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성 장애인 대한항공 탑승거부, 우영우에 빗대 논란만… 대책 서둘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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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을 태우기 위해 대기 중인 대한항공 ©더인디고
▲승객을 태우기 위해 대기 중인 대한항공 ©더인디고
  • 모든 장애인 항공 승객 위한 지침 수립 절실
  • 국내 정부·항공사, 이동 불편 장애인에 초점
  • 코로나로 항공사업법 시행규칙 이행도 주춤?
  • 장애계, 정부·국회·공항·항공사 테이블로 모아야!

[더인디고 조성민]

“변호사 우영우에 열광하며, 현실 속 우영우를 찾기 이전에 모든 자폐성 장애인이 우영우처럼 사회에서 차별받지 않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 환경 조성 및 제도개선이 우선돼야 하지 않을까?”

전국장애인부모연대(부모연대)는 지난 4일 논평에서 대한항공에 탑승하려다 거부당한 한 자폐성 장애인을 드라마 속 우영우에 빗대, 우리 사회의 모순과 대안을 지적했다.

더인디고 이용석 편집장은 “이 모든 것은 상대를 ‘타자화’함으로써 시작된다”며 “우영우에 환호하면서도 ‘몸무게가 100킬로에 키가 180센티미터가 넘는 우람한 체구’를 가진 승객을 항공기에서 내리게 한 조치는 우리 안의 낭만화를 덧씌운 구별 짓기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는 대한항공기에 자폐성 장애인이 탑승했다가 ‘기장의 요구’로 이륙 전 내려야 했던 사연이 논란이다.

해당 사실은 어머니의 SNS와 국내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누리꾼들 사이에선 “항공사의 조치가 과했다”거나 “장애인 차별”이라고 비판한 반면, “승객들의 불안감 해소와 안전을 위한 조치”라는 항공사 측을 옹호하는 반응 등도 나왔다. 어머니와 항공사 측 역시 탑승 전 “아들이 자폐 증상이 있다는 점을 여러 차례 말했다”와 “그런 적 없다”는 주장으로 맞선 바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 부모연대는 “대한항공이 장애인이 편리하게 보행 및 이동할 수 있도록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지 않아 이동 및 교통수단 이용에 있어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항공사 측이) 장애인이 안전을 위협하는 사람인 양 몰아세우기 바빴다”며, “이것이 우영우가 드라마에서 말한 한국 장애인이 짊어진 ‘장애의 무게‘이자 배제되는 것이 당연한 사회, 너무나 쉽게 장애인이 문제인 것처럼 몰아세우는 사회”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정부와 항공사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주문하는 목소리도 작은 데다, 우영우에 빗대 잠깐 들끓던 대한항공 탑승 거부 사건 역시 시간이 지나면 어차어피(於此於彼)하다 또 잊힐 것이라는 점이다.

그나마 언론에선 한겨레가 지난 1일 “장애인 승객 지원 서비스는 대부분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해외 항공사들의 사례를 들어 “모든 장애인 승객들을 위한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매뉴얼 정비 등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부모연대도 “영국 민간항공국(the Civil Aviation Authority. CAA)의 ‘(당사자가 알리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장애인 지원에 대한 항공사 가이드라인(Guidance for airline on assisting people with hidden disabilities)’처럼, 자폐성 장애인이 항공기에 탑승하고 여행할 때 차별을 받지 않도록 지침이나 매뉴얼을 만들어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고 있음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국내에선 지체 및 시·청각 장애인들의 공항과 항공사의 접근성 문제를 제기해 왔지만, 발달장애인의 목소리는 미미했다. 항공사들도 보행상 장애인 중심으로만 서비스를 개선하는 수준으로 접근해 왔다. 단편적으로 이번 사건과 관련된 대한항공 역시 자사 누리집에 휠체어 사용자와 시각장애인 보조견 기내탑승 안내 규정 등만 게재했다.

어찌 됐든 발달장애인은커녕 시·청각장애인 등을 위한 포괄적인 지침이나 매뉴얼은 없는 셈이다.

▲영국 민간항공국(the Civil Aviation Authority. CAA)의 ‘장애인 지원에 대한 항공사 가이드라인 (Guidance for airline on assisting people with hidden disabilities) 표지 캡처
▲영국 민간항공국(the Civil Aviation Authority. CAA)의 ‘장애인 지원에 대한 항공사 가이드라인 (Guidance for airline on assisting people with hidden disabilities) 표지 캡처

반면 영국 CAA는 지난 2016년 11월 ‘장애인 가이드라인’을 통해 모든 장애인에 대해 장애를 이유로 항공기 탑승을 거부해선 안 된다고 규정했다. 운항과 승객의 안전을 위해 부득이하게 거부할 수는 있지만, 자의적 판단이 아닌 반드시 의료적 진단 및 안전 규제 절차와 같은 명확한 정보 등에 입각해 결정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어 일반적으로 장애인이 먼저 탑승하는 것이 좋지만 자폐성 장애인 등 스트레스에 민감한 경우 맨 마지막에 탑승하도록 했다. 좌석도 심리적 안정을 위해 창가로 변경하는 등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명시했다. 승무원을 포함한 모든 직원은 장애 특성 이해와 그에 따라 필요한 지원이 무엇인지를 교육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에 반해 국내 항공사들뿐 아니라 정부 정책 역시 장애유형을 포괄하지도 그렇다고 구체적이지도 않다.

우리나라도 지난 2020년 2월부터 항공사업법 시행규칙의 시행에 따라 공항 및 항공사 등 항공교통사업자는 교통약자의 요청에 따라 항공교통 이용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토록 했다.
물론 휠체어 사용자 등 이동이 불편한 장애인 중심이다. 자막, 점자, 그림 등을 이용한 기내 안전정보를 맞춤별 제공도 강화했지만, 이번 사건처럼 종합적인 접근에는 미치지 못한다. 특히 해당 정책은 코로나19와 함께 시행되면서 시행규칙에 따른 종사자 훈련이나 교육은 물론, 현장에서 관련 적용 등이 제대로 적용됐는지는 살펴볼 문제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 7월 채택한 ‘장애인 항공 승객 권리장전(‘Bill Of Rights’ For Airline Passengers With Disabilities)’ 안내 영상 캡처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 7월 채택한 ‘장애인 항공 승객 권리장전(‘Bill Of Rights’ For Airline Passengers With Disabilities)’ 안내 영상 캡처

관련해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달 ‘장애인 항공 승객 권리장전(‘Bill Of Rights’ For Airline Passengers With Disabilities)’을 채택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장애인이 비행기를 탈 때 더 자연스러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이 문서는 ‘항공사 접근법(Air Carrier Access Act)’에 따라 장애인 승객들의 기본적 권리를 사용하기 쉽게 요약한 것으로 미 행정부가 직접 나선 셈이다. 미국도 코로나19로 항공사에 대한 소비자 불만이 팬데믹 이전보다 300% 이상 증가하자, 미 교통부는 장애인을 비롯한 모든 승객에게 안전하고 접근 가능한 서비스 제공을 위한 조치를 내놨다.

주요 내용은 정신적 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장애인 항공 여행자에게 자신의 권리를 이해하고, 미국뿐 아니라 외국 항공사 및 관련 계약 업체도 대상으로 권리를 주장할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또한 항공사 및 계약업체 관계자 등은 3년에 한 번 이상 관련 교육을 받아야 한다. 특히 항공사 장애 관련 전문가(CRO)는 매년 보수 교육을 받도록 했다. 시각 또는 청각장애를 가진 승객은 공항 입구부터 항공기 내에 이르기까지 다른 승객과 동일한 여행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되, 단 항공사 직원의 안전 의무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그 밖에도 보조견 및 보조기기, 개인 의약품 등에 관한 규정뿐 아니라 교통부에 민원을 제기할 수 있는 장애 핫라인(1-800-778-4838)도 평일 오전 8시 30부터 오후 5시까지 개설했다.

장애인단체 관계자는 더인디고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난 2~3년 동안 정부와 공항 및 항공사 등을 상대로 장애인 접근성 요구를 한 기억이 없다”며, “이는 코로나19 탓이 크다. 이번 사건과 더불어 다시 증가하는 장애인 항공 승객에 대비해 장애계가 정부와 항공사가 포괄적이면서도 세밀한 지침을 마련하도록 촉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드라마 속 우영우에 멈춘 시선이 아닌, 출발을 앞두고 탑승 거부당한 자폐성 장애인의 현실에 직시해야 한다”며 “이젠 장애인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국내외 이동 및 여행 등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정부와 항공사, 장애계 등이 다시 머리를 맞대고 대응을 논의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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