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윤선의 무장애 여행] 억새꽃 흩날리는 ‘동구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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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릉 ⓒ전윤선
▲동구릉 ⓒ전윤선

[더인디고=전윤선 집필위원]

더인디고 전윤선 집필위원
▲더인디고 전윤선 집필위원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람, 겨울은 아직 멀리 있는데……. 축제의 계절 시월愛 가끔 이런 상상을 해본다. 봄, 가을에 여행 방학하면 어떨까? 야외활동하기 좋은 봄, 가을은 자꾸 밖으로 쏘다니고 싶어져 틀에 박힌 일상은 겉돌기 일쑤다. 좋은 계절 억지로 일하느니 차라리 봄과 가을에 여행 방학으로 싱싱한 경험을 오감으로 체험하는 여행이 딱 맞을 것 같다. 아!!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상상이다. 아니 상상이 현실이 되는 날이 올 거라 믿는다. 시월이 가기 전에 부지런한 여행 활동으로 펄떡이는 경험을 축적해 뒀다가 겨울에 추억을 곱씹으며 이겨낼 수 있게 말이다. 그래서 떠났다. 억새 축제가 한창인 동구릉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조선 왕릉은 그 가치를 세계인에게 인정받고 있다. 조선 왕릉의 정교하고 깊이 있는 양식은 어디에 내놔도 비교 불가하기 때문이다. 구리역에서 조금만 가면 동구릉이다. 동구릉은 동쪽에 아홉 개의 능이 있다고 해서 이름 붙여졌다. 특히 동구릉의 건원릉은 여느 능과 확연히 다르고 동구릉의 가장 핫 플레이스다. 건원릉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능으로, 조선 왕릉 제도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능침은 잔디가 아닌 억새가 덮여 있다. 인조실록에 의하면 태조의 유언에 따라 억새를 덮었다는 기록이 있다.

건원릉은 태조가 세상을 떠나자 지금의 구리시인 양주 검암산에 정해졌다. 태조는 생전에 두 번째 왕비 신덕왕후와 함께 묻히기를 원해 신덕왕후의 능인 정릉에 본인의 묏자리를 미리 마련해두었으나 태종은 태조의 유언을 따르지 않고 태조의 능을 지금의 자리에 조성했다. 건원릉은 가을이면 억새꽃이 봉분에 화려하게 핀다. 이때부터 둥구릉은 축제가 시작돼 억새 절정기인 시월 중순에서 십일월 중순까지 능침 특별 개방 기간이다.

동구릉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은 재실이다. 재실은 왕릉을 수호하고 관리하는 능참봉이 상주하던 곳으로 제관이 휴식을 취하고 제기(祭器)를 관리하던 일터다. 재실 입구엔 오래된 느티나무가 가을과 만나 고운 색깔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시골 마을 앞 정자나무의 대부분은 느티나무가 있다. 느티나무는 오래 살고 가지를 많이 뻗어 쉼터를 충분히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느티나무는 결이 곱고 윤기가 나며 썩거나 벌레가 먹는 일도 적어 마을 입구 정자에 많이 사용한다.

▲편의시설이 갖춰진 재실 ⓒ전윤선
▲편의시설이 갖춰진 재실 ⓒ전윤선

재실로 들어가면 대문부터 잘 관리된 편의시설에 기분 좋아진다. 문화재를 훼손하지 않고도 조화로운 편의시설 설치는 조상님 보기에도 좋을 것이다. 재실 안은 오래된 건물과 문화재 특성에 맞게 접근성을 최대한 높여 관람객의 편의를 제공한다. 재실을 나와 숲길을 따라 걷는다.

▲단풍나무 숲길 ⓒ전윤선
▲단풍나무 숲길 ⓒ전윤선

단풍나무는 가을 정취를 한껏 돋우고 잘 다져진 흙길 위에 휠체어 굴러가는 소리는 청아한 멜로디 같다. 천천히 걷다 보니 수릉에 도착했다. 수릉은 아홉 개 능 중 휠체어 이용인도 접근할 수 있다.

▲수릉-홍살문 ⓒ전윤선
▲수릉-홍살문 ⓒ전윤선

수릉은 황제로 추존된 문조와 신정황후 조 씨의 능이다. 홍살문을 들어서면 왕의 길인 ‘어로’와 제향의 길인 ‘향로’가 있다. 향로는 왼쪽 길로 제사 때 향과 축문을 들고 가는 길이다. 어로는 제사를 지내러 온 왕이 걷는 길로 관람객도 왕의 길인 어도를 피해 바로 옆 향로로 걸어야 한다. 어로와 향로는 돌길이어서 어차피 휠체어로 걷기엔 불편해 잔디를 지나 정자각으로 갔다. 수릉은 정자각까지 경사로가 설치돼 있다. 정자각 뒤의 신정황후 능침은 잔디 이불을 덮고 있다. 학생 때 소풍장소는 대부분 능이었다. 그때만 해도 능침 위에 올라가 뛰놀기도 하고 도시락도 까먹고 낮잠도 잠시 자곤 했지만, 지금은 능침에 올라가는 것이 금지돼 있다.

▲건원릉 ⓒ전윤선
▲건원릉 ⓒ전윤선

발길을 돌려 건원릉으로 갔다. 건원릉은 동구릉의 으뜸이라 할 수 있고 독특하게 억새로 덮여 있다. 태조는 고향 함경도의 억새를 무덤에 둘러 억새꽃으로 장식해 달라고 유언했다. 그의 유언은 지금도 유효하다. 가을, 억새꽃 필 무렵 능침을 개방하고 억새 축제를 한다. 한참을 왕릉에서 놀다 보니 마모됐던 옛 기억이 선명해진다. 학창시절 추억 속으로 돌아가 그 자리에서 멈춰 있는 것 같은 지금이다. 그때는 능에 대한 관심보다 소풍 가서 친구들과 놀 생각에 마냥 즐거웠다. 당시 문화유산에 관심이 없었다 해도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소풍 장소가 양분이되 관심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왕의 숲에 가득한 피톤치드 ⓒ전윤선
▲왕의 숲에 가득한 피톤치드 ⓒ전윤선

숲속의 보약 피톤치드를 듬뿍 마시러 왕의 숲으로 발길을 이어갔다. 피톤치드는 식물이 병원균과 해충, 곰팡이에 저항하려고 분비하는 천연항균 물질이다. 특히 소나무에서 가장 많이 발생한다. 나무가 잘 자라는 초여름과 늦가을까지가 최적기이고 오전 열 시에서 열두 시 사이에 가장 왕성하게 분비된다. 산림욕을 통해 피톤치드를 마시면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장과 심폐기능이 강화되어 얼굴색이 아름다워진다.

천연 보약 피톤치드는 왕의 숲에 가득해 호흡기 장애인에게 딱 인 거 같다. 왕의 숲은 다양한 테마로 꾸며진 숲길이다. 모래놀이터, 숲속의 연못, 통나무 건너뛰기, 맑은 물 교실, 네모교실, 동그라미교실 등 하천을 따라 숲길이 형성돼 있다. 왕의 숲은 아이들에게 특히 인기가 좋은 곳이다. 모래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고, 네모교실에서 맛있는 간식도 먹을 수 있다. 왕의 숲은 흙길에 평지 여서 휠체어 이용인 등 보행약자도 안전하게 숲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숲길을 가득 메운 낙엽도 한몫한다. 푹신한 낙엽이 눈처럼 쌓여 아이들이 뒹굴고 넘어져도 다치지 않는다.

▲왕의 숲 ⓒ전윤선
▲왕의 숲 ⓒ전윤선

동구릉은 보행 길이 완만하다. 흙으로 다져진 산책길은 조선시대 역사 속으로 여행할 수 있고 오래된 숲과 잘 보존된 유적지를 걷는 것만으로도 세상 시름을 잊게 한다. 눈길 가는 곳, 발길 닿는 곳마다 병아리들 소풍 장소로, 고령인의 산책로로, 장애인의 소풍 장소로도 능이 최적의 장소로 손색없다. 게다가 다목적 화장실은 오래 머물러도 될 만큼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장애인 주차장, 휠체어, 유아차까지 세계인에게 자랑할 만한 동구릉이다.

▲동구릉 전시관 내부 ⓒ전윤선
▲동구릉 전시관 내부 ⓒ전윤선

가을 숲은 해가 금방 지려고 한다. 벌써 해가 산등성이를 기웃거려 서둘러 동구릉 역사관으로 향했다. 동구릉 역사관은 정문 앞에 있다. 조선을 통치했던 일곱 명의 왕과 열 명의 비가 안장된 조선 최대의 왕릉군 동구릉 전시관 내부엔 조선왕릉 가상체험공간 3D, VR 체험이 가능한데, 휠체어 사용인은 안전상의 문제로 체험을 할 수 없어 아쉬움이 가득하다. 하지만 내부는 관광약자가 관람하기 편리하다.

동구릉에서 기억 속 친구들을 소환하고 그 추억 위에 또 하나의 추억이 덧씌워져 두터워졌다. 일상에 지쳐 극도로 피곤하고 소진되어 있을 때 경험을 사는 여행으로 평생의 이익을 챙겨본다. 오늘이 남은 인생의 첫날, 첫 생일인 것처럼 짧은 가을 해가 서산을 기웃거린다.

▲장애인 화장실 ⓒ전윤선
▲장애인 화장실 ⓒ전윤선

무장애 여행 팁

  • 가는 길: 구리역에서 구리 장애인 콜택시 이용(행복콜 1577-3659)
  • 접근가능한 식당: 동구릉 앞 다수
  • 접근가능한 화장실: 동구릉 안 다수
  • 문의: sun67mm@hanmail.net

[더인디고 THE INDIGO]

사)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대표. 무장애관광인식개선교육 강사. 무장애 여행가로 글을 쓰며 끊어진 여행 사슬을 잇는 활동을 오래전부터 해오고 있습니다. 접근 가능한 여행은 모두를 위한 평등한 여행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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