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호의 차별 속으로] 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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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아리ⓒPexels
▲병아리ⓒPexels

– 장애인차별철폐에 맞서 싸우는 이들에게 –

[더인디고=이민호 집필위원]

이민호 집필위원
▲이민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장모님 댁에 부리 위아래가 일치하지 않는 병아리가 태어났습니다.

병아리는 아등바등 사료와 물을 쪼아 먹었습니다. 살아내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는 모습에서 경이로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워 보였습니다. 제가 품고 있는 생각과 감정을 떠나 병아리는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만 집중했습니다. 다른 병아리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함이 아니라 오롯이 자신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한국의 장애인 분류 체계에 의하면 ‘병아리’는 안면 변형으로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 ‘안면 장애인’ 정도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장애를 갖고 사투를 벌이는 병아리 위로 함께 활동하는 장애인들의 얼굴이 겹쳐졌습니다.

거리 위에서 절규하는 ‘입과 입들’, 삐뚤어진 몸을 뚫고 나오는 뜨거운 ‘눈빛과 눈빛들’, 잘려나간 머리카락 사이로 생살을 들어낸 ‘머리와 머리들’이 들어찬 장애인 활동가들의 얼굴 말입니다.

비정상성과 정상성이라는 진지한 고찰까지 나아가지 않더라도 장애로 인해 빚어지는 조건들을 그림자처럼 달고 다니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장애인들의 모습은 병아리와 매우 닮았습니다. 물론 장애를 정체성으로 수용했다가 거부하기도 하고 고통을 촉발하는 원인으로 생각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한 혼란이 ‘약함’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해결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강함’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강함’, 그 강함의 표상이 바로 ‘장애인차별철폐의날’입니다.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날’은 장애인을 대상화하는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일방적인 시선으로 장애인을 동정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이날은 장애인의 권리를 외치며 매일이 투쟁임을 선포하고 차별과 억압의 사회구조를 폭로하는 날입니다. 주변 선입견에 흔들리지 않고 당당히 자신의 삶을 살아내는 병아리들이 함께 연대하는 날입니다. 하지만 이날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지난 50여 년간 이날의 이름은 여러 차례 바뀌었습니다. 장애인 당사자 운동이 크게 성장하던 1970년, 국내 장애인 단체가 통계적으로 가장 비가 오지 않는 4월 20일을 ‘재활의 날’로 정하고 기념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유엔이 1981년을 ‘세계 장애인의 해’로 정하자, 전두환 정권은 ‘장애자의 날’로 지정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장애인을 위한 것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군사 쿠데타로 얼룩진 정부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양의 탈을’ 쓴 것뿐이었습니다.

이후 1989년 장애인복지법이 개정되면서 ‘장애자의 날’은 ‘장애인의 날’로 변경되었고 정부기념일로 지정되었습니다. 공식 기념일로 지정되고 이름이 바뀌었지만, 장애인의 삶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장애를 고려하지 않는 노동 시장, 사회보장제도를 충분히 보장하지 않는 국가에 의해 쫓겨난 장애인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길거리를 전전했습니다. 사회 정화를 이유로 장애인들은 수용 시설에 격리되어 있었습니다.

그러한 현실은 외면한 채, 단 하루 체육관에 장애인들을 모아놓고 기념행사를 진행했습니다. 집과 시설에 처박아 두었던 장애인들을 공원에 데려가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것처럼 포장했습니다. 그리고 장애인에 대해 무관심했던 언론이 장애인의 인권을 다루었고 불쌍한 장애인을 돕는 후원 행사를 진행하였습니다.

장애인의 날이었지만 장애인들은 액세서리에 불과했습니다. 정치가와 기업가들은 자신들의 대중적 이미지를 아름답게 포장하기 위해 이용했고, 모르쇠로 일관하던 공무원들은 장애인수용시설, 장애인복지관 등에 방문하여 장애인을 위하는 척했습니다. 하지만 이날 이후 사리사욕을 챙긴 사람들은 밀물처럼 빠져나갔습니다.

1년 365일 차별과 억압 속에 살아가던 장애인들에게 이날은 큰 의미가 없었습니다. 휘황찬란한 행사를 진행해도 장애인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사회구조는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현실에 염증을 느낀 장애인들은 시혜와 동정의 상징인 장애인의 날을 거부하고 2002년부터 매년 4월 20일 장애차별철폐를 외치며 투쟁에 나섭니다. 단 하루가 아니라 매일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 말입니다.

그 투쟁이 올해 20주년을 맞이했고, 긴 세월 동안 비뚤어진 병아리와 같은 장애인들은 자신들과 동료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는 굵직한 제도와 법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누군가의 시선과 편견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모습 그대로 그 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리고 걸어나갈 것입니다.

모든 병아리에게 존경을 표하며 건강히 오래 함께 활동하기를 기원합니다.

이 땅의 모든 병아리의 건투를 빕니다.

[더인디고 THE INDIGO]

대구 지역 다릿돌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권익옹호 팀장으로 활동하는 장애인 당사자입니다. 국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장애 인권 이슈를 ‘더인디고’를 통해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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