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네가 아프면 나도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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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을 조르는 나무인형 ⓒunsplash
▲목을 조르는 나무 인형 ⓒunsplash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익숙하지 않은 지하철역에 가게 될 땐 교통약자 안내 서비스를 이용한다. 사람들의 움직이는 소리를 따라 걷거나 점자 안내를 참고하면서 가는 방법도 있지만 그보다는 여러 면에서 편리하고 안전한 서비스를 택하는 편이다.

시각장애인이 낯선 곳을 찾아가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돌발상황이 존재하는 곳에서 사람의 도움만큼 믿을 만한 것은 없다. 지팡이도 안내견도 첨단로봇이 개발된다고 하더라도 그럴 것이다.

그날도 목적한 역에 열차가 진입하고 있다는 안내방송을 들으며 난 내게 내밀어질 친절한 팔을 기다리고 있었다. ‘치익!’ 하는 익숙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언제나 그랬듯 나도 지하철 밖으로 한 걸음을 내디디며 한쪽 손의 지팡이를 살짝 들어 보였다. 안내하러 나오신 분에게 나의 존재를 알리는 나름의 표시였다. 그런데 다음 순간 내가 느끼게 된 것은 예상과는 전혀 다른 감각이었다.

‘헤드록!’ 프로 레슬링 기술인 그것이거나 총알이 날아오는 전쟁터에서 동료를 급작스럽게 구하려는 시도 그것도 아니면 멜로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연인에 대한 과격한 포옹 장면 그것 중 하나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을 만큼 우악스러운 팔이 내 어깨를 감싸서 당기고 있었다.

내 머리는 순간적으로 발생한 비상 상황에 대해 빠른 판단을 시도하며 대처방안을 찾고 있었다. 주변의 차분한 소리로 보아 이곳은 전쟁이나 화재 같은 위급상황이 발생하지는 않았으므로 이 손길은 나를 구조하려는 목적은 아니다. 내게 이런 과격한 스킨십을 시도할만한 상대가 여기서 갑작스럽게 나타날 일도 없으므로 이것은 로맨틱한 상황일 리도 없다. 그렇다면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으나 나에 대한 공격 시도일 가능성이 높았다.

“왜 이러시는 거죠?”

단호하게 의사 표현을 하며 나보다 한 뼘쯤은 커 보이는 상대를 뿌리쳤다.

“지하철 직원입니다. 뒤쪽에 내리려는 분들이 많아서요.”라는 상대의 반응은 나를 더욱 황당하게 만들었다. 지하철 역사가 복잡한 것은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나 또한 그런 장면을 한두 번 겪은 사람은 아니었으므로 나름의 움직임으로 앞으로 몇 걸음을 걸어가며 인파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는 몸짓을 보이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눈이 혹시 현장의 판단을 잘못하였을 수도 있었겠으나 그렇다고 하여도 난 의사 판단이 가능한 상태였으므로 “앞으로 몇 걸음 더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을 건네거나 “저를 잡으시지요.”라며 팔 한쪽을 건네주면 해결될 일이었다.

물론 세상에는 상식적 예상을 벗어나는 천재지변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리고 그 위험도를 느끼는 민감도가 사람에 따라 다르다고도 하지만 그 이후 사람들의 평온한 움직임으로 보아 그와 나 사이에 어깨를 감싸고 레슬링을 벌일만한 급박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은 것만은 분명했다.

돌 하나 굴러가는 것만 보아도 산사태를 느끼고 바닥을 구르는 이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보여준 잠깐의 행동들은 내가 걸어온 삶의 궤적으로 볼 때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범위에 있었다.

안내 서비스에 동원되는 직원분들은 시각장애 관련 전문가도 아니고 사회복지나 특수교육 현장에서 근무하는 것도 아니기에 안내법을 정확히 알고 있거나 장애 유형별 에티켓에 대한 지식도 서투르다는 것쯤은 서로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난 완벽하거나 완전하지 못한 도움이라 하더라도 나 혼자 출구를 찾거나 환승하는 것에 비해 안내받는 것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를 알기에 그분들의 노고에 감사함을 느낀다. 안내 방법이야 그 자리에서 조금의 대화로 수정할 수 있고 약간의 부딪힘이나 불편함은 의도한 바 아니므로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은 상식 안에 있을 때 가능하다.

지진이나 전쟁이 발생하지 않은 지하철 역사에서 어떠한 선한 의도라 하더라도 헤드록을 거는 것은 시도하지도 허용되지도 않는 일이다. 그것은 입장을 반대로 생각하기만 하면 바로 이해할 수 있는 너무도 간단한 상식이다. 내가 지나는 이를 때리지 않는 것은 누군가 나를 때리면 아프기 때문이고 모르는 이를 잡아당겨서 끌지 않는 이유 또한 누군가 나에게 그렇게 하면 기분이 상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베푸는 도움도 그런 상식을 절대로 벗어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나를 강제로 끌어다가 노약자석에 앉힐 수 없는 것은 나 아닌 누구에게도 그런 시도를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지나는 휠체어를 마음대로 밀어서는 안 되는 이유는 휠체어 타지 않은 이를 그렇게 밀고 당기지는 않기 때문이다. 지나는 내 옷을 잡거나 내 몸에 손을 대면 안 되는 이유도 그렇다.

네가 아프면 나도 아프다. 당신이 기분 상할만한 일엔 나도 기분이 좋지 않다. 다른 누군가에게 헤드록을 걸 수 없다면 나에게도 그렇게 해야 한다. 나는 나를 출구로 안내해 준 키 큰 직원의 의도만큼은 선했음을 아직도 믿고 있다. 다만 그날의 실랑이로 또 한 사람의 상식 속에 장애인도 포함되기를 바랄 뿐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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