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호의 차별 속으로] 기후위기와 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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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커먼 우주 공간 중심에 아주 작은 푸른 지구가 떠있다. ©이민호
▲시커먼 우주 공간 중심에 아주 작은 푸른 지구가 떠있다. ©이민호
  • 삼등석에 탄 사람들

[더인디고=이민호 집필위원]

이민호 집필위원
▲이민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1912년 4월 14일 미국 뉴욕을 향해 첫 항해에 나선 타이타닉호는 북대서양 한가운데서 빙하와 충돌한 뒤, 엄청난 인명과 함께 차가운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1985년 내셔널지오그래픽 해양 탐험가 밥 발라드 박사에 의해 심해 4,000m에서 두 동강 난 채 발견된다.

하지만 이 사고는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 사고 당시 빙하는 북대서양에서 자주 출몰하는 요소였고, 통신으로 경고까지 받았다고 했다.

“괜찮겠지”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가 눈앞에서 빙하를 만난 것이다. 대처할 시간은 없었다. ‘충돌’에 그칠 수 있었던 것을 ‘침몰’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침몰 속에서 배 가장 아래 위치한 삼등석에 먼저 물이 찼을 것이고, 그곳의 승객들이 가장 먼저 죽었을 것이다. 가장 위에 있던 일등석 승객들은 가장 먼저 구명정에 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타이타닉호는 통째로 가라앉았다. 어쩌면 우리는 지구라는 거대한 배에 타고 있는 승객이다. 최근 배를 둘러싼 다양한 위험들이 가시화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반지하 방에서 폭우에 의해 참변을 당한 발달장애인 가족들이 있었다. TV를 켜면 기후변화로 몸살을 앓는 세계와 마주할 수 있다.

“코로나19는 재난이 ‘보편적’으로 발생하는 것 같지만, 그것의 악영향은 ‘차별적’임을 보여주었다. 사회의 약한 고리에 속한 계층에게 코로나19는 직격탄이 되었다. 또 기존의 불평등을 심화하는 촉발제가 되었다. 바이러스 사태는 재난의 사회적 차원을 우리에게 각인했고, 이 점은 기후 위기에서도 똑같이 나타나는 특징이다.”
<탄소 사회의 종말>, 조효제

2020년 세계 재난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발생한 자연재해는 총 7,348건이다. 123만 명이 죽거나 다쳤고 3,400여조 원의 재산 피해를 발생시켰다고 한다. 세계 곳곳에서 자연재해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산불로 인해 서울 면적의 3배가 잿더미로 변했고, 진화하는 데 3개월이 걸렸다.

동전의 양면처럼 콜롬비아가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는 동안 서유럽에서는 1천 년 만의 대홍수로 집이 침수되었고, 실종된 사람은 1천 300여 명에 달한다. 기후변화는 매우 다양한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고,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그래서 ‘기후변화(climate change)’를 뛰어넘어 ‘기후위기(climate crisis)’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하다.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은 장애인과 같은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더 큰 영향을 끼치지만, 해결을 위해 정부가 노력한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반지하에서 발달장애인 가족이 돌아가신 이후,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삭감했다는 소식만 접할 수 있었다.

“방법이 있겠으요?.., 누가 와 줄 건데요.. 꼼짝마라죠..” “태풍 오믄… 걱정이 앞서요.”
– 장애인 당사자 원성필-
“갑갑하고 답답하지요.. 우리한테 그런 어려움이 오믄 할 수 있는 거 없으요.”
– 장애인 당사자 김재민 –

비장애인보다 장애인은 재난 사고 노출 위험이 크고, 피해도 훨씬 크다. 2018년 보험연구원 발표 자료에 의하면 화재 시 장애인 사망자의 비율은 57.4%에 달한다. 이는 전체 비장애인 사망자 비율인 12.1%보다 4배나 높은 수치다. 하지만, 2019년 강원도 고성 산불 당시, 지상파 재난 뉴스 속보 어디에서도 수어 통역, 화면 해설을 제공하지 않았다. 재난의 중심에서 재난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복지 선진국인 독일도 다르지 않다. 홍수로 인해 독일의 라인란트팔츠주의 마을 진치히의 레벤실페 요양원에서 홍수가 난지도 모른 채 1층에서 잠을 자고 있던 12명의 장애인이 물에 빠져 죽는 참사가 벌어졌다. 기후위기 앞에 장사 없는 것이다.

“기후위기가 다가오면 저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가혹할 것 같아요.”
“물이나 식량이 귀해지면 가격이 올라가면 많은 사람이 고통을 더 크게 느낄 겁니다.”

– 비장애인 당사자 소명훈 –

이제 정부 부처에서도 장애 유형별 재난 대응 매뉴얼을 개발하고 있지만, 장애 당사자 중심이기보다 지원인의 행동 지침에 중점을 두고 있다. 산불, 홍수 등의 자연 재난이 발생했을 때 장애인을 지원할 수 있는 주변인이나 조력자가 없다면 그 행동 매뉴얼은 속 빈 강정이다. 아울러 그 지원인이 재난 대응법을 숙지하고 있지 않다면 오히려 더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충돌’에 그칠 수 있었던 것을 ‘침몰’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 국가의 책임을 한 개인에게 전가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앞으로는 국가의 책임이 더 강화되어야만 한다.

기후위기로 인한 자연재해는 타이타닉호에 온 빙하 경고 통신처럼 우리에게 위험을 알리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과거에 비해 더 많은 위험을 직시하고 있다.

지금 장애인들이 발 딛고 서 있는 공간은 언제든지 바다로 가라앉는 타이타닉호 삼등석이 될 수 있다. 가장 먼저 위험과 공포와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구명정은 필요하다.

[더인디고 THE INDIGO]

대구 지역 다릿돌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권익옹호 팀장으로 활동하는 장애인 당사자입니다. 국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장애 인권 이슈를 ‘더인디고’를 통해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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