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석의 잡썰] 거룩한 속물들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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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휠체어 사용 장애인들이 이동권 투쟁을 위해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를 위해 지하철을 타고 있다. ©더인디고
▲(전동)휠체어 사용 장애인들이 이동권 투쟁을 위해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시위를 위해 지하철을 타고 있다. ©더인디고

[더인디고=이용석 편집장]

이용석 편집장
▲이용석 더인디고 편집장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연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 때리기에 여념이 없다. 바로 어제(31일)도 이 대표는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전장연의 “불법적 시위 방식을 중단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 정치가 “지금 젊은 세대들이 바라는 그리고 서울 시민들이 바라는 정치의 방법”이라고 했다. 또 현재의 기성 정치가 “애초에 장애인 관련 문제 같은 것은 건드리지 말라는 문법”이라면서 “앞으로 적극적으로 정치권이 개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장애인 이동권 문제가 ‘20년이나 기다려온 동기도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대해선 “5.18, 여순사건, 4·3 이런 것들은 70년 가까운 아픔이 있었던 분들이고요. 광주 같은 경우 40년 가까운 아픔이 있었던 것이고 세월호 사건만 하더라도 굉장히 긴 기간 동안 진상규명을 요구하시는 분들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분들이 최대 다수의 불편을 야기해서 본인들 의사를 들리게 했다는 얘기를 저는 들어보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점입가경이다.
이제, 이 대표는 국가폭력으로 자행된 근현대사의 불행한 역사적 사건들과 사회적 참사까지 예로 끌어들여 또 다시 최대 다수의 불편을 야기한 전장연의 시위가 ‘불법 시위’ 방식이라며 비난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국가폭력 사건 진상을 위한 수많은 사람의 분투와 노력이 한순간에 최대 대수의 불편을 야기하지 않는 한에서만 정당성을 얻었던 소극적 항의 정도로 폄훼되었다. 5.18 민주화운동은 민주화를 요구하는 광주시민들의 시위를 ‘불법 시위’로 규정해 무력으로 진압한 군부독재의 만행이었고, 여순사건과 4.3제주사건은 그 피해자들이 그동안 ‘빨갱이’로 몰릴까 진상규명조차 요구하지 못했던 역사적 사건들이며, 광화문에 설치되었던 ‘세월호 기억공간’은 ‘시민 불편’을 이유로 철거되었다.

이 대표가 누누이 강조했던 “최대 다수의 불편”은 또 어떤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주장했던 공리주의자 제레미 벤담의 말을 비틀어 인용하고 있는 듯한데, 문제는 공리주의가 개인의 희생을 오히려 강화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노예를 잃은 노예주들의 “최대 다수의 불편”이 노예의 자유와 행복보다 크다면 노예제는 정당화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장애시민의 자유로운 이동으로 불편을 느끼는 비장애시민이 다수라면 공리적 이유로 장애시민의 이동권 제한은 정당화된다. 오직 다수 집단의 행복 총합에만 관심을 두는 벤담의 이론은 필연적으로 개인의 행복은 무시되고, 이때 다수의 행복에 의해 짓밟히는 개인은 힘없는 소수자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 근현대사는 ‘시민 불편’을 핑계로 ‘자유’를 억압받아 왔다. 민주화 운동이 한창 거셌던 1987년 6월 9일 당시 전두환 정권은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하고 불순 좌경세계들이 민주헌정체제를 부정하고 ‘국민생활을 희생시키려는 저의’가 숨겨져 있다면서, “범법행위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처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시민들의 ‘불법 시위’는 계속되었고, 마침내 6월 29일 노태우의 수습안 발표로 대통령 직선제로의 개헌이 이루어져 1987년 12월 16일 새 헌법에 따른 국민직접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했다. 말하자면 우리가 마음껏 향유하고 있는 현재의 민주주의 체제 또한 이 대표가 그토록 혐오하고 못견뎌 하는 ‘불법 시위’를 통한 시민들의 저항권 행사의 결과다. 이 대표의 ‘시민 불편’ 주장을 들으면서 당시 군부독재가 입버릇처럼 내뱉던 으름짱을 기억해낸 건 유독 나뿐이었을까? 대법원도 이미 2019년 “집회나 시위는 다수인이 공동 목적으로 회합하고 공공장소를 행진하거나 위력 또는 기세를 보여 불특정 다수인의 의견에 영향을 주거나 제압을 가하는 행위로서 그 회합에 참가한 다수인이나 참가하지 아니한 불특정 다수인에게 의견을 전달하기 위하여 어느 정도의 소음이나 통행의 불편 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은 부득이한 것이므로 집회나 시위에 참가하지 아니한 일반 국민도 이를 수인할 의무가 있다”[대법원 2009.7.23.,선고, 2009도840, 판결]고 판결한 바 있다.

이번 논란으로 각 집단의 속물적 민낯들과 정치인들의 민낯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그동안 잠자코 있던 장애인 이동권 등 권리보장을 대변해 왔다는 장애인단체들도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진영을 구분해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 지난 5년간 정부와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도 느닷없이 장애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관련 정책 개선에 적극 나선단다. 또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안철수 위원장은 자신이 정치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소외받고 힘든 분들을 도와드리기 위해서였다”면서 이 대표와 선긋기에 나서고 있다. 게다가 국가인권위원회도 삭발 등 ‘합법 시위’로 투쟁방식 바꾼 전장연의 현장을 찾아간다고 하니 오늘이 만우절인 게 분명한 모양이다.

어쨌거나 이 대표가 페이스북 정치질로 전장연의 이동권 시위 방식을 폄하하고 공격한 덕분에 그동안 비장애시민들에게 큰 관심을 받지 못했던 장애인 이동권 문제 등이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이슈가 됐다. 서울교통공사의 보도자료나 베끼던 주류 언론들이 왜 장애시민들이 시위를 하는지, 장애시민에게 이동권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 자세히 보도하고 있다. 장애시민의 권리보장 요구를 대하는 지금의 전환된 호의적 태도가 어쩌면 이 대표의 주장대로 “젊은 세대들이 바라는 그리고 서울 시민들이 바라는” 공정한 사회를 위한 정치일 것이다.

거룩한 속물들의 정치적 행위의 결과지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만큼 장애인단체들은 부디, 이준석 대표에게 ‘공로상’이라도 수여해 치하할 일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소설 대신 세상 풍경을 글로 그릴 작정입니다. 사람과 일, 이 연관성 없는 관계를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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