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날개 다친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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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 안의 새들ⓒPixabay
▲새장 안의 새들ⓒPixabay
  • 누구를 위해 던지는 먹이일까?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날개를 다친 새가 있었다. 사나운 짐승의 공격을 받았는지 새는 더 이상 오랫동안 날 수가 없었다. 길을 지나던 사람들에게 발견된 새는 치료를 받고 안전한 새장으로 옮겨졌지만, 날개만큼은 완벽히 회복되지 못했다.

커다란 새장에는 친구들도 있었고 충분히 먹을 만큼의 먹이도 주어졌지만, 오랫동안 날 수 없는 새는 왠지 모르게 안타까워 보였다. 보살핌 덕분으로 깃털은 더욱 윤기가 흐르고 눈빛도 초롱초롱해졌는데도 유난히 그 새가 안쓰러워 보이는 것은 다친 날개 그것 하나 때문이었다.

높은 곳까지 한 번에 올라갈 수 없는 그 새를 위해 일정한 높이마다 쉬어 앉을 수 있는 받침나무도 만들어졌다. 새의 다친 날개는 새장 안에서만큼은 더 이상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여전히 안타까움을 담고 있었고 그 마음의 표현은 먹이를 하나 더 던져주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새에게는 더 이상의 특별한 관심과 먹이가 필요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마음 씀은 그 크기와 모양이 달라지지 않았고 그것은 먹이를 던지는 자신의 안타까운 마음을 위로하는 도구로 이용되었다.

자세히 보니 새장에는 다른 모양으로 다친 새들도 있었다. 다리가 부러진 새들도 있었고, 한쪽 눈을 다친 새도 있었다. 사육사들은 작은 의족 같은 것을 만들어 주기도 했고,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새들이 부딪힐 것을 대비해 푹신푹신한 충격흡수제를 벽마다 붙여놓기도 했다.

새들은 새장 안에서만큼은 불편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먹이가 던져졌고 사람들의 시선은 걱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는 경쾌하고 밝았지만, 그마저도 사람들은 울음소리로 여겼다. 건강한 날개와 다리 그리고 밝은 눈이 있었다면 조금 더 좋았을 수는 있었겠지만, 사육사들의 적절한 조치들로 야생이 아닌 보호 새장 속 새들은 그마저도 느끼지 못할 만큼 편안해져 있었다. 다만 그들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빛만이 여전히 슬플 뿐이었다.

사람들은 스스로 벌레를 잡지 못하거나 높은 하늘을 훨훨 날지 못하는 새들을 야생의 새와 비교하여 동정하지만, 그들에게 그런 능력은 더 이상 동경의 대상이 아니다. 새장 안의 따뜻한 환경 속에서도 새들은 야생의 새 이상으로 행복할 수 있다. 다만 그 모양이 조금 다를 뿐이다.

나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지만 나 또한 야생을 살아가지는 않는다. 멀리 있는 사냥감을 사냥하거나 맹수를 피하는 것에 있어서 다른 이들보다 불편할 수 있지만, 지금 내게 그런 능력은 필요하지 않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문명사회는 커다란 새장처럼 안전하고 편리한 울타리 안에서 우리를 살게 했다.

뛸 수 있고 볼 수 있다면 더 좋을 수 있지만 그런 것들이 아니어도 함께 사는 것에 지장이 없도록 세상은 변해왔고 또 변해가고 있다.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하는 것도 가고 싶은 곳을 마음껏 가지 못하는 것도 문명사회의 시각장애인에겐 야생의 인간들에 비해서 큰 걱정거리가 아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새장 속 다친 새들을 바라보듯 내 삶을 바라본다. 도움을 주려 하고 마음을 표현하려 하지만, 그것은 새장에 던져지는 먹이처럼 실제로 내가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날개를 잃은 새도, 다리를 다친 새도 불편하지 않도록 새장을 고치는 것처럼 내가 사는 세상을 누구도 불편하지 않게 만든다면 문명 안에서 장애는 더 이상 불편함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문명 사회의 야생성을 기준으로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불편할 뿐이다.

안전한 새장 속 새들은 더 이상 우리가 먹이를 던지지 않아도 행복하다. 건강한 문명 속 나도 그렇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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