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석의 세상풍경] 세월호, 기억의 연대와 그 아련하고 서글픈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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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 내 삶의 위치에서 보이는 열 가지 풍경, 다섯

[더인디고=이용석 편집위원]

당신과 공유했던 그날

이용석 더인디고 편집위원

친애하는 당신
당신도 봄을 살고 있나요? 나는, 꽃이 지천인 봄을 살면서도 그저 먼발치로만 세상을 구경할 뿐입니다. 햇살이 지천인 봄을 살면서도 그저 담벼락 한귀에 걸린 꽃 그림자에 등 기대고 세상을 무연히 바라만 볼 뿐입니다. 골목 어귀 돌담불 한 끝에 노랗게 핀 앉은뱅이꽃 한 무더기가 나와 함께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 꽃은 꽃불 길이가 고작 손톱 끝보다 작아 앉은뱅이라 이름 붙은 꽃, 한창 꽃을 피워도 애써 찾아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아 앉은뱅이라 불리는 꽃입니다. 앉은뱅이꽃을 보면 그날이 기억납니다. 그날도 오늘처럼 앉은뱅이꽃을 보았거든요.

당신도 기억하고 있나요?
6년 전 오늘, 우리는 막 피어나기 시작한 250여 명의 어린 꽃들을 잃었습니다. 이제 막 움트기 시작한 그 작은 꽃들이 모두가 똑똑히 지켜보는 상황에서 그야말로 바다 속으로 가뭇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그 처참한 광경을 목도하면서 처음에는 당황스러웠고, 안타까워 발을 동동 굴렀으며 분노에 치를 떨었습니다. 그리고 이내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을 만큼 무력감에 몸서리를 쳤습니다. 그날의 무력감을 지금도 살갗이 아릴만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저 단순 사고인줄만 알았습니다. 거친 파도로 기우듬히 맴돌이치는 여객선으로 해경의 경비정들이 다가가는 모습이 보이고, TV화면을 가득 “전원 구조”라는 자막이 커다랗게 뜰 때만 해도 다행이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내 다시는 돌이켜 생각하고 싶지 않은 광경이 펼쳐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6800t급 규모의 여객선이 고작 두 시간 남짓한 순간에 완전히 물속으로 가라앉을 수 있을까요?

그렇게 우리는 그날의 목격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유가족들과 함께 슬퍼했으며, 분노했습니다. 진상 규명을 위한 시위에도 함께 했습니다. 정말 궁금했습니다. 침몰하는 세월호 주변을 돌던 해경의 경비정들은 도대체 왜 아이들을 구조하려 하지 않았을까요? 승객 전원 구조라는 언론의 오보는 어떻게 나왔을까요? 그리고 사상 최대의 구조 작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허위 보도했던 언론들의 속내는 도대체 뭘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참 어이없게도 6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진실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살아남은 자들의 졸렬함

친애하는 당신, 당신도 보았지요?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이 그동안 어떤 모욕과 수난을 겪었는지… 단식하는 유가족에게 찾아가 피자와 자장면을 폭식하며 희롱하고 온갖 모욕을 퍼붓던 짐승 같은 자들, 하나님이 세월호를 침몰시켜 국민에게 기회를 준 것이라며 황당한 기도를 했던 파렴치한 종교인들, 유족들이 보상금을 더 많이 챙기려고 게정을 부린다는 정치인들. 그리고 그날 허위 보도를 일삼던 몇몇 언론들은 이제 노골적으로 그만 징징대라고 짜증을 부립니다. 더 큰 문제는 그 자들이 만들어낸 패러다임에 부지불식간에 동의해 버리고 말았던 우리의 무책임일 것입니다. 이제 그만 잊자는 살아남은 자들의 무신경한 발언들은 세월호를 그저 각 개인들의 불운과 불행으로 몰아 사회적 책임의 몫을 희석하고 회피하려는 졸렬하고 비겁한 행태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세월호는 추모와 기억의 대상이 아니라 모욕과 혐오의 대상이 된 듯합니다. 세월호의 감춰진 진상 규명은 점점 요원해졌고 허망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유가족들은 그날의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지만, 함께 슬퍼하고 분노했던 우리는 이제 한걸음 옆으로 슬쩍 자리를 피하거나 아예 뒷걸음치며 ‘무관한 방관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유가족을 대변했던 몇몇 사람들은 그 명망에 힘입어 국회의원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세월호는 우리들의 기억에서 차츰 지워지고 있는 듯합니다. 어쩌지요? 우리, 그날을 이렇게 무심하게 잊어도 되는 걸까요?

역사가 되기 위한 기억들

세월호는 유가족에게는 영원히 치유되지 않은 상처일 테고, 지금을 산다고 해도 그들의 시간은 여전히 6년 전, 4월 16일에 멈춰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세월호는 이제 오직 그들의 기억에만 머물러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세월호의 아이들과 그 유족들에 대한 상응한 예의와 위로를 한 번도 진심으로 보여주지 못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말로써 상처를 헤집고, 싸늘한 외면으로 화해와 용서를 강요해 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476명을 태운 세월호가 거친 파도에 떠밀려 수면 아래로 조금씩 가라앉던 그 두려운 풍경, 서럽도록 안타깝고 참혹했던 그날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은 그날을 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생생히 기억하고 되새기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 두렵기 만한 풍경과 맞서고 고통을 기억하며, 진실의 기원을 찾기 위한 노력을 통해 추모해야 합니다. 입에 올리기에도 민망한 일이지만 그래야만 상처는 치유를 위한 정화(淨化)를 준비할 테니까요. 우리는 그날을 기억할 것입니다. 아니, 기억해야 합니다. 당신과 나, 우리 모두의 기억들이 모여야 세월호는 진실규명을 해야 하는 역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친애하는 당신
오늘도 나는 봄을 살겠습니다. 지천으로 핀 온갖 꽃들과 눈부시게 환한 볕살 대신에 어두컴컴한 골목 한 귀에 몰래 핀 앉은뱅이꽃과 함께 봄을 살겠습니다. 그리고 앉은뱅이꽃이 새봄을 향해 넌지시 알은 체하는 제비꽃으로 불리기를 기도하면서 살겠습니다.
우리, 그렇게 살자고요.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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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d1220@hanmail.net'
정신덕
1 year ago

그 날의 그 분노 스럽고 무력했던
내 마음은 갈기갈기 ᆢ 그 처참했던
모습을 어떡케 잊을수가 있겠습니까?
기억합니다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