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석의 잡썰] 촘촘하고 두텁게, ‘약자 복지’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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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추석 전날인 8일, “자기 목소리조차 내기 어려운 분들 배려하고 챙기는 진정한 약자 복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해 ‘약자 복지’의 대상을 명백히 구분했다. ⓒ SBS 뉴스 유튜브 갈무리
▲윤석열 대통령은 추석 전날인 8일, “자기 목소리조차 내기 어려운 분들 배려하고 챙기는 진정한 약자 복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해 ‘약자 복지’의 대상을 명백히 구분했다. ⓒ SBS 뉴스 유튜브 갈무리

[더인디고=이용석 편집장]

이용석 편집장
▲이용석 더인디고 편집장

왠지 떠름하고 수상하다.

윤석열 정부 100일을 기점으로 사회적 취약계층을 촘촘하고 두텁게 지원할 것이라는 각오와 다짐이 대통령은 물론이고 정부 각 부처 장관들 입에서 연일 오르내리고 있다. 발달장애인 자녀 살해 후 자살 참사가 끊이지 않고 수원 세 모녀 사건, 홍수로 인해 반지하에 살던 국민들이 피해를 입자 복지정책에 보수적이던 윤 정부는 복지대책 강화에 발 벗고 나선 모양새다.

추석 연휴 첫날 서울 명동성당 내 무료 급식소에서 직접 김치찌개를 끓이고 배식하는 봉사활동에 나섰던 윤 대통령은 “표를 얻기 위한 복지가 아니라 표가 안 되는 곳, 정말 어려운 분들의 곁에서 힘이 되는 복지정책을 펴나가겠다”면서, “고통받는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넉넉하게 보듬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강조하면서 이른바 ‘약자 복지론’을 다시 한번 설파했다.

공교롭게도 그동안 20% 안팎을 맴돌던 대통령 지지율은 12일 30%대 초반까지 치솟았다. 바닥을 면치 못하던 지지율이 약자를 위한 행보로 반등의 돌파구를 찾은 셈이니 어쨌든 ‘약자 복지’가 표를 얻는 역할을 하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제 지지율을 얻는 방법을 용케 알아챘으니 대책이 필요할 텐데 윤 정부는 ‘발굴 강화’로 가닥을 잡은 듯하다. 우선 복지 사각지대 발굴 관리 시스템의 수집 정보를 34종에서 39종으로 늘렸고, 실거주지 경찰청 수색 지원, 기획 발굴, 민간 명예 사회복지사 확충, AI 복지사 구축 등을 발표했다. 물론 당연하게도 많아진 정보 범위에 포함된다고 해서 당장 국가의 사회안전망인 기초생활수급대상자에 포함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또다시 재산·소득 기준, 근로능력 증명 등 빈곤의 자기증명이라는 모멸의 장벽을 넘어야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의 생계비를 받게 된다. 높은 제도적 장벽과 낮은 사회보장 수준은 여전하다는 거다.

그런데 뚱딴지같이 AI 복지사 도입을 추진한단다. 그러니까 복지 현장에 AI를 투입해 초기 상담을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AI복지사 개발비 23억 5000만 원을 예산으로 책정했다. 이제 ‘약자’들은 AI에게 자신의 빈곤을 증명해야 할 판이다. 고소를 금치 못 할 노릇이다. 물론 발굴 시스템을 강화하고 전달체계를 고도화하겠다는 정부의 의도를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사회안전망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고립과 소외된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조건과 관계를 잇는 공공정책이 시급하다는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거다.

문득 궁금하다.

윤 정부가 강조하는 ‘촘촘하고 두터운 약자 복지’ 소위 따뜻한 보수의 언어에서 ‘약자’는 누구를 가리키는 정치적 언어일까? 이미 윤 대통령은 “자기 목소리조차 내기 어려운 자”가 “진정한 약자”라고 규정한 바 있다. 그러니까 수원 세 모녀와 같이 빈곤과 고립으로 내몰렸거나 빈곤으로 인한 사회적 고립과 위기에 처한 노인이나 빈민, 장애인 등일 텐데, 결국 정부는 “자기 목소리조차 내기 어려운 자”와 “자기 목소리를 내는 자”로 구별 짓기를 통해 ‘복지 대상’을 정치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사회적 고립과 위기에 처한 노인이나 빈민, 장애인 등이 조직화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소득보장이나 이동권, 권리예산 증액, 돌봄 체계 강화 등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한다면 ‘약자 복지’의 대상이 아니라는 선언이며, 이는 ‘약자 복지’가 함정에 불과하다는 명백한 증거이기도 하다.

“자기 목소리조차 내기 어려운 자”로 구분되어 ‘약자’로 소환된 이들에게만 촘촘하게 두텁게 지원하겠다는 의미는 시혜와 배려가 필요한 존재로 낙인화해 수동적 ‘복지 수급자’로 대상화하겠다는 것이다. 가만히 있으라, 입 닥치고 가만히 있으면 나눠주겠다는 이 오만함은 촘촘하고 두텁게 지원하겠다는 철 지난 정책으로도 권력을 쟁취한 자신감의 결과일 것이다.

아뿔싸, 장애인 중에는 “자기 목소리를 내는 자”들이 있으니 이들은 ‘처벌’로 다스릴 것이라고 겁박했던 ‘윤핵관’의 정치적 계산을 이제야 알겠다.

[더인디고 THE INDIGO]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소설 대신 세상 풍경을 글로 그릴 작정입니다. 사람과 일, 이 연관성 없는 관계를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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