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석의 잡썰] 개와 늑대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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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을 등지고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는 동물 ⓒ더인디고 편집
▲석양을 등지고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는 동물 ⓒ더인디고 편집

[더인디고=이용석 편집장]

이용석 편집장
▲이용석 더인디고 편집장

오랜만에 나선 나들잇길은 설레면서도 떠름했다. 야외 거리두기가 풀린 도로는 붐볐고 거리마다 사람들이 지천인 탓에 괜히 나섰다 싶어 건짜증이 일었다. 일찌감치 시작된 더위로 늦봄 햇살은 지나치게 뜨거워서 살갗에 닿는 느낌이 바짝 마른 광목처럼 까슬하다. 그를 본 게 코로나19가 창궐하기 훨씬 전이니 어느새 이태나 지난 셈이니 막상 대하면 꽤 반가울 텐데도 길 나서는 채비가 여간 번잡스러워 한숨이 절로 나왔다.

바람이 어지간히 거셌다. 좁게 보폭을 줄여 주춤대며 걷는대도 숨돌릴 새도 없이 부는 바람에 헐렁한 바짓가랑이가 깃발처럼 바람을 싸안아 몇 번이고 비틀거렸다. 드세게 몰아치다 훌쩍 줄행랑을 치는 봄바람 끝어름에 그의 조붓한 등이 보였다. 달팽이처럼 좁은 어깨를 동그랗게 웅크리고 식당에서 내놓은 참마루 끝에 앉아있던 그가 나를 알아보고는 히물쩍 웃어 보였다. 반갑다기보다는 그저 무탈하게 잘 지냈구나, 하는 안도의 표정으로 읽혀 나도 비슷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공무원 생활 무려 30년 만에 팀장으로 승진했다며 한 턱 내겠다는 그의 제안에 웬일인지 내 혀끝이 바싹 타들어 갔다. 그가 사겠다는 점심 한 끼쯤이야 그리 대수로운 대접이 되겠냐만 남들은 과장이거나 동사무소의 동장쯤은 족히 되었을 짬밥에 고작 팀장이 되었다고 너털웃음을 짓는 그의 과장된 기쁨이 나를 그에게로 부추겼다.

“죽어버리겠다고 했어.”

아니나 다를까 그는 섬뜩한 말을 대수롭지 않은 듯 내뱉더니 앞접시에 담긴 고기 한 점을 집어 입안에 욱여넣으며 히죽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코로나19가 막 창궐할 즈음 달았던 팀장 자리를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내부 반발을 사 빼앗기고 절치부심하던 차에 목숨을 걸고 임기 막바지인 구청장과 담판을 지었다는 거였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고 이내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한숨은 그의 승진에의 절박감이 이뤄진 탓이고, 팀장이라는 사회적 위치를 갖기 위해 목숨까지 건 그의 무모함이 어이없었던 탓이다.

장애를 가진 몸으로 그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왔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공장을 다니다 장애인 공무원 임용제도가 생기자 응시해 지방공무원이 되었다. 민원창구에 배치되어 최일선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그리고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업무능력이나 성실성과는 상관없이 그의 승진은 늘 미뤄졌다고 한다. 후배들이 자신을 앞질러 팀장이 되고 과장이 되는 꼴을 보아오면서도 그는 그 불합리한 상황과 차별적 대우를 억울했지만, 견뎌냈다고 했다. 썽썽이-그는 여전히 비장애인을 그렇게 부른다-들과 부딪쳐 생활하는 동안 장애인이라 밥값 못한다는 뒷말을 듣지 않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박박 기며 일 했지만 능력과 평판만으로 승진은 어려웠다고 하소연했다. 이제 쉰이 넘고 정년이 가까울수록 조직은 무언의 퇴직 압박을 주면서 왕따를 시키더니 마땅히 주어져야 할 팀장 자리마저 빼앗는 걸 보니 정신이 퍼뜩 났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정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지금이 ‘개와 늑대의 시간’, 즉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온 자신을 위해 딱 한 번이라도 무언가를 결정해야 하는 때였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고 병약해지면서 느려진 판단과 점점 심해지는 장애로 인해 더 굼뜬 움직임, 어느 때에는 죽을 만큼 힘이 들어 직장을 때려치우고 싶었지만 끝내 그 유혹을 떨쳐낼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존재 가치의 증명을 단 한 번은 해야 할 것 같아서 참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선거 준비가 한창인 구청장을 찾아갔고 난색을 표하는 구청장에게 만약 팀장을 할 수 없다면 죽어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는 것이다.

장애를 가진 그는, 장애가 승진의 걸림돌이 되자 죽음을 걸고 담판을 지었다. 또 어떤 이들은 장애를 가진 가족을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자신은 죽지 못해 살인자가 되었다. 전자의 죽음은 신체적 ‘정상성’만을 노동자로 인정하는 우리 사회의 위계를 깨뜨리기 위한 스스로에 대한 폭력이라면 후자는 ‘비정상’이라는 표상 안에 처박혀 평화로운 세상에서는 지워지거나 숨겨진 ‘장애’를 드러내기 위한 폭력적 복수극이다.

빛이 어둠으로 바뀌는 시간은 비록 짧겠지만 개와 늑대를 구분할 기회는 여전히 많다. 그러니 부디 살아남기를, 비록 누추하게 견디는 시간이 힘겹더라도 살아남아야 싸울 수 있고, 싸울 수 있어야 이 졸렬한 배제와 차별의 세상에 돌이라도 한 번 던질 수 있을 테니까. 멀리 석양을 등지고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는 동물이 내게 사랑을 주러 오는 개인지, 아니면 나를 물어뜯으러 오는 늑대인지 구분할 수 없는 순간이 왔다. 자,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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