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호의 차별 속으로] 공중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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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탄 사람 옆에 커다란 나무가 서있는 그림 ©김소하 작가
▲휠체어 탄 사람 옆에 커다란 나무가 서있는 그림 ©김소하 작가
  • ‘불가능 그리고 새로운 일상’

[더인디고=이민호 집필위원]

이민호 집필위원
▲이민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이번 생에 내가 화초를 가꾸게 될지 몰랐다.

선천성 근육 장애로 인해 상체를 구부리고 양다리로 보행하는 것이 어려운 나는 전동휠체어를 이용한다. 그래서 땅바닥에 있는 꽃이나 작물을 키우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해왔다. 화초를 좋아하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 두려움 때문에 선뜻 키울 엄두를 낼 수 없었다.

하지만 최근 책상 위에서 화초를 키우는 일대 사건을 겪으면서 두려움이 ‘인식 오류’라는 작은 씨앗에서 자라났음을 깨달았다. 순전히 장애 때문에 화초를 키울 수 없다고 인식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화초의 위치가 문제였다.

전동휠체어 높이에 맞추어 화초를 책상 위에 올리자 스스로 물을 주고, 위치를 바꿀 수 있게 되었다. 최근에는 분갈이도 했다. 일상의 영역이 늘어나 매우 기쁘고 행복했다. 그것은 그것대로 의미가 크지만 “장애인의 기능이 손상되어도 사회가 이를 사회적 불리로 이어지지 않도록 환경을 변화시켜야 한다.”라는 ‘사회적 장애 모델’을 내 삶 속에 구체화하고 실제화시켰다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당사자로 활동하면서 지역 시민들에게 사회적 모델을 알리는 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실상 나의 삶 속에 그것을 녹여내지 못했고, 자신을 스스로 손상에 국한해 ‘가능’과 ‘불가능’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었던 과거 인식과 결별하는 것이니 일대의 사건이라 칭할 수 있다. ‘오류’가 ‘대전환’의 새로운 뿌리가 된 것이니 말이다.

▲공중정원 ©이민호
▲필자가 가꾸고 있는 탁자 위 화분 ©이민호

허리를 숙일 수 없는 손상은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는데 그 현상에만 집중한다면 내 삶은 비극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평생 손상을 무능력의 기준점으로 여기는 오류를 범했을 것이다. 이번 사건은 나를 비극에서 구출해주었고 화초 키우기의 세계를 열어 주었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는 ‘새는 힘겹게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하지만 나는 과거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애가 있는 사람인 내가 화초와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나가듯 이 땅의 수많은 장애인도 그러하기를 바란다.

‘장애학의 도전’을 쓴 저자 김도현은 “흑인은 흑인일 뿐이다.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흑인은 노예가 된다.”라는 마르크스의 말과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페미니즘적 명제를 인용하며 “손상은 손상일 뿐이다.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손상은 장애가 된다.”고 주장한다. 즉, 장애와 장애인은 변화하는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것이다.

다리 손상으로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은 ‘버스 탑승 불가능’, 청각에 손상이 있는 사람은 ‘의사소통 불가능’, 시각에 손상이 있는 사람은 ‘독서 불가능’이라는 장애와 사회적 차별을 경험한다. 이것에 대해 많은 사람은 ‘차별’과 ‘불가능’의 원인을 장애를 가지고 있는 개인에게서 찾는다.

여기에 나의 이야기를 대입시켜 보면 ‘화초 가꾸기 불가’는 다리 손상으로 인한 휠체어 이용이 원인이 아니라 바닥에 있는 화분과 밭에 의해 빚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불가능’의 원인을 몸의 손상에서 찾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더 생각해보아야 한다.

앞서 김도현 저자가 언급한 ‘특정한 관계’는 장애인에게 ‘차별적’이고 ‘억압적’인 관계를 뜻한다. 이 맥락에 의하면 우리 장애인은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는 결과에 도달하게 된다. 손상을 지닌 무능력한 사람이기 때문에 차별받고 억압받는 것이 아니다. 장애인 개인에 맞춘 지원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차별받고 억압받기 때문에 무능력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장애를 둘러싼 다양한 의제들을 ‘개인적 불운’이 아닌 ‘사회적 불평등’ 차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만든다. 아울러 장애를 바라보는 시야를 확장케 하여 장애 문제를 더 넓은 각도에서 접근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장애인 개인에게 이러한 과제를 전가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나서야 한다.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장애인권리협약 이행 2·3차 최종견해를 통해 “장애등급제가 6개 등급에서 2개 정도로 개편되었음에도 장애등급제를 포함하여 장애에 대한 의학적 모델이 한국 정부에 만연해 있어, 장애인의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적절한 서비스와 지원에의 접근을 제한하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며, 장애 모델의 변화를 주문했다. 장애인의 문제를 손상이 아닌 사회적 지원 부족으로 인한 차별과 억압 차원에서 접근해보자는 것이다.

2022년 12월 3일은 장애인이 더욱더 인간답게 생활할 수 있는 권리와 보조 수단을 확보하자며 1981년 제37회 UN(국제연합) 총회에서 지정한 제30번째 세계 장애인의 날이다. 한국 정부가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의 주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길 바란다.

불가능에 대응하는 새로운 일상을 발견하고 바닥에 있는 장애인의 권리가 책상 위로 올라오는 2023년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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