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영의 오늘] 자폐인 엄마가 바라본 우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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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등고래 ⓒ픽사베이
▲혹등고래 ⓒ픽사베이

편집자 주: 이 글은 조미영 집필위원이 모 유튜브 방송과의 인터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예상 질의응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해당 인터뷰에는 조미영 집필위원과 자폐성 장애인 아들 정하진 씨가 참여했다.

#1. 419일 삭발이후는?

지난 4세 번째 삭발하던 날이라는 글이 떠오릅니다. 이후 발달장애인 가족의 참사로 인한 49재에 이어, 최근엔 화요집회도 참석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날 556명의 삭발과 대표단 4명이 단식에 돌입했다. 그래도 새 정부는 미동도 없었기에 다시 1센티미터 자란 머리카락을 19명의 부모가 또 잘랐다.
오월과 유월에 장애인 자녀를 살해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은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그들을 추모하는 49재를 지냈다. 5대 종교계가 대통령 집무실 아래 삼각지역에서 추모제를 진행했지만, 대통령 놀이에 빠진 지도자의 방문은 없었다. 지금은 당사자가 필요한 만큼의 지원을 위한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촉구를 위해 여의도 이룸센터 앞에서 매주 화요집회가 열리고 있다.

#2.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최근 드라마 우영우반응이 뜨겁습니다. 처음 봤을 때와 지금 드라마를 대하는 마음이 조금 달라진 게 있나요? 챙겨보신다면 드라마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1화만으로 워낙 말들이 많아서 재방송을 봤다. 우리 아들과 너무 다른 자폐인이 불편하다는 생각을 하며 봤는데 우영우의 행동에서 내가 만난 자폐인들의 많은 모습이 보였다. 우영우의 자폐보다 그녀가 풀어나가는 사건에 집중하게 되면서 드라마에 빠졌다.

이 드라마, 왜 이렇게까지 대중들에게 인기가 있는 걸까요?

예쁘고 귀여운 박은빈 배우가 우영우라는 자폐인 연기를 잘하고 현실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장애인을 보는 게 신기해서 그런 것 아닐까?

▲조미영 집필위원/ 사진=유튜브 방송 화면 캡처
▲조미영 집필위원/ 사진=유튜브 방송 화면 캡처

#3. 드라마 <우영우> 속 키워드로 보는 진짜 현실

– <우영우>에서 뽑은 키워드에 대해 말하고 싶은 내용이나, 하진 씨와 함께한 경험 중 생각나는 게 있다면?

고래: 드라마 속 영우는 고래에 푹 빠져있는데요. 하진 씨도 푹 빠져있는 무언가가 있나요?

아들은 어렸을 때 한동안 자동차에 빠졌다. 크기가 다양한 자동차를 일렬로 줄을 세우고 누군가 만지면 울음으로 불쾌감을 표현했다. 놀이터에 가면 근처에 주차된 자동차 바퀴에 빠져 두 시간을 넘게 바라보며 만지고 있었다. 지금은 다행히 이런 것은 사라지고 유튜브의 아이돌 영상을 보면서 흥얼거리거나 춤을 추는 일에 몰두한다. 아침에는 눈뜨자마자 푸쉬팝을 만지작거리며 또각또각 소리 나는 것을 즐긴다.

김밥/소리: 자폐인은 자극에 대해 예민한 것으로 아는데요. 하진 씨는 어떤 감각, 어떤 자극에 예민한가요?

손에 뭔가 묻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서 찰흙이나 지점토 등을 이용한 작업을 할 수 없었다. 옷에 물이라도 한 방울 흘리면 바로 벗어 던졌기에 항상 여벌 옷을 가지고 다녔다. 시끄러운 소리가 나면 귀를 막았지만, 헤드폰이나 모자 등을 쓰는 걸 싫어해서 아무 대책 없이 스스로 참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웠다. 지금은 크게 예민한 부분 없이 잘살고 있다.

천재: 천재 변호사 우영우 같은 자폐인은 흔한 건가요? 이때까지 봐온 자폐인의 모습은 어땠나요?

흔하지 않기 때문에 인기가 있다고 본다. 모든 사람이 다 다르지만, 자폐인도 백인백색이란 말이 딱 맞다. 서번트 기질을 가지고 태어나는 경우는 그것을 더 잘할 수 있도록 부모가 지원해서 빛을 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회성 부족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자폐인 모두가 보이는 모습이다.

자폐는 정말 스펙트럼이구나 라고 느꼈던 적 있나요?

고기능 자폐인 경우 대학까지 학업을 마치는 것이 드물지만, 전문 직업을 가지고 사는 경우도 있다. 온종일 집이나 시설에서 24시간 케어가 필요한 경우도 있으니 자폐는 스펙트럼 장애인 것이다.

당사자의 주변인들

동그라미: 드라마에서 우영우는 비장애인 베스트 프렌드가 있는데요. 하진 씨에게도 비장애인 친구가 있나요? 없다면, 어떤 현실이 (어떤 사회의 모습이) 그런 상황을 만든 걸까요? 타인에게 큰 관심이 없는 자폐인에게 친구는 왜 필요한 걸까요?

타인에게 큰 관심이 없다는 건 잘못 알려진 자폐인의 특성이다. 많은 자폐인이 사람을 좋아한다. 다만 표현 방법이 서툴고 잘 몰라서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일 뿐. 그런데도 중증 자폐인 중에는 비장애 친구가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발달장애가 아닌 신체장애인들에게는 베스트 프렌드가 있는 걸 자주 봤다. 영화 ‘증인’에서도 단짝 친구가 있긴 하지만 현실에선 가능해 보이지 않았다. 아들의 주변인은 당사자 친구들이나 엄마 친구들, 지금 다니고 있는 센터의 사회복지사인데 아들 담당 교사가 또래라서 아들은 그분을 많이 좋아하고 따르는 것 같다. 또래와는 친구로서 교류 없음이 늘 안타깝다.

최수연, 정명석, 영우의 아빠: 드라마 우영우의 주변인이 굉장히 많이 나오는데요. 감동한 인물이 있나요? 그리고 그 장면, 그 대사가 왜 감동이 되었나요?

로펌대표와 우영우 아빠가 선후배 사이인 걸 알고 동료 변호사가 낙하산 인사라고 우영우를 몰아세울 때 다른 동료 변호사 최수연이 우영우가 도리어 차별 받았다고 큰소리로 외치는 장면. 사람보다 장애가 우선되어 배제되는 현실을 잘 보여준 것 같다.

자폐인과 나

봄날의 햇살: 당사자의 예상치 못한 시선에 감동을 받는 장면이 있는데요. 예상치 못한 하진 씨의 행동, 말에 큰 감동했던 순간, 그런 날이 있나요?

새로운 걸 발견하기보다 잘못하던 것을 어느 날 해 보일 때 큰 감동을 한다. 예를 들면 본인 물건을 잘 못 챙기는데 가지고 있던 손선풍기 어디에다 뒀냐고 물으니 잘 찾아 왔을 때, 레일바이크 타러 갔다가 안 탄다고 버텨서 결국 모녀만 타고 부자는 차로 이동했는데 어느 날 여수에서 케이블카를 타고선 잔뜩 겁먹고 누나 손을 꼭 잡고 긴장하던 모습은 정말 감동. 무섭지만 가족 모두를 믿고 선뜻 용기 낸 거라 폭풍 칭찬을 했다. 이렇게 사소한 일상의 변화가 내게는 큰 감동이다.

외로운 아빠: 하진 씨와의 관계에서 가장 외로웠던 날이 있나요?

엄마의 노력이 전혀 티 나지 않고 점점 더 자기 세계로 빠져드는 아들을 보거나 ‘널 어쩌면 좋을까’ 울먹이는데도 아무 느낌 없이 멍한 시선일 때 참 막막했다.

드라마 <우영우> 3화에 나온 중증 자폐인

문상훈(김정훈 역): 드라마에 나온 중증자폐인과 하진 씨가 닮은 점이 있나요?

재판과정에서 판사의 상반된 질문에 네! 네! 대답하는 걸 보며 아들과 비슷하다. 긴장하면 ‘예스’와 ‘노’ 호불호를 선택하지 못하고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네’만 말할 때 참 난감하다. 판사가 그의 대답으로 판결에 참고했듯이 나 역시 아들의 대답이 어느 쪽인지 잘 살펴보고 대응한다. 본인 의사와 다른 대응을 할 때 아들의 저항도 있지만 그럴 땐 더 정확하게 표현하라고 말한다.

멜트다운: 멜트다운이 뭔가요? 우영우 3화에서 중증 자폐인의 멜트다운이 보였는데요. 하진 씨의 멜트다운을 보신 적이 있나요?

흔히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지 못할 때 행동으로 나타내는데 멜트다운은 여러 가지 부정적 감정이 쌓이고 쌓여 더 이상 어쩔 수 없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원인 파악도 안 되니 지켜보는 이로선 매우 난감할 수밖에 없다. 비슷한 행동의 탠트럼은 어떤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끄는 분노 발작을 의미하다, 자폐인뿐 아니라 어린아이들의 경우 마트에서 원하는 장난감을 얻기 위해 바닥에 드러누워 발버둥 치는 경우가 해당한다.

삼사 년 전까지 아들은 자해했다. 두 손으로 머리와 얼굴을 때리는데 그 강도와 속도가 너무 심해 얼굴이 벌겋게 부어오르곤 했다. 갑자기 그런 행동을 보이면 옆에서 어떻게 해 줄 방법이 없어서 내 손으로 아들의 얼굴을 가려 보기도 했는데 빨갛게 변한 내 손보다 아들의 힘든 마음이 느껴져 정말 괴로웠다. 지금은 전혀 그러지 않는다.

중증 자폐인의 부모: 3화에서 중증 자폐인의 부모(윤유선)는 우영우를 보고 마음이 복잡했다, 비교하게 됐다하는데요. 이 대사에 공감하셨나요?

아들 어렸을 때는 말하는 아이, 얌전한 아이, 인지 능력이 있는 아이들과 비교하면서 너무 속상했다. 같은 말 백만돌이 한다고 고민하는 엄마 옆에서 나도 그런 고민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성인이 되고는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아들의 과거와 비교해서 나아진 부분에 감사한 마음뿐. 아들의 존재만으로 소중하다.

#4. 드라마가 아닌 지금을 사는 우리

드라마 <우영우>에 대한 여러 기사가 쏟아지고 있어요. 혹시 자폐 가족이 본 <우영우> 이런 류의 기사를 보셨나요? 공감하는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자폐 가족들은 이 드라마가 판타지일지라도 자폐에 대해 언급해 줘서 고마워하고 있다. 우영우를 부러워하기보다 그녀의 주변인들을 봐주길 바라고 더 많은 관심이 있다. 발달장애인에게는 물리적 환경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지원인, 사람이 필요하다.

#5. 그런데도 우영우 속 판타지는 현실에 필요하다

우영우 속 주변인들이 인상적인데요. 이런 주변인들, 실존하나요? 지금까지 만났던 당사자의 주변인들은 누가 있었나요? 혹시 불친절했던 주변인은 누가 있었나요?

자폐인에게 드라마의 주변인 같은 인물은 없다고 생각한다. 아들 주변인은 대개 발달장애인이거나 그들의 부모다. 우린 서로를 잘 아니까 불친절하진 않다. 물론 사람에 따라 불편할 수는 있다.

그보다 거리에서, 식당에서,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주변인들은 대개 자폐인에게 친절하지 않은 것 같다. 혼잣말하며 자기들끼리 엄지손가락을 머리에 대고 동그라미를 그리며 눈빛을 교환하거나 덩치가 큰 내 아들을 보고 젊은 엄마는 자신의 아이를 치마 속에 감춘다. 나는 기분이 나쁘지만 내색하지 않고 ’잡아먹지 않아요’ 라며 속으로 말하곤 피식 웃는다. 나와 아들의 불쾌함을 알아달라는 게 아니라 외모가 잠재적 범죄자로 보이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앞으로 어떤 장애를 다룬 드라마가 또 나온다면, 어떤 드라마를 보고 싶으신가요?

우영우와 같은 드라마 속에 자폐스펙트럼의 다양한 인물들이 나오면 좋겠다. 저 정도 되면 장애인이 아니라고 생각도 하고, 저 친구는 정말 힘드니 어떤 지원이 들어가면 좋을까 함께 생각할 수 있는 그런 드라마를 보고 싶다. 나아가 드라마의 엑스트라로 장애인이 나오고 친구도 이웃도 자연스레 장애인의 출연이 있으면 좋겠다. 자꾸 보아야 이상하지 않고 낯설지 않다.

▶<우영우>의 영우는 무해한 장애인인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엔 이렇게 무해한 장애인만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나에게 피해를 주는 장애인에게 우리는 어떤 동료/주변인이 되어야 할까요? (이 질문 자체에 저는 분노했습니다. 장애인을 유해 무해로 구분한 것 같아서요)

모든 사람은 무해하면서 유해한 존재라 생각한다. 먹고 사는 것 자체가 자연에 유해한 거니까. 왜 장애인만 무해해야 하는지 이렇게 구분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다. 나에게 피해를 주는 장애인? 지하철 이동권 투쟁하는 활동가들을 말하는 것 같은데 비장애인이 저절로 누리는 이동권을 20년 넘도록 극한투쟁을 해도 여전히 고통과 불편 속에서 사는 장애인이 많다. 투쟁하는 활동가들에게 유해하다고 말하기 전에 국가를 향해서 이동권을 보장하라고 말할 수는 없을까? 내가 받는 하루의 불편을 활동가들은 평생을 견디고 산다는 것을 생각해 주시면 좋겠다.

현실 속 자폐인을 위해서 한국 사회가 변화해야 할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 현재 조미영 님이 관심 가지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아들의 자립. 몇 년 후 서른 살 되는 아들이 분가하여 또래와 함께 사는 걸 보고 싶다. 지역사회 안에서 가끔 서로의 집을 왕래하며 따로 또 같이 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 잔잔한 일상이 부모가 먼저 세상을 뜨더라도 계속 이어지길, 그런 사회를 간절히 바란다.

[더인디고 THE INDIGO]

가족과 함께 하는 일상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그 행복을 나누면서 따뜻한 사회를 바라봅니다.
승인
알림
66233a8c7e06f@examp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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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ksyk@gmail.xn--com-2m7ll84fw2z'
김서영
1 year ago

분노와 감동이 엇갈립니다
우문현답 해주신 작가님의 지혜가그들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