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남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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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심, 기대, 사회 등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사람 ⓒ unsplash
▲ 의심, 기대, 사회 등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사람 ⓒ unsplash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오랜만에 방문한 친구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준비한 것과 사서 간 것들은 꽤 양이 많아 보였지만 이런저런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한 종류, 두 종류씩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때마침 우리의 배도 더 이상의 음식을 수용할 수 없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기에 부족함 없게 모임은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익숙하지만, 이상한 멘트는

“배도 부른데 과일이랑 아이스크림 좀 먹을래?”

배가 부른데 거기다 소화를 시키기 위해 무언가를 더 넣는다는 것은 말하는 이도 듣는 이도 정상적 논리구조가 아니라는 것을 알긴 했지만 묻는 이도 진심이었고 “좋아!”라고 응답한 우리도 예의 때문에 억지로 화답한 것이 아니었다.

어른들을 따라서 이것저것 열심히 먹던 그 집 조그만 꼬마 녀석도 눈을 반짝이며 함께 좋아했다. 그런데 작은 배가 한계에 도달했는지 “배가 불러서 큰일이네.”라는 말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가스레인지에 여전히 끓고 있는 무언가를 보더니 엄마에게 “가스 불을 계속 켜 놓아서 내가 소화되지 않는가 봐.”라고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가스레인지의 전원과 그 아이의 소화능력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었지만, 꼬마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었고, 먹을 수 없을 만큼 배가 부른 상태였고, 그것은 스스로 느끼기에 유쾌하지 않았고, 그 원인을 다른 무언가로 전가하려는 본능이 발동한 것이다.

엄마와 아빠는 손님들을 봐서라도 친절하게 달래고 설명해 주려고 했지만 꼬마 녀석의 투정도 쉽게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모든 손님이 돌아간 이후에 그 아이에게 내려질 부모님의 결정이 오래전 나의 경험으로 볼 때 그리 긍정적 예후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이는 아직 가까운 미래를 예측할 선행경험이 없었기에 내 걱정은 어떤 도움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그저 안타까움으로만 남겨져야 했다.

나처럼 혼자 사는 이들은 집에서 어떤 물건이 없어지면 스스로 ‘어디에다 두었을까’를 고민한다. 그런데 친구라도 다녀가면 똑같은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누가 내 물건을 건드린 거야?’라는 원망의 대상부터 찾는다. 그 대상이 가족처럼 좀 더 친근하고 편한 상대라면 ‘분명히 그 인간이 내 것을 만졌을 거야.’라고 확신하기까지 한다.

나의 물건은 혼자 있을 때에도 이따금 잃어버렸고 둘이 있건 셋이 있건 내가 사용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지만 곁에 누군가가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 추가되면 용의선상에서 난 까맣게 제외된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도 안 좋은 상황과 마주할 때도 몸이 아플 때도 혼자 있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 원인을 제공한 다른 누군가를 창조해 낸다. 전국민적 재난 상황인 코로나에 걸려도 내게 옮긴 누군가를 찾고 둘 사이의 연애가 잘 안되어도 언젠가 함께 만났던 이에게서 불행의 실마리를 찾으려 한다. 의학적 지식이 없어도 장애가 발생한 것은 대체로 의료사고 일거라고 확신하고 교통체증이 일어나는 것도 생각 없이 차를 끌고 나오는 이들 때문이라고 확언한다.

그렇지만 분명한 사실은 꼬마 아이의 배가 스스로 먹은 음식 때문이었던 것처럼 내게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들은 나로 인했을 가능성이 확률적으로 가장 높다. 낮은 가능성으로 다른 이가 물건을 옮겼을 수도 있고 또 다른 사람들의 잘못된 판단들로 자기 삶이 불편해졌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해야 할 일은 그 원인을 제공한 범인을 찾는 것보다는 나 자신의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하는 쪽이어야 한다.

아이는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해 소화를 빠르게 할 방법을 어른에게 묻거나 건강을 위해 더 이상의 음식을 먹지 않는 판단을 해야 했다. 물건을 잃어버렸다면 기억을 더듬어 그것이 있을 만한 곳을 찾아보거나 옆에 있는 이들에게 도움을 청해야 한다. 여러 방법을 동원해도 찾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그는 누군가를 원망하는 대신 잃어버린 물건을 쿨하게 포기하는 선택을 해야 한다. 그것이 물건과 함께 사람마저 잃는 결과를 막을 수 있다.

만약 정말로 다른 이의 잘못으로 내가 불편을 겪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벌어진 일이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범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일을 해결하는 것이다. 범인을 잡는다 하더라도 우리가 일계급 특진을 할 리도 없고 그것은 어떤 모양으로든 자신에게 더 좋은 결과로 나타나지 않는다.

내게 좋지 않은 일이 생겼다면 오히려 내게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처럼 행동해야 한다. 수많은 이들의 도움과 영향으로 내가 어떤 성과를 냈다 하더라도 내 머릿속은 내가 흘린 그간의 땀과 노력으로 꽉 차게 된다.

눈물이 흐르고 감회를 새롭게 하면서 도와주신 분들을 언급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 최고의 기여자는 나임을 스스로 믿는다. 나의 일과 성취를 나의 입장에서 가장 깊게 고민하는 것은 나이기 때문이다. 부른 배도 잃어버린 물건도 아픈 내 몸도 나 때문이다.

우리가 함께 존재한다는 것은 내 잘못을 다른 이에게 돌리기 위함이 아니다. 우리가 주변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좋은 일이 생겼을 때처럼 행동해야 한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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