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노래하는 이들이 배워야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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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버 ‘버럭 중사’로 알려진 이원준씨 공연하는 모습. /사진=유튜브
▲유튜버 ‘버럭 중사’로 알려진 이원준씨 공연하는 모습. /사진=유튜브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길고 긴 코로나19 터널의 끝이 보이면서 밴드 “플라마”에게도 섭외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어느 작은 장애인 복지관에서 오는 연락도, 지방 도시의 행사 무대도, 유명 연예인과의 콜라보도 2년 넘게 공연을 쉰 밴드에는 귀가 솔깃한 제안들이지만, 흔쾌히 응해 드릴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기도 하다.

각자의 직장에서 일하는 우리 멤버들은 그간의 시간 동안 나름의 일정들로 일주일을 꽉 채웠고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은 코로나도 연습실 방문을 주저하게 만든다. 준비되어 있지 않은 아마추어 직장인 밴드의 상황이 소중한 요청들에 다 응할 수 없게 만들지만, 그때마다 밴드의 공연 본능이 울렁거리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결국 적극적 구애를 보내주신 한 무대에 덜컥 오르기로 승낙을 하고 말았다. 구애나 승낙이라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알고 보면 내 입장에서 더욱 감사한 초대였고 기다리던 무대였다. 풀 밴드로는 도저히 오를 수 없는 여건이라 플라마 최초 피아노 반주로만 노래하는 것으로 협의했다. 한두 곡 정도 스트링 세션이 붙긴 했지만, 건반 하나에 노래를 싣는 것은 또 한 번의 도전이기도 했다.

박자를 맞추는 것도, 느낌을 살리는 것도,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내 목소리와 피아노 단 두 개의 악기로 만들어야 했다. 6명이 하던 것을 두 명이 하려니 멤버들과 함께하던 소중함이 새삼 떠올랐다.

”이 부분엔 드럼이 있으면 너무 좋은데…“

”기타랑 베이스가 있어야 울림이 있는데!!“

”하모니카와 코러스가 없으니 허전하네!!“

아쉽지만 그렇다고 어쩔 수도 없는 일이라 주어진 조건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잘 부르지도 못하는 노래지만 기교를 넣고 소리를 높이고 목에 힘이 점점 더 들어갔다. 몸도 흔들어 보고 선글라스도 꺼내고 쓰지 않던 모자도 한 번 써 보았다. 시답지 않은 농담으로 멘트도 준비하고 관객들의 호응과 박수를 유도할 계획도 세웠다. 채우고 또 채우고 더하고 더하는 작업을 끊임없이 찾고 실행했다. 전문연주자인 출연진들과 함께하는 공연이라 나도 전문가인 척 하고 싶었다.

공연엔 유튜브 썰준을 함께 하는 버럭 중사님 순서도 준비되어 있었다. 노래를 전문적으로 하는 분은 아니지만, 이벤트 무대로 함께 하기로 하셨다. 폐활량이 절반도 남지 않은 사지마비 장애인에게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무대에 서서 노래한다는 것은 웬만한 용기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예상대로 중사님의 호흡은 길지 않았고, 멜로디 없는 코드 반주에 노래를 차분하게 이어가시는 것 또한 어려워하고 계셨다. 처음이라는 극도의 떨림으로 반주를 놓치기도 하고 가사를 잊어먹기도 하던 버럭 중사의 노래는 심지어 공연 도중 멈췄다 이어가는 곡절까지 겪었다. 어렵사리 노래를 완성하고 무대를 내려오는 그에게 관객들은 최고의 찬사와 환호를 보내주었다.

그것은 동정이나 위로의 박수가 아니었다. 그의 노래에는 감동이 있었고 사람들을 울컥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진심이 담겨 있었고 듣는 우리의 가슴에 그 마음이 묻어났다. 읊조리듯 조용하게 부르고 있었지만 걱정하지 말라고 노래하는 그의 선율에 위로가 되었고 어깨를 쫙 펴라고 응원한다는 그의 목소리엔 거역하지 못할 힘이 있었다. 조금 더 예뻐 보이려고 조금 더 기교를 넣으려고 하는 내 노래와는 큰 차이가 있었다.

영상으로 공연을 본 보컬 전공 동생에게 잘 봤다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오빠 너무 잘했어. 그런데 노래는 중사님처럼 말하듯 그렇게 부르는 거야. 노래하는 사람들이 배워야 하는 게 바로 그것이야. 오빠는 언제든지 멋 부리면서 부를 수 있으니 중사님처럼 한 번 해봐“

버럭중사의 무대에 감동한 것은 평범한 관객들만이 아니었다. 노래 전공자로서도 진심을 담은 그의 노래는 전문가가 배워야 할 만큼 훌륭한 것이었다. 내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옷도 언변도 기교도 아닌 진정성 담은 노래였다.

때로는 큰 목소리보다 작은 속삭임이 더 크게 들린다. 마음 담은 편지는 값비싼 보석 선물보다 큰 힘을 발휘한다. 대형 공연장의 최고 음향보다 소극장의 단출한 무대가 호소력 짙게 느껴지는 것도 그렇다. 더 꾸미려 하기보다 더 날것을 드러내는 노래를 불러야겠다. 더 채우려 하기보다 더 덜어내고 진심으로 사는 삶을 살고 싶다.

▶유튜브 https://youtu.be/V-pe2Va9dMo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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