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만나야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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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나뭇잎을 내보이고 있다.ⓒ픽사베이
▲서로 다른 나뭇잎을 내보이고 있다.ⓒ픽사베이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어릴 적 난 정말 많이도 혼나면서 자랐다. 하지 말라는 것엔 괜한 호기심을 느끼고 위험한 일은 도전해 보아야 직성이 풀렸다. 욕심이 많아서 동생이나 주변에 양보도 잘하지 못했다. 내가 하는 행동들을 보면 주변 누구나 조만간 혼나게 될 것을 알았지만, 심지어는 나마저도 나의 두려운 미래에 대해 예측하고 있었지만 본성이 가진 관성은 그때마다 지적 통제의 범위를 벗어났다. 난 여지 없이 혼났고 덕분에 우리 어머니는 사촌 동생들 사이에서 무서운 엄마의 대명사로 통했다.

학교에서도 난 다툼이 많은 아이였다. 많이 가지고 싶고 많이 이기고 싶은 성격은 충돌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장난기가 많아서 선생님께 혼나는 것도 여기저기 다치는 것도 1등이었다. 당연히 어머니는 학교에 단골처럼 불려오셨고 난 그날 저녁 또 혼났다.

어느 때인가는 ‘왜 세상은 나를 몰라주나?’라는 생각도 했고 ‘어른들은 나만 미워하나?’라는 고민도 했지만, 담임선생님이 여러 번 바뀔 때마다 어머니와 의견일치를 보이셨다는 것은 내 행동이 일반적인 규범의 방향을 향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가 되었다. 에디슨이 달걀을 품었던 것처럼 훗날에 무언가 큰일을 하기 위한 생산적 지적 호기심의 발현이었다면 그나마 좋았겠지만 돌아보건대 꼬마였던 나의 일탈은 그리 생산적이지도 않았다.

혼나야 했고 고쳐져야 했다. 정말 다행인 것은 나의 인성이나 지적 능력이 최악의 상태는 아니었으므로 지적받고 경고받고 혼나고 또 지적받고 경고받고 혼나고를 반복하면서 조금씩 행동거지가 일반의 범위로 돌아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동생에게는 양보도 해야 한다는 것, 선생님과 어른들에겐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것, 친구들과는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것도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깨달아갔다. 특수학교에 입학했을 때도 완전치 못한 나의 장애인식은 수많은 시행착오로 이어졌고 때로는 작은 다툼으로 번지기도 했다. 난 나의 장애에 대해 잘 몰랐지만, 선배들이나 친구들이 가진 장애에 대해서는 더더욱 몰랐다.

부딪히면서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해보면서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실수하면서 이러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겪으면서 예의를 배웠다.

대학에 입학했을 땐 감수성 없는 친구들이 또 다른 나의 성장을 도왔다. 장애에 대한 경험이 없는 동기들 사이에서 난 배려 받아야 하는 상황들이 적지 않게 존재했다. 강의실 위치는 어디인지, 식탁 위에 어떤 반찬이 놓여있는지, 다른 친구들은 술잔을 들고 있는지 난 친구들의 눈에 의지하는 시간이 많았다. 그렇다고 언제나 모든 것을 배려 받을 권리가 나에게도 애초부터 없었다. 모든 것을 나에 대한 양보로 채운다는 것은 우리들의 관계가 친구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난 장애 감수성 없는 친구들의 안내 보행을 받으면서 부딪히고 다치기도 했지만 그런 상황들 속에서 일정 부분 나의 이해가 필요했고 안 보이는 나에게 설명을 생략한 채 모든 안주를 다 먹어버린 모임도 있었지만 그것도 껄껄 웃으며 쿨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했다.

친구들과 나 사이에는 다름이 존재했고 우리는 서로의 다름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그래서 양보와 이해와 그것들 사이의 선이 필요했다. 그것들은 누군가가 정밀하게 정해놓은 교재나 규칙으로는 전부 설명할 수 없어서 우리는 만나면서 또 다투기도 하고 마음 상하기도 하고 오해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우리는 모두 역시나 최악의 인성이나 지적 능력을 지니고 있지는 않았으므로 조금씩 알아가고 그보다 조금 더 빠르게 가까워졌다.

사람은 관계없이 살아가기 어려운 사회적 동물이다. 다름이 있는 우리들이 한데 모여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다툼과 실수가 존재한다. 처음부터 다 잘 알면 좋겠지만 그런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릴 적 내 동생들이나 친구들도 나보다 조금 덜 혼났을 뿐 우리는 다 혼나면서 자랐다. 책으로 다 배울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좋겠지만 과거의 상황들을 기준으로 기록한 글자들이 미래의 예측 못 할 모든 상황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다만 참고할 뿐이다.

난 가족 안에서 인간으로서 사는 법을 처음 배웠고 친구들을 만나면서 그것들을 조금씩 성장시킬 수 있었다. 가족들이 있었기에 친구들을 만났기에 난 실수도 많이 했지만, 그 안에서 다른 이들과 관계하는 법을 배웠다. 감수성 없는 비장애 친구들을 만났기에 함께 사는 방법을 알았고 내 친구들 또한 장애라는 다름을 알았다. 생각이 다르고 생김이 다르고 자란 환경이 다른 이들이 모두 함께 사는 현실 세상은 늘 다툼이 존재한다.

어른인 우리는 누구에게 혼날 자격이 잘 부여되지 않는다. 우리가 서로를 알고 성장하려면 용기 있게 만나고 부딪히고 다투고 실수해야 한다.

만나야 배우고 그래야 다투고 그래야 성장한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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