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손해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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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일 가게 주인(사진 우측)에서 사과 하나를 건네고 있다./사진=픽사베이
▲ 과일 가게 주인(사진 우측)에서 사과 하나를 건네고 있다./사진=픽사베이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남의 것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하고 틈만 보이면 코도 베어갈 것 같은 각박한 세상이지만 시장에서만큼은 아직도 후덕한 인심을 느낄 수 있다. 백 원은커녕 10원 한 푼도 양보할 수 없다는 듯 정찰가격표 붙이고 도난 방지 센서까지 장착한 백화점의 삭막한 물건들과는 다르게 시장의 상품들은 말만 잘하면 몇 개라도 더 집어 갈 수 있다는 듯 무방비 상태로 펼쳐져 있다.

남지 않는 장사가 어디 있겠냐만은 시장의 아저씨 아주머니들은 “이거 손해 보고 주는 거야.” “한 개 더 줄게”라며 손해 보기 경쟁을 벌이신다. 깎고 또 깎고 덤까지 두둑이 얻어내고 나서야 흥정이 마무리되는 가게에서는 물건 팔아주고도 미안한 맘으로 돌아선다. 실갱이 하는 척 결국 져 주시는 주인어른의 손해 장사는 재구매를 부르고 어느 틈에 단골을 만든다.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라도 더 가지고 싶어 하고 조금이라도 이익을 보기를 원한다. 인정하는 이 별로 없긴 하겠지만 그것을 반대로 이야기 하면 상대방이 하나라도 덜 가지고 약간이라도 손해를 보기를 바라는 것이다. 다른 가게보다 하나 더 얹어주고 500원 더 싸게 파는 집을 찾는 것도 좋은 말로는 정 많고 인심 좋은 집이라서 찾는다고 하지만 결국 돌려서 이야기 하면 나 대신 손해 보는 장사하는 집을 찾는 것이다.

하나가 둘 되고 둘이 또 넷이 되는 오병이어의 기적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서 나에게 플러스는 누군가에게 분명 마이너스가 되어야만 그 질량의 보존이 성립된다. 하나라도 더 가져야 하는 것이 모두의 숙명인 세상에서는 당연하게도 손해 보는 가게가 맛집이고 가지고 싶은 거 양보하는 이가 호감형 인간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인간관계 잘하는 방법에 대한 자기계발서들이 넘쳐나지만 생각보다 답은 간단하다. 도저히 저렇게 장사해서는 남는 게 없을 정도로 깎아주고 얹어주는 인심 좋은 시장 아저씨처럼 내어주고 양보하는 손해 대장이 되는 것이다. 친구에게 장난감 양보하는 꼬마, 밥값 한 번이라도 더 내는 친구, 대중교통에서 자리 양보하는 청년, 말하기보다 들어주는 어른이 사랑받는 이유는 손해를 즐기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나눔은 부담스럽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겠으나 그것은 그 베푸는 마음 이면에 또 다른 욕심이 보이거나 상대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거짓 손해이기 때문이다. 식당 사장님의 서비스가 누가 보더라도 손님 모으기 위한 얕은 상술이거나 낯선 이성에게 무작정 건네는 선물이 구애라는 뚜렷한 목적이 있다면 그 자체로도 부담이지만 주는 이에게 손해도 받는 이에게 이득 또한 되지 않는다.

내게 필요하지만 진정 욕심 내려놓고 나누는 것이라면 또한 그것이 상대에게도 꼭 필요한 것이라면 그것은 어떤 상황이더라도 관계를 나아지게 만드는 특효를 발휘한다. 처음 가보는 낯선 시장 과일가게에서 건네주는 예상 못한 사과 하나의 덤이 마음을 푸근하게 녹아내리게 한다. 그것은 내게도 맛있는 과일이지만 사장님에게도 그랬을 것이고 그는 내게 그것을 하나 더 줄 의무 같은 것은 더더욱이 없었다.

단지 당신의 가게를 찾은 한 명의 손님에게 작지만 진심 어린 나눔을 했을 뿐이고 그것은 아주 작은 손해가 되었을지는 몰라도 한 사람의 큰마음을 얻는 것으로 작용했다. 난 과일이 먹고 싶어질 때 그 가게를 떠올릴 것이고 받은 마음을 갚기 위해서라도 한 번쯤 다시 사장님을 뵈러 갈 것이다. 혹시 과일이 꼭 필요한 날이 아니더라도 가게를 그냥 지나치기가 미안할 것이고 그것은 또 한 번 과일을 사는 행동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아저씨는 과일 하나만큼의 손해를 보는 용기를 내심으로서 한 사람을 단골로 만드는 마음을 얻으셨다. 사장님의 마음은 진심이었고 내 마음은 진정으로 움직였다. 손해를 즐기는 이의 관계는 풍성해진다. 다만 다시 강조하건대 손해 보는 이에겐 다른 의도가 없어야 하고 진정 손해여야 하고 받는 이에겐 이익이 되는 일이어야만 한다.

관계를 얻고 싶다면 마음의 단골이 되고 싶다면 손해 보는 일을 즐겨하자. 손해 경쟁에서 이기는 자만이 사람을 얻을 수 있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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