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호의 차별 속으로] 무중력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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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커먼 배경 중앙에 하얀 점 하나가 찍혀있다. ⓒ김소하 작가
▲시커먼 배경 중앙에 하얀 점 하나가 찍혀있다. ⓒ김소하 작가
  • 장애인에게 중력은 없다

[더인디고=이민호 집필위원]

이민호 집필위원
▲이민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영화 그래비티는 망망대해 우주 공간에 내던져진 라이언 스톤이 지구로 귀환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 과정은 장애인들의 삶과 닮아있다.

시커먼 우주 공간에서 라이언 스톤·샤리프·맷 코왈스키 셋은 망원경을 수리하던 중 기지로부터 러시아에서 자국 인공위성을 미사일로 격추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위성 폭파로 인한 쓰레기가 발생했지만, 궤도가 다르고 폭파 계획을 미리 알고 있었던지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작업을 계속 이어나갔다.

하지만 쓰레기가 다른 인공위성들과 충돌하는 예측 불허의 상황이 발생하여 기지는 그들에게 임무 취소와 함께 귀환 명령을 내린다. 하지만 라이언 스톤은 작업을 끝까지 마무리 짓겠다고 고집을 부리며 명령을 듣지 않는다. 그러던 중 예상보다 빨리 날아온 쓰레기 파편들과 맞닥뜨린다.

▲영화 그래비티 포스터 ©네이버
▲영화 그래비티 포스터 ©네이버

함께 작업하던 샤리프는 파편에 맞아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라이언 스톤이 타고 있던 우주 왕복선의 매니퓰레이터도 완파된다. 충격 때문에 라이언 스톤은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해가 진 어두운 지구 방향에 내팽개쳐지지만, 다행스럽게도 코왈스키와 무전이 닿는다.

코왈스키는 라이언 스톤을 안심시키며 서로의 우주복을 케이블로 연결하고, 샤리프의 시신을 회수하여 우주 왕복선으로 함께 돌아온다. 왕복선 내부는 난장판이 되어 있었고, 승무원들은 모두 죽어 있었다. 코왈스키가 ISS(국제우주정거장)의 소유즈를 이용하여 중국 우주정거장 톈궁으로 이동한 뒤, 탈출선을 통해 지구로 돌아가자고 하여 이동한다. 하지만, 제트팩(우주복에 달린 추진기) 연료 부족으로 인해 속도를 줄이지 못해 밀려난다. 스톤은 다리가 낙하산 줄에 꼬여 ISS 근처에 매달리지만, 함께 연결된 줄에 묶인 코왈스키는 둘 다 죽을 거라면서 케이블 연결 고리를 풀고 우주 공간 속으로 멀어져 간다.

우주로 멀어져 와중에도 코왈스키는 무선으로 스톤을 독려하며 ISS로 갈 수 있도록 유도한다. 우주복 내 산소가 떨어져 정신이 혼미하던 스톤은 간신히 ISS에 도착하여 산소를 마시고 정신을 찾는다.

ISS 내부를 돌아다니며 상황을 살피며 코왈스키와 통신을 시도하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갑자기 화재가 발생하여 소화기로 진압하려고 했지만, 분사 반동으로 밀려나 순간 기절한다. 수 분 후 정신 차리고 비상 탈출용 소유즈로 피난한다. 소유즈와 ISS를 분리하고 탈출을 시도하지만, 낙하산이 걸려 벗어나지 못한다. 그때 지구 한 바퀴를 돌아온 우주쓰레기가 빠른 속도로 ISS를 덮친다. 혼란의 순간, 간발의 차로 낙하선을 풀고 위험에서 벗어난다.

위험에서 벗어나 중국 우주정거장 톈궁으로의 발진을 시도하지만, 연료가 없어 포기한다. 그때 “착륙용 로켓 엔진을 쓰면 된다”는 코왈스키의 목소리가 들렸다. 모든 것을 포기한 스톤은 우주선 기능을 끄고 스스로 삶의 의미를 물으며 주변을 돌아보지만, 코왈스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환상이었다.

번쩍 정신을 차린 스톤은 톈궁으로 이동한다. 톈궁 옆을 지나는 찰나의 순간 긴급 탈출하여 안착에 성공했지만, 이미 우주쓰레기와 충돌하여 지상으로 추락하며 대기권에 진입하던 중이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라이언 스톤은 귀환선 선저우를 분리하여 지구로 귀환한다.

영화 관람 내내 가느다란 줄 하나에 매달려 흔들거리는 ‘몸’ 위에 국내 장애인들의 ‘몸들’이 겹쳤다. 공포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얼굴’ 위에 국내 장애인들, 물론 ‘나’와 ‘동료’들의 얼굴들도 겹쳐졌다.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심사·갱신이라는 우주쓰레기가 날아와 일상의 모든 것이 파괴당할 수 있는 장애인들 말이다.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는 2011년 제정된 장애인활동지원법에 의해 제공되는 서비스이다. 2005년 겨울 경남 함안의 한 중증장애인이 혼자 있는 가운데 보일러 물이 터져 동사한 사건을 계기로 장애인들이 요구하여 만들어진 서비스인데 일상생활·사회활동에 타인의 지원이 필요한 장애인들에게 정부에서 유급인력을 파견하여 장애인이 지역에서 안정적으로 생활하도록 하고 그 가족들의 돌봄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해 시작되었다.

제도가 시행된 지 11년이 지났지만, 현실은 매우 절망적이다. 전체 장애인 중 32.1%가 일상생활에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활동지원제도 이용자는 전체 장애인 263만 3천 명 중에서 3.8%에 불과하다. 76.9%에 달하는 가족에게 의지하고 있으며, 하루 평균 이용 시간은 평균 4시간밖에 되지 않았다.

아울러 만6세~65세 미만의 등록장애인만 신청하도록 제한하고 있는데, 시설에서 제도를 알지 못해 노인이 된 장애인은 이용할 수 없다. 어떤 장애가 있더라도 하루 최대 16시간의 지원만 받을 수 있는데, 하루 최대 24시간을 지원하여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보존하는 일본·영국·프랑스 등과 대비된다. 16시간 이외의 시간은 암흑의 우주 공간에 놓인 것이다.

2019년 장애인 개인의 욕구에 기반을 두어 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종합조사표가 도입되었지만, 8,333명이 기존 받고 있던 급여가 하락하였으며, 최대 241시간이 감소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특히 장애 유형·환경·사회참여 욕구 등을 반영하지 않아 발달장애인 등 대다수 장애인의 85%가 하루 4시간 이하의 상당히 부족한 지원을 받고 있다.

당연히 시간 판정과정에서 장애인의 의사는 반영되고 있지 않으며, 이의 신청이나 정보공개 요청도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그마저도 소득에 따라 월 최대 17만 7천 원의 본인부담금이 발생하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고질적인 문제로 인해 장애인과 그 가족을 둘러싼 참사가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2022년만 하더라도 ‘3월 2일 8세 발달장애인 아들 입학식 날 어머니가 살해’, ‘5월 17일 조카에게 폭행당한 지적장애인 사망’, ‘5월 23일 40대 어머니 6세 발달장애아들과 투신’, ‘6월 3일 발달장애 형제 홀로 돌보던 아버지 자살’과 같은 참사가 벌어졌다.

국내 장애인들이 지금 당장 우주미아가 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이다. 극소수지만 살아남는 사람들은 자신의 치부와 약점을 드러내 시간을 구걸하는 고통스러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매번 인간의 존엄성을 버릴 수 없는 노릇이다.

한국이라는 행성에 장애인 당사자들이 발 딛고 살아갈 수 있도록 대상자 연령 제한을 폐지하고, 개인별 24시간 지원을 보장해야 한다. 발달장애인 지원시간을 대폭 확대하고, 공적 사회서비스로써 본인부담금을 폐지해야 한다.

장애 유형·사회환경·참여 욕구 등을 반영할 수 있도록 장애인 서비스 종합조사표 전면 개정하고 서비스 시행과 관련한 모든 과정에 장애인 당사자들의 참여와 권한 부여를 강화해야 한다.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공포를 벗어나 인간답게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대구 지역 다릿돌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권익옹호 팀장으로 활동하는 장애인 당사자입니다. 국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장애 인권 이슈를 ‘더인디고’를 통해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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