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저평가된 우량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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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 Pixabay
  • 정당하지 않은 평가로 스스로를 결론짓지 말라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안승준 집필위원] 동료선생님들과 얼굴인식 어플리케이션 테스트를 했다. 시각장애인용으로 계발된 어플은 대상의 표정과 대략적인 나이를 짐작해서 알려주는데 우리의 관심은 단연 각자의 얼굴나이였다. 비슷한 또래의 선생님들이 아이들 같이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차례로 카메라의 인식결과를 기다렸다.

“22살가량의 여성이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30살가량의 남성이 먼 곳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실제 나이보다 10살 이상이나 어려 보인다고 말해주는 판독 결과에 선생님들은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기대감으로 떨고 있는 내 차례가 되었다.

“45세가량의 남성이 무심한 표정으로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어플이 사람들 기분 좋게 해 주려고 나이를 적게 말해 준다고 웅성거리던 선생님들의 입에서 동시에 폭소가 터져 나왔다. 물론 예상 밖의 재미난 결과에 나도 웃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좀 지나면서 이런저런 농담을 섞어서 계속 웃는 다른 선생님들과 달리 내 기분은 이상해지고 있었다. 내 손은 어플의 셔터를 반복적으로 눌러댔고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평가 나이에 머릿속은 복잡해지고 있었다.

“너무 관리를 안 했나?”
“내가 진짜 그렇게 나이 들어 보이는 건가?”

인공지능의 정확하지 않은 평가라는 걸 알면서도 다른 이들에 대한 후한 평가와 대비되어 난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반사적 우울함을 느껴야 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생각을 하고 나서야 그것은 단순히 한 기계의 어설픈 평가라고 결론을 낼 수 있었다.
변하지 않는 본질과 관련 없는 가벼운 한마디에 휘청거리는 스스로를 반성하는 것으로 어렵사리 해피엔딩을 맺었다.

난 내가 저평가 받고 있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전공한 수학을 가르칠 때나 정치적 견해를 말할 때, 또는 새롭게 만난 사람들과 토론할 때도 많은 사람들은 시각장애라는 딱지가 붙은 나의 능력을 있는 그대로 판단하지 않는다.

“시각장애인 치고는 조금 수학을 하는 거겠지!”
“어디서 몇 마디 들은 이야기를 늘어놓는 거겠지!”
“시각장애인이 아는 게 있어봤자 공부하는 데 한계가 있을걸!”

직접 겪어보고 나면 예상과는 달리 장애인이라고 무조건 낮게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바꾸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꽤 많다. 그렇다고 나의 실력이 평가대로 낮아지는 것도 본질이 변하는 것도 아닌데 나약한 인간의 특성상 사람들의 평가는 나를 위축시키기도 하고 주저앉히기도 한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경쟁에서 배제되고 평가 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경험들을 쌓아가다 보면 스스로의 실제적 가치에 대한 믿음까지 흔들릴 때가 적지 않게 있다. 스스로의 외모에 남부럽지 않은 사람도 주위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못생겼다는 평가를 하면 자신감을 잃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장애라는 인간의 특성은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 전체를 저평가하는 근거로 작동한다. 그렇기에 장애인들은 스스로를 끊임없이 재평가하지 않으면 정확하지도 않은 판정 때문에 스스로를 한정짓고 자신감을 잃어간다.

최근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조금은 힘이 빠져있던 나에게 또 한 번 정신을 차리게 한 어떤 이가 찾아왔다. 새로운 제안을 던지는 그에게 나는 반사적으로 나의 실패담을 늘어놓으며 스스로의 낮은 가능성을 설명했다. 그런데 그는 정당하지 않은 평가로 스스로를 결론짓지 말라는 것이었다.

나에겐 아직 충분한 가능성이 남아있고 그것은 아직 제대로 평가 받아볼 기회조차 없었다는 말이다. 맞는 말이었다. 내가 받아 든 대부분의 점수들은 사람들의 고정관념 속에 박혀있는 장애에 대한 삐뚤어진 인식들과 관련한 것이었지 나의 본질과는 꽤나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세상의 생각들이 변하지 않아서 혹시라도 또 잘못된 평가를 받는다 하여도 그게 두려워서 멈춘다면 난 언제까지나 저평가된 채 남아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서로를 평가하고 점수매기기를 좋아한다. 외모를 평가하고 능력을 줄 세우고 그것으로 인간의 우열을 나눈다. 그것들은 대부분 주관적이고 왜곡되어 있다. 장애는 부정적으로 잘생긴 외모는 긍정적으로 전체가 평가된다.

스스로를 강하게 지키고 본질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지나가는 평가들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감사한 충고를 들려준 고마운 이의 평가로 나는 새롭게 선언하기로 했다.

“나는 저평가된 우량주이다. 제대로 평가 받을 수 있을 때까지 도전하겠다.”

오늘 아침 친구들과 만나면서 얼굴인식 어플리케이션을 다시 한 번 실행했다.

“29살가량의 남성이 활짝 웃고 있습니다.”

하루아침에 15살 이상 어려진 다른 평가에 순간적으로 웃음이 나왔다. 대부분의 상대적 평가는 그런 것이다. 그냥 웃을 수도 있고 잠시 우울해질 수도 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본질에 집중하자! 언젠가는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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