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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소풍 5화_마지막회

By 이용석

May 02, 2020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마치 더러운 벌레가 살갗을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듯한 느낌에 소름끼쳤다. 남자는 기어이 아내를 향해 유리잔을 던졌다. 그러나 유리잔은 깨어지지 않은 채 아내의 발밑에 떨어져 팽그르르 맴을 돌 뿐이었다. 아내의 등 뒤에서 딸아이의 작은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 게 보였다. 그 와중에도 남자는 먹먹하게 차오르는 서글픈 분노가 한낱 술주정이나 어느 날 갑자기 장애를 얻게 된 사람들의 절망 섞인 패악으로 아내와 딸아이가 오해하지 않기를 바랐다. 울다 지쳐 잠에 든 딸아이를 들쳐 업은 아내는 처가로 도망치듯 가버렸다. 그날부터 남자는 완벽하게 감금당했다. 잠기지 않은 현관문을 누군가 밀고 들어오지 않는다면 감금된 남자는 언제까지고 어둠 속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아내의 주장은 옳았으며 용의주도하기까지 했다. 일단 이혼을 하고, 장애등록을 하면 남자는 독거장애인으로 지역 사회복지사의 관심을 받게 될 테고, 그렇게 되면 국민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이 한결 수월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수급자로 선정이 되면, 장애인과 수급자들에게 입주가 용이하고 주거비용이 적은 영구임대아파트를 신청하자는 것이었다.

이틀 밤과 낮을 남자는 눈을 부릅뜨고 버텼다. 딸아이와 아내가 떠났다는 사실보다도, 그들의 잰걸음을 잡지 못하는 자신의 불구된 육신을 책망하며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남자는 아내가 숨겨둔 소주를 싱크대 안에서 찾아냈다. 싱크대 안은 그녀가 마셨을 빈 소주병들과 딸아이가 즐겨 먹는 참치통조림으로 가득했다. 남자는 아내가 남긴 소주를 마시며 운 좋게 살아남은 것을 처음으로 후회했다. 차라리 그때 죽어버렸다면, 죽어서 전세 아파트와 얼마간의 예금, 남자 몰래 아내가 붓기 시작했던 생명보험금 따위를 고스란히 유산으로 남겼더라면 남자는 딸아이의 기억에 자상한 아빠로 남았으리라. 또 젊은 미망인 된 아내도 곧 슬픔을 잊고 새로운 사랑을 찾기까지의 짧은 세월이나마 기일(忌日)에 맞춰 영정 앞에 향이라도 피워주지는 않았을까. 소주는 독(毒)처럼 쓰고 강렬했다. 남자의 의식은 시나브로 취해갔다. 관자놀이가 깨질 듯 아파왔고 눈앞이 희끈거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잠에서 깬 남자는 비로소 허기를 느꼈다. 순간, 어쩌면 외진 지하방에 갇혀 감쪽같이 굶어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남자의 지친 의식을 한사코 물어뜯었다. 남자는 허겁지겁 참치통조림 하나를 꺼내 원터치 뚜껑을 땄다. 말간 기름층 위로 검붉은 참치덩어리가 떠올랐다. 맨손으로 허겁지겁 참치덩어리들을 건져 볼이 미어져라 쑤셔 넣었다. 참치 살을 우적우적 씹던 남자는, 문득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에 이를 부득 갈았다. 참치기름으로 번들거리는 남자의 손이 참치통조림 뚜껑을 더듬어 찾았다. 남자는 왼쪽 팔을 눈높이로 들어 올려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는 손목에 파랗게 돋아나는 정맥을 뚜껑의 예리한 모서리로 문질렀다. 갈라진 살 속에서 금속의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피가 튀어 남자의 얼굴을 적셨다. 살고 싶다고, 죽을 만큼 살고 싶다고, 남자는 가뭇없이 스러져가는 의식의 꽁무니를 한사코 잡아채며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미니버스가 도착한 곳은 뜻밖에도 번화가다. 깜빡 졸았던 남자는 버스가 시내 한복판에 멈추자 잠시 어리둥절하다. 남자는 차창 밖으로 삐주름히 고개를 빼고 사위를 둘러본다. 4차선 도로를 차들이 빽빽하게 지나가고 있다. 우뚝 솟은 빌딩들, 그 빌딩들 그림자에 묻혀 외어앉은 조붓한 건물들, 또 그 건물들의 버성긴 자투리 공간을 촘촘히 메운 노점들이 보일 뿐이다. 그 주변 어디에도 풀숲 우거진 산책로나 하다못해 잠시 엉덩이 붙이고 앉을 잔디밭을 품은 도심공원조차 보이지 않는다. 남자가 뜨악한 표정으로 옆에 앉은 계반장을 돌아본다. 계반장이 굳은 표정으로 남자를 맞바라보며 완장 하나와 바닥에 빨간 고무 칠이 된 면장갑 한 켤레를 건넨다.

“이제부턴 정신 바짝 차리쇼. 저쪽 치들이 뭐라 지랄을 떨어도 절대로 엉겨 붙어 싸움 벌일 생각일랑 아예 하지도 말아야 할 꺼요. 우린 공무를 집행해야 하니까.”

공무? 남자는 그제야 여전히 눈에 매달린 잠을 떨어내고는 차안을 휘둘러본다. 뒷문은 이미 열려있고 군복 복장의 사내들이 분주하게 휠체어를 내리고 있다. 아파트에서부터 남자와 함께 온 사람들도 저마다 완장 하나씩을 두르고 차에서 내릴 채비를 하고 있다. 그들이 찬 노란색 완장에는 <노점단속반>이라고 붉게 새겨져 있다.

“소풍을 간다면서요?”

남자가 다급하게 계반장의 소매를 잡아채며 물었다. 순간 완장을 차고 있던 계반장의 입초리가 비틀린다. 면장갑을 단단하게 낀 그의 손이 팩소주를 찾아 쥔다. 쥐어짜듯 남은 술을 입안에 털어 넣은 계반장이 자신 앞에 쪼그리고 앉은 해병대 모자를 쓴 사내의 등판에 덥석 업히며 남자를 힐끗거린다. 남자도 지지 않고 사나운 눈빛으로 계반장을 노려본다. 계반장이 차에서 내리자 붉은 얼굴의 청년이 남자에게 다가와 등을 내민다.

버스에서 먼저 내린 계반장은 휘적휘적 휠체어를 밀며 거리의 인파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남자는 악착같이 계반장을 따라붙는다.

“소풍 맞잖소? 그 감옥 같은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서 술도 한 잔 걸쳤고, 김밥 도시락도 까먹었으면 소풍이지 뭐요? 게다가 하루 일당 5만원이면, 우리 같은 떨거지 인생들에겐 솔찬은 가욋돈이니 이만한 소풍길이 또 어디에 있을까?”

시(市) 당국과 계반장이 몸담고 있는 <한국빈민장애인복지회>가 정식으로 노점단속 용역계약을 맺고 실시하는 공무집행이라며 계반장은 어깨마저 으쓱해 보인다. 남자는 좀체 이해할 수가 없다. 도대체 이런 황당한 일이 있단 말인가? 시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에게 노점단속을 맡기다니. 남자의 등줄기에 까스스한 소름이 돋았다. 그동안 노점단속 따위는 건장한 체구의 철거 용역원들의 영역으로만 알고 있었던 남자는 이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할 말을 잃고 잠시 아연해진다.

계반장과 남자의 휠체어가 지나가자 노점상들이 철시를 하려는 듯 서둘러 좌판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작은 손수레에 포장을 치고 떡볶이나 어묵 따위를 팔던 중년 아낙은 계반장과 남자의 휠체어 지척에 개숫물을 끼얹으며 공공연히 적개심을 드러내기도 한다. 악세사리 좌판을 벌여놓은 젊은 사내는 가래침을 뱉으며 욕지거리를 쏟아놓는다. 그러나 그들의 노골적인 도발에도 계반장은 짐짓 모르쇠 흉내를 낼 뿐이다. 그때 한 중년 사내가 갈퀴눈을 치뜨며 계반장과 남자의 앞길을 가로막는다. 사내의 찔꺽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다.

“이 놈의 병신 새끼들이 또 육갑질하러 나왔구만. 개 같은 놈의 세상, 관(官)것들에게 쫓겨 댕기며 겨우 풀칠이나 하는 신세도 처량한데, 이제 이런 병신 새끼들까지 생지랄이네. 오냐, 누가 이기나 함 붙어보자.”

사내가 씩씩대며 계반장의 멱살을 틀어쥐고는 들어올린다. 계반장의 왜소한 살피듬이 사내의 손아귀에 붙들려 꼼짝달싹 못한 채 덥석 들린다. 계반장의 힘없는 두 다리가 헝겊인형의 그것처럼 축 늘어진다. 갑작스런 사내의 공격에 잠시 당황했던 계반장도 맥없이 당하지 않겠다는 듯 양팔로 사내의 목덜미를 감싸 안는다. 거리 한복판에서 벌어진 이 해괴한 싸움에 지나가는 행인들이 걸음을 멈추고 꾸역꾸역 모여든다. 잔뜩 부은 얼굴로 좌판을 정리하던 노점상들도 금방이라도 계반장에게 달려들 듯 사나운 기세로 모여든다. 계반장의 기세에 사내가 당황하며 쥐고 있던 멱살을 놓친다. 기회를 노리던 계반장의 얼굴이 목덜미께로 잽싸게 파고들자 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길바닥에 자빠진다. 귀를 물어뜯었는지 사내가 한쪽 귀를 부여잡고 버둥질을 친다. 함께 나동그라진 계반장을 향해 기다렸다는 듯 노점상들의 발길질이 쏟아진다.

“ 삐–익”

사나운 발길질 속에서도 계반장이 용케 호각을 꺼내 불어대기 시작한다. 이 이상한 싸움을 재미있다는 듯 구경하던 행인들이 귀청을 찢을 듯한 호각 소리에 진저리를 치며 귀를 틀어막는다. 남자는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 이제야 남자는 그동안 자신이 살아왔던 세상과는 전혀 생경하고 낯선 세상에 성큼 들어섰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다. 이 몸서리나는 세상을 온전히 살아남기 위해서는 휠체어와 의족에 익숙해져야 하는 것처럼, 그악스레 상대의 귓볼을 물어뜯는 표독스런 오기도 몸으로 익혀야만 한단 말인가. 갑자기 모든 것이 허무해지고 두렵다.

계반장을 구해내야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남자는, 호각 소리에 한쪽이 허물어진 구경꾼 대열 밖으로 주춤주춤 부대끼는 휠체어를 주체하지 못한다. 꾸역꾸역 모여드는 구경꾼들에게 떠밀린 남자의 휠체어가 차도로 떨어진다. 전조등을 번뜩이며 달려오던 자동차들이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으며 선다. 삽시간에 도로는 차들이 뒤엉켜 아수라장이 된다. 남자는 목안엣소리로 토해내듯 꾸역꾸역 비명을 질러대며 도로를 따라 휠체어를 밀고 간다. 남자가 살아왔던 사십 년, 그 세월 동안 익숙했던 세상은 가뭇없이 사라졌다. 이제 그 텅 빈 자리를 오롯이 차지해버린 이 삭막하고 낯선 세상을 남자는, 아주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더인디고 The Indi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