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희의 창문너머] “사회적 쌍둥이” 양산을 멈출 수 있는 탈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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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장애인거주시설. 창문 쪽으로 침대와 휠체어 각 2대가 나란히 놓여있다. ©더인디고
▲중증장애인거주시설. 창문 쪽으로 침대와 휠체어 각 2대가 나란히 놓여있다. ©더인디고

[더인디고 = 이문희 편집위원]

▲이문희 더인디고 편집위원
▲이문희 더인디고 편집위원

탈시설을 원하는 장애당사자는 어떤 상상을 할까? 각자 다르겠지만 공통적으로 그동안 자신이 못 해본 것을 해볼 수 있다는 기대감 속에서 그 방법을 즐겁게 상상하지 않을까? 실제로 지역사회에서 자신이 원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는 학대 피해 장애인의 소식을 들을 때면 무척 반갑고 그 즐거움을 그대로 전달받는다. 상상을 현실로 옮긴 그 용기와 결단은 머뭇거리며 실천하지 못하는 나에게 필요하다.

그러나 나의 혼자 살기 첫 번째 시도가 실패해서 더욱 그런가? 어느 날 전화로 탈시설 지원을 했던 학대 피해 장애인이 “너무 심심해요”라는 말속에 배여 있는 외로움과 우울함은 나마저도 우울하게 만들었다. 이웃 간에 인사하기도 빡빡하게 살아가는 동네에서 오랫동안 시설에서의 삶의 패턴에 습관 들인 탈시설 장애인이 살아가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좌충우돌하며 예상치 못했던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 탈시설 장애인들이 마음을 추스르려면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럼에도 나는 탈시설의 정당성에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그동안 시설에 거주하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또는 권익옹호 업무 관련으로 장애인거주시설을 조사하기 위해 방문하거나, 거주 경험이 있는 분들과 대화는 해봤지만 내가 직접 거주한 경험이 없기에 시설 안에서의 장애인의 삶이 어떤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2016년에 독일에서 발간된 “조직 변화를 통한 탈시설하기”라는 자료를 접하게 되었다. 히틀러 집단에 의해 유대인들이 학살당하기 전 수만 명의 시설장애인들이 먼저 학살당한 아픔을 경험한 독일이기에 시설장애인들의 삶의 자리를 어떻게 분석했을까? 궁금해졌고 부제를 읽어보니 자립생활과 장애인 참여의 관점에서 작성된 연구물이었다.

이 자료는 독일의 복합장애인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이 겪는 특징을 세 가지로 제시하였다. 그 세 가지는 사회적 차단, 시설 내 권력과 폭력, 장애화의 가속이다. 이것이 독일의 복합장애인시설만의 특징일까?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장애인거주시설에서는 사회적 차단이 일상적으로 발생한다고 한다. 낮 시간 동안 시설에 머물지 않고 매일 지역사회 프로그램에 거주장애인들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는 시설도 일부 있지만 거의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 장애인은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집단의 일부로 여겨지기 때문에 인격체로 존중받기 어려운 환경이다. 이는 시민적 자아가 존중받지 못한다는 의미이고, 너와 나 그리고 그와의 사회적 접촉을 통해서 자신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사회적 지평선”도 점점 없어지게 된다.

시설 내 장애인들의 하루 일과는 입소하면서 만나게 된 “운명적인 가족”과 함께 정확하게 정해진 계획에 의해서, 한 장소에서,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기관의 목적에 부합되는 합리적 계획이라는 명분 아래 강요된 활동을 요구받는 경우도 있다. 외부 세계와의 접촉이 매우 제한되어 있고 계획에 의해서만 외부 세계와의 접촉이 가능하다. 갑자기 피자 한 판 먹으러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시설 내에서도 사회화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외부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사회화에는 전혀 미치지 못한다.

입소 결정 과정에서 이미 장애인과 시설 간의 권력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거주장애인들을 위한 사적 공간이 제공되지 않는 상태이며, 이러한 공간적 특성 아래 권력과 폭력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장애인들이 시설에 거주하는 동안 일상에서 보장되어야 할 권리, 동등하고 다양한 관계를 맺을 권리, 교육‧노동‧경제‧문화‧복지서비스를 누릴 권리 그리고 시설 퇴소 단계에서 누려야 할 권리들이 시설의 형편, 운영기준, 절차상 등의 이유로 빈번하게 무시되기도 한다. 특히 경제적 착취와 신체적 학대, 성적 학대, 정서적 학대가 발생해도 그 구조적 원인은 해결될 기미가 안 보인다.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에게 해야 할 것들을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는 시설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시설에서 거주하는 장애인의 삶은 종종 장애화를 가속한다. 시설에서 제공되는 프로그램을 통한 혜택을 받기 위해 시설과 프로그램의 기준에 충족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장애인들은 자기 자신을 평가절하하는 특성을 보이고 과도한 적응과 학습된 무능력을 종종 나타내기도 한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될 경우 신체적‧심리적‧정신적 이차 장애의 발현이 나타나고 악순환은 반복되어 장애화가 가속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미 언급한 것만 보더라도 관료적 조직을 통해 관리되는 장애인거주시설은 공통적으로 “사회적 쌍둥이”가 되어 버렸고 그곳에서 거주하는 장애인의 삶도 사회적 쌍둥이로 변해버리고 있다. 자신의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탈시설은 이러한 사회적 쌍둥이의 양산을 멈출 수 있다.

장애인거주시설이 장애인들에게 좀 더 인간적이고, 좀 더 사회적이고, 좀 더 좋은 삶의 질을 제공하는 방안은 없는 것일까? 결국 없다고 판단되었기에 복지 선진국에서는 탈시설 정책이 도입되고 있다. 우리 사회도 국가정책으로써의 탈시설을 논의하고 있고 장애인 탈시설 지원 로드맵이 발표되었다. 하지만 그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문투성이다. 탈시설 실현에 관한 진솔하고 다양한 질문들이 없었거나, 아니면 외면되었기 때문일 듯하다.

우리가 탈시설을 주장하면서 질문하고 점검해 봐야 하는 것은 무엇이며, 그 해법의 수혜자는 과연 누가 될까?

[더인디고 THE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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