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인수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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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분해 문제를 풀고 있다.ⓒ더인디고
▲인수분해 문제를 풀고 있다.ⓒ더인디고
  • 많이 틀려야 잘 풀린다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중학교 3학년 수학책엔 인수분해 단원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더하기와 빼기로 연결된 다항식은 여러 가지 규칙을 이용하여 곱으로 연결된 새로운 식으로 만들어진다. 규칙성을 찾기 힘든 식들을 간단하게 정리하거나 방정식의 해를 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학생들은 하나하나의 인수분해 방법을 공식이라는 이름으로 암기한다.

완전제곱식, 합차공식… 등의 별칭으로 불리거나 1번 공식, 2번 공식으로 명명된 방법들을 처음 접하는 아이들은 어디선가 소문으로 들었던 ‘인수분해’의 등장에 대체로 긴장을 하지만, 생각 외로 간단하게 해결되는 기본 유형들을 풀어내면서 조금의 자신감을 갖는다.

내 수학 교사 경력을 통해 만난 제자들을 보면 2번 공식까지는 대부분 ‘이렇게 쉬워도 되는 건가?’라고 생각하다가, 3번 공식에 들어가면 ‘그래도 할만한데!’쯤의 감정을 느끼다가, 4번 공식에 들어가면 ‘역시 수학이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구나!’라고 결론을 내린다.

그런데 이 ‘4번 공식’이라는 게 재미있는 것은 acx2+(ad+bc)x+bd=(ax+b)(cx+d)라는 복잡해 보이는 모양과는 다르게 운이 좋으면 너무 쉽게 단번에 풀린다는 것이다. a, b, c, d에 들어갈 숫자들은 문제를 많이 풀다 보면 감으로 빠르게 찾아낼 수 있지만, 처음 보는 복잡하게 얽힌 조합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우의 수 중 어떤 것을 대입해 볼지 각자의 느낌대로 찍어볼 수밖에 없다.

a, b, c, d에 들어갈 만한 수들의 조합 중에서 하나씩 택하고 전체식에 대입해 본다. 운 좋게 한 번에 딱 맞는 수를 찾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두 번, 세 번, 네 번 숫자와 부호를 바꿔가면서 새로운 대입을 시도해야만 한다.

처음 해 보는 학생들은 두세 번 시도하다가 이전에 실패한 시도를 잊어버리고 반복해서 같은 시도를 하기도 하고 스스로가 찾아낸 정답을 풀이 중에 잊어버리기도 한다. 틀리고 또 틀리는 과정은 머리 아프고 지루하지만, 학생들은 그런 연습을 거치면서 실패를 견디는 힘을 늘리고 오류의 횟수도 줄여간다.

오늘 수업에서는 운 좋은 학생들이 속출했다. 첫 번째 문제도 두 번째 문제도 처음에 대입한 숫자들로 정확히 인수분해에 성공했다. 아이들의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려고 했지만 난 오히려 걱정이 커지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세 번째 문제에서 첫 번째 시도한 숫자로 인수분해가 뜻대로 되지 않자 아이들은 급격히 동요하기 시작했다. 적당히 아무 숫자나 넣어도 문제가 풀린다는 착각 속 자신감은 작은 벽에 부딪혔을 때 독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다른 숫자로 다음의 시도를 해야 했지만, 처음의 시도로 풀리지 않았다는 실망감에서 쉽사리 벗어나지를 못했다.

오히려 처음 두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애를 먹은 아이들은 세 번째 문제의 시행착오에서 담담하게 다른 경우의 수들을 대입해 갔다. 네 번째 문제, 다섯 번째 문제를 풀고 열 번째, 스무 번째 문제도 풀면서 아이들은 각자 다른 시간의 벽을 마주하고 조금씩 그 벽을 넘어서는 것에 익숙해져 갔다. 운 좋게 초반의 시도로 답이 쉽게 나오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역시나 그 아이들은 다음번 만나는 벽을 유난히 어려워했다.

풀고, 틀리고, 다시 풀고, 실수하면서 답을 찾아가는 시간은 여러 문제를 거치면서 아이들의 문제 푸는 실력을 단단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중3 친구들은 조금 더 많은 연습을 하고, 그것으로 이차방정식을 해결할 때도 지금의 시행착오를 발판 삼아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이다. ‘근의 공식’이라는 조금 더 편리한 도구를 손에 넣을 수도 있겠지만, 그때마저도 인수분해를 익히는 인고의 시행착오는 분명 단단한 근육으로 작용할 것이다.

운이 좋은 시간이 언제까지나 계속된다면 좋겠지만 절대로 그럴 수는 없다. 주어진 문제 앞에서 우리는 언젠가 벽을 마주할 것이고 그러기 위한 시행착오는 해를 찾는 원동력이 된다. 우리가 오늘의 시행착오에 감사해야 하는 이유는 그런 실수들이 분명히 우리가 마주할 더 큰 어려움을 넘어설 힘이 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삶의 해를 풀어내기 위해선 수많은 오류의 시간이 필요하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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