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CRPD 최종견해를 받아 들며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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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WEB TV를 통해 한국 정부 이행 심의가 생중계 되고 있다. /사진=유엔TV 캡처
▲지난 8월 24일, 25일 UN WEB TV를 통해 한국 정부 이행 심의가 생중계 되고 있다. /사진=유엔TV 캡처

  • 2031년 1월로 향해 가는 길

김동호 정책위원장
▲김동호=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정책위원장

지난 9월 9일 UN 장애인권리위원회(위원회)는 한국의 2·3차 병합보고서에 대한 최종견해(Concluding Observation) 발표에 이어 2031년 1월, 4·5·6차 병합 국가보고서를 심의하겠다고 했다. 앞으로 9년 동안 한국이 해야 할 숙제가 주어진 것이다. 9년은 긴 시간이지만, 위원회가 지적한 과제들을 이 기간 안에 한국이 해결하기에는 녹록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위원회는 대한민국의 장애등급제와 장애판정제도는 UN 장애인권리협약(CRPD)의 정신에 부합하지 못하고 의료모델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최종견해 전반에 걸쳐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정신장애인(심리사회적 장애인)과 지적·발달 장애인의 배제와 자기 결정권의 박탈, 소수장애인 등의 특수한 욕구를 고려하지 않는 복지시스템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또한 지난 2014년 1차 심의 최종견해에도 불구하고 8년 동안 조력지원제도로 한 걸음도 가지 못한 성년후견제도도 비판을 받았다. 통합으로 가기보다 분리로 강화되어 가는 장애인특수교육, 여전한 장애여성의 배제와 소외, 보다 강력한 추진을 요구받은 탈시설화와 자립생활 지원, 분리고용을 벗어나야 하는 장애인고용, 생명을 위협받는 장애인과 장애아동의 삶, 더 가난해진 장애인, 무력한 장애인권리옹호체계, 장애를 고려하지 않는 국가통계체계 등등 만만치 않은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모두 우리나라 장애인정책의 가장 어렵고 힘든 지점이자 넘기 힘든 고지이다.

9년 후 우리는 어떠한 보고서를 위원회에 내놓을 수 있을까. 그 보고를 위해 9년 동안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장애인과 장애인단체는 요구할 것이고 정부는 방어할 것이다. 정치인들은 약속할 것이나 저버릴 것이다. 이렇게 하며 앞으로 9년 동안 우리는 수 많은 우여곡절을 겪을 것이지만, 9년 후 위원회는 똑같은 우려와 권고를 할 가능성이 크다. 어떤 큰 진전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위원회는 우리의 정책이 가장 소중한 무엇을 결여하고 있다고 깊은 우려를 표명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8년을 돌이켜 보자. 그간 우리의 장애인정책은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고 평가되곤 했다. 예산도 많이 늘었다. 하지만 한 진보정치인의 물음처럼, ‘장애인의 살림살이 좀 나아졌습니까?’. 위원회는 그 답이라도 되는 듯한 우려와 권고를 던져주었다.

지난 8년 우리의 의식과 행동에 CRPD가 얼마나 존재하고 있었을까. CRPD의 정신과 원칙을 항상 간직하며 우리의 생각과 행동의 지침으로 삼았을까. 장애인단체든 정부든 지난 우리의 노력이 CRPD의 정신과 원칙에 근거하고 부합되게 노력해 왔을까. 그렇게 했다면 지금 CRPD가 매긴 우리의 성적표는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한다.

CRPD가 우리에게 가장 강조하는 정신이지만 우리가 쉽게 포기하는 것이 있다. CRPD는 장애인이 스스로 할 수 있고 그것이 어려우면 도와주면 된다고 한다. 우리는 어느 장애인은 할 수 있고, 어느 장애인은 할 수 없다고 구분한다. 그 구분이 정확한지는 검증된 적 없고, 검증될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 구분이라는 것은 지원을 포함한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CRPD는 장애인에 대한 단순화한 판단, 선입견과 편견,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형성되는 도그마를 경계한다. 그래서 CRPD는 의심하지 않고 끝없이 장애인의 선택과 결정, 참여를 추구한다.

분리와 격리, 배제도 CRPD가 경계하는 지점이다. 특별하게 장애인을 분리해서 지원하면 효과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 구조는 장애인을 사회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결국은 불완전한 인간으로서의 삶에 순응케 한다. 장애인을 통합하는 것은 어려운 길이지만, 어렵다고 쉽게 가려 한다면 장애인은 결국 따로 교육받고, 따로 일하고, 따로 살아가야 하는 존재로 영원히 고착되게 된다는 것을 CRPD는 우려한다. 통합되고 주류화되지 못하면 특별한 제도와 특별한 예산의 굴레에서 인심 좋은 정치인의 온정과 배려를 기대하는 장애인이 되고 말 것이라는 경고를 하고 있다. 그것은 장애인에게 부여된 보편적 인권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한다.

2·3차 심의처럼, 4·5·6차 병합심의를 1년쯤 앞두고서야 정부와 민간단체는 보고서를 만든다고, 또 그 보고서의 보고서를 만든다며 부산을 떨 것이다. 그 시점이 돼서야 우리는 CRPD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CRPD의 정신과 원칙을 애초부터 추구하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9년은 이미 CRPD와는 거리가 있는 바람직 하지 않은 궤적을 그린 후가 될 것이다. 아무리 보고서를 잘 포장해도 CRPD는 또 지적할 것이다. 같은 것을.

지난 8년의 전철을 밟지 말자. CRPD는 장애인의 헌법이자 권리장전이다. 장애인정책과 제도의 준거가 되어야 한다. 특히 다양한 장애인의 선택과 결정, 의사존중 그리고 주류화와 참여는 앞으로 9년 동안 견지해야 할 가장 중요한 원리이다. 항상 먼저 고려하고 최종으로 되돌아볼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 앞으로 CRPD를 꼭 쥐고 달려가서 9년 후의 성적표는 좀 달리 받아야 하지 않을까?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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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 제2-3차 국가보고서 심의 최종견해 발표

장애주류화정책포럼대표. 장애현장과 중앙부처(보건복지부), 국제기구(UNESCAP) 등을 두루 거친 정책 전문가이다. 현재는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정책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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