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매뉴얼 따르면 안전?… 병원 화재로 투석환자 사망 “대폭 손질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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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석환자가 치료받던 중 화재 발생한 장면/사진=더인디고 편집
▲투석환자가 치료받던 중 화재 발생한 장면/사진=더인디고 편집
  • 정부, 의료기관 화재 안전 매뉴얼 개정 추진
  • 투석환자 반영 놓고 복지부장애인단체 이견
  • 신장협회 일본, 지진 포함당사자·종사자 중심 구체화
  • 장애유형별 화재·지진 안내서 8? “안전 담보 못 해
  • 화재 등 긴급·중증장애인 중심으로 전면 재검토해야!

[더인디고 조성민]

최근 신장 투석병원에서의 화재 등을 계기로 투석환자를 비롯해 재난 현장에서 장애인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대응 매뉴얼’ 마련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지난 8월 5일 오전 경기도 이천시 관고동에 있는 4층짜리 건물에서 난 화재로 투석 받던 환자 4명과 간호사 1명 등 5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화재 당시 4층 투석 병원에는 환자 33명과 직원 13명이 있었다. 의료진은 환자의 팔목과 연결된 투석기 연결관(회로)을 일일이 가위로 자른 후 환자들을 밖으로 대피시키기도 했다.

정부, 의료기관 화재 등으로 매뉴얼 개정 추진방향엔 장애계와 입장차 커

이 같은 화재 등을 계기로 보건복지부는 지난 11월 초부터 투석환자 및 산모 등의 ‘의료기관 화재안전 매뉴얼(매뉴얼)’ 개정에 대한 의견조회에 나섰다. 정부는 지난 2014년 6월, 매뉴얼을 제정, 2020년 한 차례 개정한 바 있다.

하지만 그 개정 수준을 놓고 관련 장애인단체와 정부 간 입장에 차이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신장장애인협회는 화재뿐 아니라 지진 등 사회적·자연적 재난에 대한 포괄적 매뉴얼 마련을 제기하는 반면, 정부는 기존 ‘매뉴얼’을 개정하는 수준으로 방향을 잡은 모양새다.

관련해 신장협회뿐 아니라 장애계가 기존에 정부 주도의 재난 대응 매뉴얼이나 안내서를 대폭 손질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투석환자 등 치료 중이거나 거동 불편한 장애인에겐 한계당사자 중심 개편 주장 이유

지난 2020년 8월, 정부는 ‘장애유형별 맞춤형 재난대응 안내서(안내서)’ 8종을 제작한 바 있다. 15개 장애유형 중 ▲시각, ▲지적·자폐성, ▲지체·뇌병변 중심으로 화재, 재난 안내서 각각 3종씩 제작하고, ▲청각, 신장 등은 ‘그 밖의 화재·재난 안내서’를 각각 제작했다.

하지만 실제 장애인 당사자 중심의 대피 매뉴얼이 아닌 조력자와 소방 등 관련 기관 중심의 안내서에 불과하다. 또한 투석치료 중인 신장장애인이나 거동이 불편한 당사자에게 적합하지도 않은 내용인데다, 장소도 병원이 아닌 건물 높이가 낮은 학교나 시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화재 시 기껏해야 장애인이 하는 대응은 불이야큰 소리로 외치고 안내방송이나 비상 경광등 등을 따라 신속하게 이동하되, 소리를 내기 어려울 때는 호루라기를 사용하고, △가능한 119 신고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 이용 젖은 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는 정도가 고작이다.

▲이용시설에서의 화재발생 시 장애인 대응 내용. ‘그 밖의 장애인 화재 대응 안내서’ 일부
▲이용시설에서의 화재발생 시 장애인 대응 내용. ‘그 밖의 장애인 화재 대응 안내서’ 일부

2020년 개정된 의료기관 매뉴얼 역시 이번에 추가 개정하더라도 지진에서의 환자 대피는 고려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내용 구성도 전주기적. 즉 ▲화재 예방, ▲ 화재발생 시 ‘신고’, ‘소화’, ‘피난 유도’, ‘화재 확산 방지’, ▲이후 복구 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일본, 지진·정전 포함대피 시 의료세트 구비 등 당사자 중심 별도 매뉴얼 갖춰

신장협회에 따르면 일본은 투석환자 개인과 의료기관 종사자 중심으로 ‘투석환자용 재해 대응 매뉴얼(일본 매뉴얼)’을 별도로 마련해 현장에서 적용하고 있다.

최근 국회도서관 의회정보실이 일본어를 우리말로 번역해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에게 전달한 해당 매뉴얼에 따르면 투석 중 ▲지진 ▲화재 ▲정전 등의 재해가 일어났을 때 등에 별도로 대비하고 있다.

▲일본 투석병원에 비치된 긴급 이동세트(좌)와 재난 대피 시 회로가 아닌 바늘끝만 남긴 장면(우). 사진=일본의 투석환자용 재해 대응 매뉴얼 캡처
▲일본 투석병원에 비치된 긴급 이동세트(좌)와 재난 대피 시 회로가 아닌 바늘끝만 남긴 장면(우). 사진=일본의 투석환자용 재해 대응 매뉴얼 캡처

재난이 금방 해결되지 않음을 대비해 일주일 정도의 복용 약이나 투석 정보 카드 등을 평소에도 소지하도록 했다. 이어 화재 시에는 연기 흡입을 막기 위한 조치뿐 아니라 병원에 준비된 ‘긴급 이동세트(지혈, 거즈, 주사, 커넥트캡,방수시트 등)’를 챙겨 대피하도록 했다.

이번 이천 화재 시 간호사들이 투석 연결 회로를 끊어 환자들을 대피시킨 것과 달리 일본에서는 간호사들에게 바늘 끝만 남기고 이동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감염과 출혈 방지를 위한 방안이다. 긴급한 위기 상황에서도 매뉴얼 등을 토대로 평소 침착한 조치를 취하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그 밖에도 대피장소, 식사 방법과 용량 등을 자세하게 안내하고 있다.

물론 긴급 상황이거나 투석 치료를 받는 장애인 등이 일본 매뉴얼에 따르면 안전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위험은 건물의 구조와 시설 설비 등 물리적 환경에 따라서도 좌우될 수 있는 만큼 어느 한 조건만 충족해서 될 문제는 아니다. 매뉴얼을 만들고도 현장에서 바로 작동되지 않은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다양한 재난 상황과 장애인 당사자, 그리고 처한 조건 등을 감안해 보다 구체적으로 매뉴얼을 마련하려는 노력은 지나치지 않다. 정부가 의료기관 매뉴얼 개정에 나선 이상, 당사자와 전문가, 장애인단체들의 의견을 귀담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더인디고 jsm@theindigo.co.kr]

[더인디고 대표] 20대 80이 경제적 불평등의 상징이라면,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 20은 권력의 불평등을 뜻하는 숫자 아닐까요? 20의 다양성과 차이를 함께 나눔으로써, 80대 20이 서로를 포용하며 보듬어가는 미래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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