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호의 차별 속으로] 투명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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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디자인=이민호
▲투명인간. /디자인=이민호
  • 임의적 존재

[더인디고=이민호 집필위원]

이민호 집필위원
▲이민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2년 전 휠체어를 이용하는 동료들과 함께 회의를 진행하기 위해 사무실 인근 카페에 갔다.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여서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일들을 상의하고 있었다. 우리는 주변에 피해를 주는 것이 싫어서 낮은 목소리로 대화했다. 한참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옆자리에 앉아 있던 남성 손님 두 명이 큰 목소리로 “여 와보소, 할 말 있어.”라며 직원을 불렀다.

이윽고 “중요한 이야기 하는 데 휠체어 다른 자리로 옮기면 안 되나?”라고 말했다. 그것도 우리가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말했다. 열이 받지만 항의하기에 모호한 분위기, 대거리할 기운도 없어 힘껏 노려보며 눈으로 불쾌한 감정과 욕을 전달했다.

쭈뼛거리며 다가온 직원이 자리를 옮겨 줄 수 있는지 물었지만, “우리도 돈 냈고, 먼저 자리 잡았어요.”라며 한마디로 거부했다. 물론 무례를 범한 손님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목소리로 말했다. 직원이 그분들에게 해주어야 할 말을 우리가 한 것이다.

휠체어가 아닌 이름을 가진 ‘사람’인데 물체로 치부 당했다. 마음속으로 ‘중요한 회의를 하러 왔는데 자기들 이야기만 중요한가?’, ‘타인의 공간을 자기들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것인가?’, ‘왜 당사자들에게 직접 말하지 않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일었다. 불가촉천민으로 대하는 무례함이 너무 불편했다. 마치 ‘투명인간’이 된 느낌이 들었다.

장애인들을 마주할 필요가 없고 지워야 할 존재로 여기는 것 같았다. 생각이 거기에 다다르자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정책과 예산을 수립하지 않은 ‘국가’로 인해 ‘집’과 ‘시설’에 고립되어 살아가는 장애인 동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드러나고 싶지만, 드러날 수 없는 ‘사람들’ 말이다. 장애인을 무능력한 존재로 치부하고 동등한 인격체로 바라보지 않는 시선에서 기존 사회가 가지고 있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었다. 더 나아가 그러한 인식의 합이 정부 정책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어 등골이 오싹해졌다.

지역에서 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데에는 많은 조건이 필요하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이다. 일상의 모든 과정은 이동이 전제되어야만 가능하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은 지금 당장 운행 중인 모든 버스와 지하철이 멈춘다고 상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이동이 시민이 누려야 할 기본권이라는 것에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동권’이라 불러 마땅하다. 이동권은 그 자체로도 권리이지만 교육, 문화, 여가 등의 권리가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권리를 위한 권리’이기도 하다.

이동권을 법률로 명시하고 있는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개정안이 재석 228명 중 찬성 227명, 기권 1명으로 2021년 12월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권리를 누리기 위한 관문이 이동권인 만큼 장애인들에게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우선 이 법에서 말하고 있는 교통약자의 의미는 장애인, 고령자, 임산부, 어린이 등을 포함하여 일상생활에서 이동 불편을 느끼는 사람을 말하는데 전체인구(5,183만 명)의 약 29.7%인 1,540만 명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장애인만을 위한 법률이 아니라는 뜻이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시내·마을버스 등을 대·폐차 시 계단이 없고 경사판이 설치된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 ▶경사로나 리프트가 설치되어 보장구 이용 장애인의 탑승이 쉬운 특별교통수단의 시·군 간 이동을 원할히 하기 위한 광역이동지원센터 설치 의무화, ▶모노레일과 케이블카 등을 교통수단에 포함하는 내용이다. 대통령령 및 국토교통부령 개정, 세부기준 마련 등을 고려하여 공포 후 1년 뒤인 2023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하지만 도로 구조·시설 등이 저상버스 운행에 부적합할 때는 버스를 도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단서가 달려 운송사업자의 적극적인 노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저상버스 의무 도입 대상을 ‘시내버스’와 ‘마을버스’에 국한하고 있어 버스를 통한 시외 이동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또한, 특별교통수단의 지역 간 이동권 증진을 위해 광역이동지원센터에 대한 중앙정부의 운영비 지원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지만, 법률상 문구가 ‘해야 한다’에서 ‘할 수 있다’로 명시되었다. 쉽게 말해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임의규정’이 되어 버린 것이다. 지자체마다 예산 수준의 차이가 있는 상황에서 중앙정부의 지원이 없다면 지역 간 이동권 격차는 좁혀지지 않을 것이며, 장애인들의 이동권은 개선되지 못할 것이다.

세상 속에서 장애인이 가시적인 존재가 되어 이웃으로 호흡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권리를 위한 권리’인 이동권이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 문서에 명시된 문구가 아니라 실질적 예산으로 보장하여야 한다.

장애인은 ‘존재할 수도 있는 투명인간’이 아니라, ‘존재해야 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비문명적인 것은 존재를 지우는 것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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