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나는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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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퍼보드를 잡고 있는 사람ⓒunsplash
▲클래퍼보드를 잡고 있는 사람ⓒunsplash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배우들은 연기자로 살면서 다양한 역할의 배역을 경험한다. 재벌 2세가 되기도 하지만 가난한 청년이 되기도 한다. 덩치 큰 조폭 역할을 하던 배우가 어느새 수십 킬로의 살을 빼고 난치병 환자가 되기도 한다. 강인한 신체 능력을 보여주는 운동선수였던 배우는 뇌병변 중증장애인 역할을 맡기도 하는데 스스로의 선택이지만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수락하거나 얼떨결에 촬영이 시작된 경우도 있다.”고 고백한다.

간절히 원해서 얻어낸 역할이든 피할 수 없어 할 수 없이 하게 된 역할이든 배우들은 극이 끝나는 순간까지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하기만 할 것 같은 재벌의 고뇌도, 뼛속까지 악하기만 할 것 같은 범죄자의 속마음도, 죽어가는 이들의 삶을 대하는 태도도 순간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연기자들의 모습들로, 우리는 이에 공감하고 응원한다.

악한 캐릭터를 보면서 분노하기도 하고 어려운 상황에 놓인 배우를 보면서 안타까워하기도 하지만 깊이 들여다볼수록 모든 역할에는 저마다의 의미가 있고, 그래서 그것은 극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일부가 된다.

40년 조금 넘게 산 내 삶도 배우들의 연기자로서의 시간과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을 한다. 유복한 가정에서 남부러울 것 없는 부잣집 도련님 역할도 맡았지만, 사춘기 나이에 장애를 받아들이고 괴로워하는 안타까운 역할을 마주하기도 했다.

학교 앞 주점에서 청년들의 미래를 고민하던 어느 대학생 역할도, 처음 학생들을 가르치던 20대 교생 선생님 역할도, 가족 드라마의 평범한 장남 역할도, 멜로드라마의 남자 주인공 역할도 모두 내가 받아들었던 대본 속 역할들이다.

유투버이면서 교사이면서 글을 쓰는 요즘은 여러 채널에 등장하는 잘나가는 배우처럼 다양한 역할을 동시에 소화하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그랬을 것이고 내가 아는 모든 이들도 그랬을 테지만, 배우들이 그렇듯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역할은 원해서 그런 것도 있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도 있다.

살다 보니 배역이 주어졌고 또 살다 보니 다른 역할이 부여되었다. 내가 연기하는 역할 중 대학생이나 교사 같은 배역은 다른 이들도 해 보고 싶은 것이었을 수 있겠으나 30여 년 장기적으로 소화하고 있는 시각장애인 역할은 특별히 독특한 이가 아니라면 하고 싶은 배역이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했다고 했던들 그것을 피할 수는 없었을 것이고 살아보니 그 배역 또한 나름의 매력이 있다. 공부 잘하는 꼬마 모범생 역할도 신나고 즐거웠지만, 그 나름의 고민은 있었다. 마찬가지로 장애인 역할이 시작부터 끝까지 우울하고 힘든 것만은 아니다. 그냥 단지 모든 역할에 명과 암이 있는 것일 뿐이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다양한 역할도 모두 그 법칙을 벗어나지 않을 뿐이다.

어쨌든 극은 시작되었고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배역에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역할이 주어질 것이고 우리는 멈출 수 없는 연기를 해야 한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원하는 역할도 있고 거부하고 싶은 역할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도 우리는 마음에 드는 것만을 선택할 수는 없다.

우리는 계속적으로 다른 역할들을 받아들고 항상 그 다름에 충실해야 한다. 다행인 것은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그 모든 다름에는 나름의 깊은 존재의 의미가 있다. 우리가 좋아하는 명배우들의 연기가 배역에 관계없이 멋졌던 것처럼 말이다.

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내 삶 속의 배우이다. 내가 받아든 대본들 속에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는지 조금 더 살펴보아야겠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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