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확률 착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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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벳 숫자가 적힌 수많은 작은 큐브가 쌓여있다. /사진=픽사베이
▲알파벳 숫자가 적힌 수많은 작은 큐브가 쌓여있다. /사진=픽사베이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45개의 로또 숫자 중에서 당첨번호 6개를 맞출 확률은 8,145,060분의 1이다. 한 세트에 천원인 것을 생각하면 8,145,060,000원어치의 서로 다른 숫자가 적힌 복권을 구매해야만 당첨확률 100%에 도달할 수 있다. 1주일 동안 그 많은 복권에 겹치지 않게 모든 경우의 수를 마킹하는 것도 불가능하겠지만 기적적으로 그 일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투자금보다 많은 이익을 확정적으로 확보하려면 꽤 많은 사람이 내가 가진 복권보다 몇 배나 많은 또 다른 복권을 구매해야 하고 그것들이 나로서 운 좋게 모두 낙첨번호를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고정적으로 떼어가는 복권의 운영기금을 생각하면 그런 우연들이 동시에 일어나야만 이번 주 복권이 내게 조금이라도 이득을 줄 수 있다는 논리적 확신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은 몇천 원 혹은 몇만 원 정도를 투자한 한 주의 복권 추첨 방송을 기다리며 극도의 긴장 상태를 보인다. 그것은 분명 이번 주 1등의 주인공이 본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근거한 것임에 분명하고 만약 최근 며칠 사이 꿈에서 돼지 몇 마리라도 보았다면 기대치는 기하급수적 상승곡선을 그린다. 꿈에 출연한 돼지의 존재가 무의식중 그들의 출몰을 바라고 있던 내 내면의 반사적 발현인지 정말 우연한 예지몽인지도 중요한 일은 아니겠지만 무엇보다 꿈과 복권의 당첨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어떠한 과학적 근거도 존재하지 않는다. 달랑 5천원 돌려받는 5등의 당첨확률마저도 574분의 1이고 연속으로 다섯 개의 숫자를 맞췄다 하더라도 마지막 숫자마저 맞출 확률은 2.5%에 불과하지만, 사람들은 로또라는 인생역전 기회가 실재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착각한다.

만약 우리나라에 치사율이 극도로 높은 괴질이 새롭게 발생하고 그 질병에 걸릴 확률이 역시나 8,145,060분의 1이라고 생각해 보자! 5천만 국민 중 6명이나 7명쯤만 해당할 그 위험에 대해 대부분은 본인과는 관련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백신이 개발된다고 하더라도 굳이 의무적으로 그 접종에 참여할 필요를 심각하게 느끼는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다. 극도로 적은 불행의 확률이 본인의 삶과 관련성을 가지지 않을 것이라는 데에 나름의 확신을 가질 것이다. 분명 같은 확률을 가진 서로 다른 상황이지만 때에 따라 사람들이 확률을 느끼는 체감은 완벽히 달라진다.

바구니에 담겨있는 세 개의 똑같은 공 중 하나의 당첨 공을 뽑을 때 최고급 자동차를 준다고 하면 사람들은 3분의 1이라는 확률을 매우 크게 느끼겠지만 나머지 두 개의 낙첨 공을 뽑을 때 본인이 가진 자동차를 내어놓아야 한다는 벌칙이 있다고 하면 같은 3분의 1 확률은 너무도 작은 것으로 보인다. 기댓값과 관련한 착시라고 말하는 이도 있겠지만 어찌 되었든 고정된 3분의 1이라는 상수가 때에 따라 그 크기가 달라져 보이는 것만은 명확한 사실이다. 애초부터 기댓값이 마이너스인 복권의 확률을 크게 보는 많은 사람이 그 근거가 된다.

이러한 확률의 착시현상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이미 주어진 많은 행운을 느끼지 못하게 하거나 닥쳐온 작은 어려움을 큰 불행으로 생각하게 하기도 한다. 내가 하루를 지내면서 숱하게 마주친 자동차들이나 직접 운전한 차가 사고 나지 않을 확률이 90%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안전하게 보낸 오늘은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렇지만 그 당연한 오늘이 내일로 연속할 확률은 81%가 되고 일주일을 연속할 확률은 47%로 급격히 작아진다. 하루를 무사히 보낼 확률이 90%라 하더라도 일주일을 평온하게 보낼 가능성은 전체의 사람 중 절반 이하의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기적이 되는 것이다.

정십이면체 주사위를 던져서 매일매일 12명 중 한 명이 사고가 나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이해에 도움이 되겠다. 물론 실제로 우리가 하루를 안전하게 보낼 확률은 90%보다 더 높긴 하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기간의 차이가 있을 뿐 매일매일을 연속으로 일상을 누린다는 것은 굉장한 행운인 것이 분명하다. 반대로 내가 오늘을 장애 없는 비장애로 산다는 것이 10%의 낮은 확률이라 하더라도 1년을 살고 10년을 사는 동안 연속확률의 법칙은 그 가능성의 크기를 꾸준히 늘려간다. 자신의 장애가 엄청난 불행이라 여기는 이들도 있겠지만 어쩌면 장애조차도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작지 않은 확률로 이미 가까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수많은 세포의 경쟁을 뚫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또 하루를 별일 없이 살아낸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한 행운아이다. 10년을 20년을 30년을 그 이상의 시간을 지나도록 더 나쁜 상황의 가능성을 극복하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이들은 이미 로또 당첨자이다. 눈에 드러나는 비현실적 행운들과 비교하여 자기 삶을 평가절하하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가진 많은 현실적 기적들에 집중하고 감사하기를 바란다. 오늘도 내일도 또 그 다음 날도 별일 없이 살 수 있다면 나는 점점 더 낮은 확률의 기적을 사는 것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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