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분배의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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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과 분배/사진=픽사베이
▲성장과 분배/사진=픽사베이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어릴 적 외가 동네에서 여러 이모 가족과 옹기종기 모여 살던 나는 사촌 동생들과도 한 가족처럼 지냈다. 유난히 손주 사랑 지극하시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댁은 우리 꼬마 무리에겐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일 등교하는 종일반 어린이집과 같았다.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온종일 재잘대는 미인가 보육시설엔 녀석들의 부모님이 번갈아 보내주시는 간식과 장난감들이 끊이지 않았다. 수혜자의 머릿수보다 넉넉하게 제공되는 지원 물품엔 소유할 이의 이름이 적혀있는 것은 아니어서 그것의 분배권리는 유일하게 수 개념을 가지고 있던 내게 주어지곤 했다.

“은상이 하나, 희빈이 하나, 나희 하나, 은영이 하나, 희섭이 하나”하며 나누던 물건들은 수를 세는 수고를 하고 있다는 이유로 그리고 몸집이 조금 더 크다는 이유로 내 중심적인 편파 분배가 되곤 했다. 내가 가진 우월적 권리에 대해 작은 머리로 나름의 합리화를 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단순한 욕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동생들보다 몇 개 더 가지는 것이 형이나 오빠로서의 차등적 권위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같지만, 몇 개 더 가졌다고 동생들이 나를 더 따르거나 존경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당연한 이치이겠지만 난 내가 가질 몫마저 동생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형 대접을 받는 면에서도, 어른들의 사랑을 받는 면에서도 더 나았을 것이다. 더욱이 나의 행동이 어리석었던 것은 어른들이 제공해 주신 간식과 장난감의 양은 우리가 모두 충분히 가지고도 남았을 양이었기에 난 굳이 욕심을 낼 필요도 없었고 쓸데없는 덤은 상하거나 거추장스러워지는 것으로 그 끝을 맺기까지 했다.

때로 어른들은 우리에게 심부름 같은 과제를 주시거나 장기자랑을 시키기도 하셨는데 그때마다 주어지는 커다란 포상들도 당연히 머리 하나만큼은 더 컸던 큰형의 몫이었다. 내겐 두둑한 용돈이 생기고 또 충분한 선물을 줬지만, 이제 와서 생각건데 그것은 내게 분배의 권리가 주어진 것이었지 독재적인 소유권을 부여한 것은 아니었다. 난 동생들과 공평하게 가진 것을 나눠야 했고 내게 주어진 것은 그러기에 충분했으며 그것을 나눠줄 때 비로소 정말 형다운 형일 수 있었다.

요즘 물가가 무서울 정도로 오르는 것이 몸으로 느껴진다. 친구와 둘이 칼국수나 짜장면을 먹었을 뿐인데 만 원짜리 몇 장을 꺼내야 하고 서너 명만 모이는 회식이라도 카드 명세서의 자릿수가 바뀔 만큼 돈의 가치가 떨어졌다. 작년에 생각했던 가격도 불과 몇 달 전에 생각했던 예산도 오늘 이 시간엔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되어버렸다.

월급 받고 사는 내 사정은 그리 넉넉하지 않아도 다행히 아직은 몇천 원 오른 한 끼 식사 나누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누군가에게 이런 차이는 식단을 바꾸고 한 끼를 굶어야 하는 고민에 이르게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기축통화의 통화량이며 미 연준의 금리정책이며 전쟁으로 인한 무역 제재가 어떤 작용으로 우리의 현 상태를 만들어 가는 것인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많은 사람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쯤은 분명하다. 누군가는 칼국수를 먹고 싶을 때 라면을 선택해야 할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세 번의 끼니를 두 번으로 줄여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더 많이 가지게 되는 사람들도 존재하는 듯하다. 우크라이나의 밀처럼 먹을거리의 절대량이 줄어드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경제라는 것은 그 흐름이 돌고 도는 것이어서 적게 가진 이가 생겨나면 그만큼 많이 가진 이들도 생겨난다. 가진 자가 덜 가진 이에게 나누는 재분배가 이루어지면 적어도 인간이 굶어 죽는 일은 막을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혹여 전체가 가져야 하는 합이 줄어드는 것이라 하더라도 특정한 이들이 극도로 굶주리는 것보다는 모두가 조금씩 적게 먹는 것이 아름답다.

능력 있는 사람이 더 가지는 것이 자본주의의 원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떤 누구도 그 소유를 끝까지 가질 수는 없다. 존경받고 사랑받고 인정받는 방법은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나누는 것이다. 어릴 적 나에게 주어졌던 그 권리처럼 우리에겐 소유권이 아닌 분배의 권리가 주어졌다. 넘치도록 이고 지고 쌓아두면 결국 썩어버리거나 나눌 기회마저 박탈되고 만다. 소유는 잠시 스치는 것일 뿐이다. 무언가 내게 넘치도록 충분히 있다면 그것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증거이다.

욕심쟁이 형이자 오빠였던 나 때문에 마음고생했던 동생들에게 이제라도 맛있는 밥 한 끼라도 나누면서 살아야겠다. 분배할 권리가 주어진다면 기쁜 마음으로 나누자! 그것이 가진 자가 해야 할 책임이자 최선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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