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영의 오늘] 욕심을 걷어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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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워 보이는 호수 ©픽사베이
▲한적해 보이는 호수 ©픽사베이

[더인디고=조미영 집필위원]

조미영 집필위원
조미영 더인디고 집필위원

“어머니, 잠시 통화 가능하실까요?”

아들이 없는 시간에 전화기를 손에 쥐고 혹시 담임에게 연락 올까 전전긍긍하던 시절이 있었다. 별로 급하지 않은 연락일 때도 있었고 연락했다면 당장 아들 데리러 갔을 상황에 하교 시간까지 잘 견뎌 주었던 적도 있었다. 사실 연락 받고 내가 달려갔어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경우가 많았다. 장애인 자녀를 키운다는 것은 몸과 마음의 안테나가 언제나 아이에게 맞춰져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삶이었다.

고학년이 되어 갈수록 호출은 줄었다. 언제부턴가 ‘내가 지금 이렇게 편한 마음으로 살아도 되나?’, ‘무슨 큰일이 생기려고 요즘 이렇게 평화롭지?’ 등 안정된 일상에 대해 의심을 하며 살았다. 별일 없는 하루하루가 20여 년 동안 긴장 속에 살던 나의 몸과 마음을 풀어 주어 장애가족임을 잊게 했다. 아들 때문에 힘들었던 날들이 아들 덕분에 웃는 날이 많아져 장애가족의 고단함이 내게서 멀어져 가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는 순간들도 많아졌다.

오랜만에 한낮의 선생님 문자에 놀랐다기보다 무슨 일인지 궁금했다.

“아침에 하진님이 등원하는데 표정이 약간 어두워서 신경이 쓰였어요. 작업 시간에 하기 싫다고 해서 억지로 권하지 않았고 편하게 해 줬어요…”

뭘 얘기하려고 서두가 이렇게 긴가 생각하며 무심하게 듣고 있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진님이 두 손을 흔들며 칠판을 세게 치다가 선생님을 공격했어요.”

“네? 공격이요? 선생님은 어찌 됐나요?”

“손등에 살짝 멍든 상탠데 많이 놀랐어요.”

전화를 끊고 아들이 했을 행동과 그 상황들을 곰곰이 생각했다. 그 전날 야외 활동에서도 많이 산만하고 혼자 행동하려는 게 보였다는 말을 듣고 ‘늘 좋을 수가 있나, 그런 날도 있는 거지’라 생각하며 심각하게 듣지 않았다. 연이어 아들의 행동이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고 피해까지 줬다고 생각하니 아들이 내게 주는 메시지가 있다고 느껴졌다.

아들의 체중이 자꾸 느는 것에 대해 운동 부족이라 여기며 다시 체육관에 등록했다. 주 3회로 강도 높은 운동을 하면 더 이상 살이 찌지는 않을 거라 계산했다.

“너 먹는 것 자유롭게 하는 대신 운동해야겠어. 월수금 운동하자, 알았지?”

아들에게 통보하고 예전에 다니던 체육관에 보냈다. 운동도 좋았지만, 셔틀버스로 정류소에서 내려 혼자 집까지 오는 연습도 시킬 겸 내 머릿속의 계산기는 이런저런 효과를 상상하며 ‘아들을 위한 것’으로 마음을 다졌다.

이래저래 시월은 휴무가 많았고 가족여행, 체육관 사정 등으로 정작 운동한 날은 세 번밖에 되지 않았다. 우리 집 아파트 동을 헷갈려 한 적 없던 아들은 자꾸 옆 동으로 들어가 인터폰을 조작했다. 먼발치에서 보던 내가 깜짝 놀라 뛰어 가면 아들은 음흉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우리 집 알면서 너 딴청 피우는구나…”

혼잣말하듯 돌아 나와 우리 동으로 이동하는 내 뒤를 아들은 소리 없이 따라왔다.

이렇게 싫은 티 내고 있는 아들의 신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연이은 평생센터에서의 돌발 행동이 결국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체육관에 가야 하는 의사 표현이었음을 뒤늦게 알았다. 그곳에서 억지로 운동을 시키진 않았겠지만 그래도 지시에 따라야 하는 불안감과 만만하지 않은 남자 선생님들에게 거부하진 못했을 아들의 심정을 헤아리게 되었다. 표현언어가 부족하니 아들의 행동에서 뭔가를 읽어야 하는 게 쉽지 않다.

세 번째는 내가 데리고 갔는데 체육관 앞에서 차 문을 잠그고 버텼다. 싫은 걸 강하게 표현하는 아들을 보며 학령기 이후 많은 통제에서 벗어나 자기 생각을 존중받으며 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하기 싫은 걸 억지로 시키는 것에 대한 강한 반발이었음을 모른 체 할 수 없었다. 가장 여려 보였던 여선생님을 공격하면서 모두 놀라게 한 것이었다.

“하진아, 체육관 오늘부터 안 가도 돼. 엄마 일 보러 가니까 오후에 아빠가 데리러 갈 거야. 탄천 잘 걸어서 집에 가거라.”

백미러로 보이는 아들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너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내 마음대로 널 조종하는 짓 이젠 하지 않으마.’

다시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지는 요즘, 내 욕심을 걷어내니 행복한 표정의 아들이 가을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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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ksyk@gmail.xn--com-2m7ll84fw2z'
김서영
1 year ago

사랑과 욕심사이 그 가운데서 늘 갈등하게 되는 우리..재빨리 알아차리고 지혜롭게 대처하신 선생님 존경합니다!

famina@naver.com'
famina
1 year ago

맞아요 ~!!!
음성언어가 잘 표현 되지않는다는 이유로 의사표현을 분명히 했음에도 수많은 무시 속에 평생을 살아가고 있지요 우리아이들은 …
좋은엄마세요♡

cooksyk@gmail.xn--com-2m7ll84fw2z'
cooksyk
1 year ago

선생님 글은 언제나 기승전 따스함.
반복해서 읽게 되는 이유입니다
하진이의 미소가 전염되어 통증이 사르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