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호의 차별 속으로] 짬뽕

0
172
▲삽화 ‘삼선짬뽕’ ©김소하 작가
▲삽화 ‘삼선짬뽕’ ©김소하 작가

[더인디고=이민호 집필위원]

이민호 집필위원
▲이민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주말에서 평일로 넘어가는 과도기인 월요일.
아침부터 이불을 돌돌 싸맨 채 ‘5분~’만을 중얼거리며, 알람을 몇 번이나 다시 맞추었다. 눈이 감기는 찰나 시계를 보니 “아뿔싸!! 이 시간이면 무조건 지각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급하게 이불을 박차고 욕실에 들어가 허겁지겁 채비를 마치고 출근길에 나섰다. 오늘도 승강기 문이 열리는 동시에 지하철 문이 열렸다. 도착한 역에서 사무실로 걸어가던 중 갑자기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나무들이 몸을 떨었다. 그 떨림이 비를 부르는 춤이었는지, 하늘이 시커멓게 물들었고 이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출근 확인을 하는데, ‘단말기’씨가 아주 낭랑한 목소리로 ‘지각입니다.’라고 응답해주었다. 그 목소리에서 도저히 감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졸렸다. 애써 정신을 가다듬었지만, 벽시계가 째깍째깍 최면을 걸어와 정신은 또다시 무뎌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까지 내려, 졸림의 골은 더 깊어졌다. 이 피로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로지 해물로 맛을 낸 뜨거운 국물에 하얀 면이 풍덩 빠진 짬뽕을 ‘호~ 호~’ 불어먹는 것이다. 짬뽕 생각에 잠시 정신이 들어 시계를 보니 벌써 퇴근 시간이 다 되었다.

밀린 업무가 많았다. 하지만 업무가 손에 잡히지 않아 퇴근을 서둘렀다. 실은 짬뽕을 먹기 위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거짓말한 것인지도 모른다. 퇴근 확인을 했다. 역시나 ‘단말기’씨가 감정 없는 목소리로 ‘안녕’을 고했다. 길을 나섰는데 빗방울이 조금씩 굵어지기 시작했다. 비가 그치면 짬뽕의 맛이 줄어들까 봐 내심 걱정했지만, 다행스럽게도 하늘이 그 걱정을 덜어주었다.

중국집에 도착하여 따뜻한 물 한 잔 마시고 있으니 창밖에 비가 강하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들어오자마자 이렇게 되어 매우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집에 갈 생각을 하니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이내 허기가 몰려와 메뉴판을 열어 보지도 않고 짬뽕을 주문했다.

“10분 여정도 지났을까?” 하얀 김과 매콤한 냄새를 풍기며 새빨간 짬뽕이 내 앞에 놓였다. 급한 마음에 면을 입어 넣었지만, 너무 뜨거워 그대로 뱉어버리고 말았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국물을 마시려 했지만, 이번에는 안경에 김이 서려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짬뽕과 제대로 만나기 위해 안경을 벗고, 면 일부를 앞접시에 옮겨 담았다.

탱글탱글한 면은 입안에서 쫄깃하게 씹혔고, 따스한 국물은 긴장된 몸을 녹여주어 얼큰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자연스레 시선이 그릇 안으로 옮겨졌는데, 그 안에는 채소(호박, 양파, 당근, 배추, 대파, 버섯, 고추), 돼지고기, 해산물(홍합, 오징어, 새우, 굴) 등이 푸짐하게 들어가 있었다. 재료 하나하나 따로 먹어보니 각자의 풍미를 놓치고 있지 않았다. 마치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돌아가는 지구 생태계를 보는 것 같았다. 바닥이 보일 정도로 한 그릇 뚝딱 비워 내고 나니,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계산하고 밖으로 나오니 차가운 공기가 나를 맞았다. 온몸이 땀으로 젖은 까닭으로 바깥 공기는 더욱 차갑게 느껴졌다.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 비가 갑자기 쏟아질지 몰라 급히 역으로 향했다.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핸드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했다. 첫 페이지는 ‘복지 예산 삭감’, ‘공공임대주택 예산 삭감’, ‘물가 상승’이라는 글자들이 장식하고 있었다. “왜 세상은 늘 힘 있는 사람들 중심으로 돌아가지?”라는 마음이 일어 차마 그 글자에 손이 가질 않았다. 괜한 답답함에 핸드폰을 끄고 호주머니에 넣어버렸다. 모든 것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짬뽕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가진 것이 세상이다.

짬뽕 안의 재료는 자신만 드러내지 않는다. 짬뽕 안의 다양한 재료들이 자신의 존재만 드러내려 한다면, 짬뽕의 이름은 ‘양파’로 개명하거나, ‘오징어’로 개명해야 한다. 양파가 ‘양파’만을 외치고 오징어가 ‘오징어’라고 외친다면 짬뽕은 본연의 모습을 잊어버릴 것이다. 재료 단독으로는 조화로운 짬뽕을 이룰 수 없다.

지금 우리 사회의 힘 있고 돈 많은 사람은 자신이 ‘중심’이라고 말하며, 힘없는 자들에게 그것을 강요한다. 마치 짬뽕 안에서 ‘오징어’와, ‘양파’가 각기 “내가 이 짬뽕의 주인이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오징어’와, ‘양파’만으로 이루어진 것을 조화로운 짬뽕이라고 말할 수 없듯이, 힘 있는 자들의 ‘목소리’만 가득한 사회는 결코 조화로운 사회라고 말할 수 없다. 재료 하나하나의 풍미가 살아 있는 짬뽕이 조화로운 짬뽕이듯, 구성원들의 개성이 하나하나 살아 있는 사회가 조화로운 사회라고 생각한다.

장애인, 성소수자,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와 같은 다양한 정체성들이 개별적으로 존중받고 세상에 녹아들 때 이 세계는 맛있어질 것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대구 지역 다릿돌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권익옹호 팀장으로 활동하는 장애인 당사자입니다. 국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장애 인권 이슈를 ‘더인디고’를 통해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승인
알림
6629537135300@example.com'

0 Comments
Inline Feedbacks
View all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