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위.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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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준의 다름알기] 큰 수의 법칙

By 안승준

June 13, 2022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통계학에 ‘큰 수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시행의 크기를 충분히 늘리면 사건이 발생할 확률은 수학적 확률에 수렴한다는 이론이다.

주사위에서 1의 눈이 나올 확률은 6분의 1이지만 6번 던졌을 때 1의 눈은 나오지 않을 수도 있고 한 번보다 훨씬 많은 수로 나올 수도 있다. 수학적 확률대로 딱 한 번 나올 가능성은 오히려 희박하다. 그렇지만 그 횟수를 6번이 아닌 600번, 6천 번, 6억 번으로 늘리면 결국 1의 눈이 나올 확률은 6분의 1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이론에 대해 이해하기 힘들거나 반론을 제시하는 분들을 위해 자세한 논리적 근거를 설명하고 싶지만, 수학을 깊이 논하는 것은 대다수의 독자에게 글의 몰입을 방해함을 알기에 생략하기로 한다. 어쨌거나 단순하게 말하자면 주사위를 반복해서 던지다 보면 여섯 번에 한 번쯤은 1이 나온다는 주장이다. 동전을 계속 던지다 보면 결국 앞면과 뒷면이 각각 반 정도 나온다는 이야기도, 수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면 남성과 여성의 비율도 1:1일 것이라는 논리가 법칙의 예시일 수 있겠다.

흔한 여론조사에서부터 큰 기업들의 자료조사 방법에까지 이 이론이 이용되는 걸 보면 현실에서 그 주장은 꽤 믿을만한 논리로 인정을 받는 것 같다.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확률 낮은 도전의 연속이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하고 싶은 일이나 공부를 하는 것도 무언가를 성취하고 꿈을 이뤄가는 과정들이 다른 이들에 비해 대체로 낮은 성공률을 갖게 된다. 많은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지만, 그 대상은 장애와 장애인을 불편하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여야 하고 다양한 꿈을 꾸지만 역시나 눈이 보이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들로 확률을 좁힌다.

여전히 장애인을 불편하게 느끼는 이들이 있고 장애로 인해 할 수 없는 것들은 존재한다. 상처받고 낙심하는 일들이 습관처럼 쌓여가지만 다행인 것은 장애를 가진 내가 원하는 일도 그 이루어짐의 가능성이 0%인 경우는 없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불편한 마음 가져 본 적은 적지 않지만 내 주변엔 인간미 가득한 좋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보이지 않아서 하지 못한 일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난 하고 싶은 것들을 충분히 누리고 살아간다. 주사위를 여섯 번 던져서 1의 눈이 나오지 않을 수는 있지만, 60번 던지면 10번 정도는 나올 수 있고 그래도 나오지 않았다면 600번이고 6000번이고 던지다 보면 1의 눈은 나올 만큼 나오는 것처럼 0이 아닌 우리의 성공 확률은 우리의 시행이 거듭될수록 그 경우의 수를 늘려간다. 우리의 시도에 비해 그 성취의 숫자가 너무 작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될 것이 없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확률이 아니라 남아있는 성공결과의 수이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이들이 나에게 좋은 사람이라면 더 좋을지는 모르겠으나 난 내 주위에 존재하는 좋은 이들의 수로도 과분하고 그것은 내게 호의적이지 않은 숫자가 그보다 몇 배나 많은지와 전혀 관련하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일들 모두 하면 얼마나 더 행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난 지금 내가 하는 일들만으로도 내 삶에 충분히 만족하고 그것 역시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에 영향받지 않는다.

주사위를 던지다 보면 우리가 원하는 숫자는 언젠가 나온다. 그것을 몇 번 던져서 나왔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계속 만나다 보면 분명 좋은 인연들은 쌓이고 시도하다 보면 내가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들도 그 수를 늘려간다. 시행의 숫자를 늘리는 단순한 일만으로도 원하는 것들은 이루어진다.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 ‘큰 수의 법칙’을 믿고 몇 번 더 아니 몇백 번 더 부딪혀보자. 계속 던지다 보면 주사위에서 1의 눈이 연속으로 나올 수도 있듯이 이루지 못했던 도전들이 언젠가는 연속으로 술술 풀리는 마법을 만나게 될 것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