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 그들이 전하는 이야기 14] ③ 고영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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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전 11시 여의도 이룸센터 앞 14차 화요집회에서 고영아 부모연대 경남지부 김해지회 회원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전국장애인부모연대
▲22일 오전 11시 여의도 이룸센터 앞 14차 화요집회에서 고영아 부모연대 경남지부 김해지회 회원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전국장애인부모연대

[더인디고] 2005년 4월 2일에  탄생한 둘째. 6년 만에  출산해서인지 걱정 반, 기대 반이었죠. 좋은 사주를 가지게 날도 받고, 시도 받고, 큰 축복 속에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4개월이 지나도 목을 잘 가누지 못하고 팔다리만 앙상하고 머리는 아주 큰 상태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어쩌다 눈을 마주치면 생글생글 눈웃음이 예쁜 아이였어요.

형을 향해 곧잘 손을 뻗으며 “히야!”라곤 했습니다. 잘 울지 않아 순둥이라 불리며 사람들을 정말 좋아해 손을 잘 뻗는 귀여운 둘째였습니다.

더디지만 기고 앉기 시작했습니다. 돌 무렵엔  걱정되어 부산 모 병원을 찾았더니 뇌수종이라고 하더군요. 수술을 정도의 위험 상태는 아닌지라 지켜보자는 것과 유전자 검사를 통해 정확한 병명을 들어보라는 말, 그리고 물리치료와 작업치료를 해보자고 해서 그냥 쓸쓸히 집으로 왔어요.

서울 큰 병원에서 시작한 전신 초음파와 유전자 검사를 했습니다. 이후 비뇨기수술과 다리는 재활치료를 해야 하고 눈은 추후 수술해야 한다더군요. 의사는 고개를 살짝 내저으며, 뇌수종 영향만은 아닌 것 같다는, 발달 미성숙으로 인한 발달지연이라는, 불명확한 병명에 저희는 더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때는 속 시원하게 병명이라도 나오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임신 초기 때 결정하지 못해 근심했던 시간이 제 목을 조르는 것 같았죠. 누구나 절망적인 순간이 오면 회피하고 싶은 부정적인 생각이 있는데, 그때 그 감정이 제 뇌리를 스쳐 지나갔어요. 조상 탓, 남 탓이 나오고 저의 환경을 원망하게 되는 순간이었어요.

하지만 저를 향해 손을 뻗는 둘째 아들로 인해 전 힘을 내었고, 악착같이 버티기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때부터 시작한 치료들, 일주엘 두 번씩 부산과 창원에 오가는 생활은 눈물과 함께  무너지는 저를 단단히 해주는 과정들이었어요. 친척들은 걱정하지만, 싸늘한 말투, 시선들은 절 더욱 힘들게 했습니다. 하지만 ‘버티다 보면, 해나가다 보면 함께 웃는 날이 오지 않을까’하고 저를 속이기 시작했어요.

끝이 없을 것 같았지만, 28개월에 걸으면서 물리치료는 끝을 내고, 언어, 작업, 감각 치료, 놀이 치료와 정기진료를 해나갔어요. 그러던 중 4살 때 받은 뇌병변 3급이라는 판정은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인 듯했어요.

7살이 되던 해에 말이 트이기 시작했습니다. 다섯 문장까지 뱉어내며 웃는 아이를 보며 어쩌면 정상화가 되지 않을까 했습니다. 그러나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또래와의 차이는 극명하게 드러났어요. 왕따와 어리숙함의 이용과 더딘 운동신경 등이 그렇습니다. 멍한 기분이 들었죠. ‘잘 될 거야’라고 속인 내 마음이 온전히 드러난 상태가 되었음을 알았어요. ‘부모라면 인정해야지’라고 했지만 실제 그렇지 못했어요. 참 비겁했습니다.

저 혼자만의 싸움이고, 적응하지 못한 주변인 같은 초등학교 생활. 중학생이 되어 시작한 느티나무 부모회 방과 후 활동으로 인해 조금씩 안정감을 찾았습니다. 아들은 고등학생이 된 지금도 꾸준한 방과후 활동과 특기적성수업, 그리고 비슷한 아픔을 함께 나누는 친구들로 인해 활달한 성격이 됐습니다. 그런 아들을 보며 부모들과 함께 잘 버텨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내년에 어떡하지? 그 후 성인이 되면 어떡하지?’, 막연한 불안감에 머리가 멍하기 시작했습니다. ‘경계성 지능인 우리 아이가 사회에 나가서 잘  버틸까?’, ‘어찌하면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자기 삶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아니면 끝내…’ 너무나 불안한 미래에 가슴이 철렁합니다.

24시간 발달장애인 지원체계 구축이 명확해지는 순간이 조금이라도 우리 마음을 덜 불안하게 하겠죠?. 우리 아이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리 잡을 수 있게 국가와 사회와 가정이 책임져 주는 그 순간이 오길 간절히 바랍니다.

-2022년 11월 22일 오전 11시, 화요집회 14차 중에서 –

[더인디고 THE INDIGO]

반복되는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죽음을 멈춰달라며 윤석열 정부를 향해 삭발과 단식에 이어 고인들의 49재를 치르며 넉 달을 호소했지만, 끝내 답이 없자 장애인부모들이 다시 거리로 나왔다. 2022년 8월 2일부터 ‘화요집회’를 통해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호소하기 위해서다. 더인디고는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의 협조로 화요집회마다 장애인 가족이 전하는 이야기를 최대한 그대로 전하기로 했다.

[더인디고 대표] 20대 80이 경제적 불평등의 상징이라면,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 20은 권력의 불평등을 뜻하는 숫자 아닐까요? 20의 다양성과 차이를 함께 나눔으로써, 80대 20이 서로를 포용하며 보듬어가는 미래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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