학교 교문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뻐꾸기 소리가 들린다. 시각장애가 있는 학생들이 길을 잃지 않고 등교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새소리이다. 도시와는 조금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소리에 길을 지나는 어른들은 때때로 “이 동네는 산 밑이라 그런지 뻐꾸기가 참 예쁘게도 우네!”라고 하시곤 하지만 그건 그냥 스피커 소리일 뿐이다.

처음 교감 선생님께서 새소리 스피커 아이디어를 내셨을 때 난 솔직히 적극적으로 찬성하지는 않았다. 다른 시각장애인 기관들에도 있는 시설이긴 하지만 좁은 골목들 사이에 있는 우리 학교는 굳이 그런 게 필요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주 어린 학생들은 부모님과 함께 학교를 오고 조금 큰 아이들은 한두 해 다녀 본 길이 아니므로 마치 시력 좋은 녀석들처럼 어려움 없이 찾아오는데 주민들 민원 걱정하면서 그것을 설치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설치를 한 첫날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길을 찾을 수 있겠냐는 질문에 “네”라고 말씀드리기는 했지만, 그 길은 그것 없이도 충분히 찾을 수 있는 길이었다.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소리를 들으면서 출근과 퇴근을 하고 그 소리가 원래부터 있던 것처럼 익숙해져 갔지만, 그 효과에 대해서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

그날도 여느 아침처럼 출근하던 중이었다. 마을버스에서 내리고 50미터쯤 되는 길을 걷는데 예상 못 한 공사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나름의 감각으로 요리 피하고 저리 돌아가면서 학교에 가까이 왔다. 그리 길지 않은 보행로여서 어렵지 않게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 교문이 찾아지지 않았다. 왼쪽으로 내려가 보고 오른쪽으로 올라가 봐도 익숙한 입구가 찾아지지를 않았다. 제자리에서 몇 번의 맴돌기를 반복하다가 마침 출근하는 동료 선생님의 도움으로 겨우 출근 여정을 마무리했다.

억울하게도 교문은 몇 발자국 앞에 있었지만 한 번 방향감각을 잃어버린 나는 시끄러운 공사 소리와 뒤섞여 그 큰 통로를 찾을 수 없었다. 그제야 생각난 소리, 바로 뻐꾸기가 꺼져있었다. 아침이면 켜지고, 저녁이면 꺼지는 매일 만나던 그 스피커가 하필이면 그날 담당 선생님의 지각으로 동작하지 않고 있었다. 난 그제야 교감 선생님의 깊은 의도를 온 마음으로 동의하고 찬성했다.

언제라도 어떤 어려움 없이 찾아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던 그 교문도 때로는 내게 찾을 수 없는 미로가 되기도 한다. 어쩌면 평소 큰 불편함 없이 출근했던 것도 그 뻐꾸기의 도움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전거 뒤를 붙잡아 주던 어릴 적 아버지의 든든한 손처럼 그 소리는 내게 모르는 사이에 든든한 안전장치가 되어주고 있었다. 어느 틈에 살짝 놓은 그 손이 없이도 쌩쌩 달릴 수 있었지만, 예상 못 한 돌부리에 넘어질 때 내겐 그 손이 아직 필요했다. 달릴 수 있어도 아버지의 손은 언제나 내가 믿고 있는 강한 버팀목이었고 지팡이 없이도 찾을 수 있는 그 길에서도 뻐꾸기는 나의 등대였다.

살면서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수많은 뻐꾸기의 안내를 받으면서 살았다. 어릴 적 사촌 형들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을 키우고 미래를 다짐했다. 나보다 조금 더 컸던, 작은 어른들은 내가 크게 헤매지 않을 수 있는 길잡이가 되었다.

존경하는 선생님들도 사랑하는 부모님도 좋은 날에나 어려운 날에나 내겐 꺼지지 않는 스피커로 길을 알려주고 바로잡아준 뻐꾸기 등대였다. 혼자 잘나서 커버린 것처럼 으스대고 떠들었지만, 아직도 뻐꾸기 없는 내 길은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내 삶은 불완전하다.

난 동생에게도 배우고 친구에게도 배우고 제자들을 보면서도 깨달음을 얻는다. 명절을 앞둔 오늘 난 내게 가장 큰 길잡이인 가족들과의 저녁 식사를 앞두고 있다. 올 한해도 나의 뻐꾸기가 되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다. 그리고 세상 모든 나의 뻐꾸기들에게 새해에도 잘 부탁드린다고 인사하고 싶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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