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불편할 때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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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유튜브, 영화 등의 앱이 깔려 있는 태블릿 ©픽사베이
▲넷플릭스, 유튜브, 영화 등의 앱이 깔려 있는 태블릿 ©픽사베이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넷플릭스 시리즈물을 정주행하던 중 뭔가 허전함이 느껴진다. 이젠 1.5배 속도로 보아도 놓치는 내용이 없을 만큼 몰입된 상태인데 갑자기 무슨 장면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뭐지?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하면서 두 번쯤 되감아 보았을 때 화면해설 낭독이 사라진 것을 알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라진 것은 아니고 제작이 되지 않은 것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이 아닌 TV 시리즈물은 일반 버전이 업로드된 후 일정 시간이 지나야 화면해설 서비스가 추가된다. 방영된 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환혼’은 파트 1까지는 음성해설 작업이 이루어졌지만 빠른 정주행 중 따라잡게 된 파트 2는 현시점에서 방영 중이라 아직 서비스가 완성되지 않은 것이다.

현란한 몸놀림이나 번쩍이는 검술대결 장면이 많은 작품의 특성상 해설이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나 같은 보이지 않는 사람이 감상하기엔 그 이해의 정도가 크다. 배경 효과음이나 배우들의 대사들로 대략 짐작해서 볼 수도 있지만 이미 스무 편 정도를 완벽한 설명과 함께 보던 나의 감상 욕구를 채워주기엔 그 전달력이 너무나도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금한 다음 내용을 볼 것인가와 조금 참고 기다린 후 해설 버전으로 볼 것인가 사이에 잠시간의 갈등이 있긴 했지만 난 긴 고민 없이 기다리는 것을 택했다.

아주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 난 아무런 추가 해설 없는 영화나 연극을 즐기면서 살았다. 동행한 이들의 친절한 설명이 매번 있으면 좋았겠지만 조용한 공연장의 특성상 그런 것을 늘 기대할 수는 없었다. 대사가 명확한 장면들의 내용을 짜깁기하여 전체 내용을 추측했다. 섬세한 부분까지 명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전체적인 스토리를 대략이나마 이해하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다.

배경음악이 너무 크거나 액션이 많은 것 혹은 표정 연기가 주가 되는 극들은 거의 이해 불가인 것들도 있었지만 그런 와중에도 사람들과 같은 극장에서 무언가를 감상하고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두기도 했다. 그러고는 나도 다른 이들처럼 공연을 즐긴다고 칼럼을 썼다. 모든 장면을 완벽히 알 수는 없지만 내가 세상을 보는 것도 그런 작은 포기들이 섞여 있는 것이라며 너그러운 척 합리화를 덧붙였다. 솔직히 말하건대 그땐 그게 진심이었고 난 진정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감상법으로 최대한 즐겼다.

일부 영화관과 연극무대에 해설이 입혀지고 OTT 서비스에는 거의 실시간으로 음성해설 옵션이 붙기 시작했다. 여전히 내 눈으로 화면을 볼 수는 없지만 거의 보는 것만큼의 감상이 가능해졌다. 해설이 없는 작품들은 보지 않게 되고 언젠가부터는 그건 감상이 아니라고까지 느껴졌다. 영화관에 들어가는 안내만 해 주면 나도 나만의 방법으로 어떤 영화도 감상할 수 있다고 당당히 주장하던 몇 년 전의 내가 보았다면 지금의 나는 너무도 나약하고 용기 없다고 할 수도 있겠다.

오늘의 내 결정도 그랬다. 난 조금 놓치는 것을 감수하고 약간 불편한 채로 시리즈의 파트 2를 계속해서 감상할 수 있었지만 편안한 해설 속에 완벽한 감상에 익숙해져 버린 나는 그 선택지를 택하지 않았다.

지금 내 솔직한 마음은 다음 편의 내용이 너무도 궁금하다. 일반 버전의 영상이 업로드 되는 순간 화면해설이 함께 올라오지 않는 것도 불만이다. 누구든지 같은 시간에 동일한 영상을 각자에게 맞는 방법으로 보아야 한다고 어디엔가 외치고 싶다. 그 주장은 다시 생각해도 틀리지 않는다. 다만 오늘의 내가 이렇게 불편한 마음을 가지게 된 계기는 그동안의 편안함에서 출발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화면해설이라는 것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그리고 그만큼이나 익숙해지지 않았더라면 난 어떤 작품도 불편함을 당연시하며 보았을 것이다. 편안함의 크기가 커진 만큼 다시 느끼게 된 허전함의 크기가 커져 버렸다. 자동차를 타 본 사람이 멀리 걷는 것의 불편함을 느낄 수 있고 많이 가져본 사람이 부족함을 안다. 오늘 내가 느낀 불편함은 그동안 화면해설 작품을 만들어 주신 분들의 수고로움 덕분임을 안다.

세상은 점점 나아지고 있지만 계속 나아져야 한다는 것은 어느 시점에도 완벽하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더 좋아지는 만큼 이전의 편안함은 상대적으로 불편함이 되고 만다. 불편함이 느껴진다면 그만큼 편안해졌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게 새로운 불편함이 느껴진다면 그것을 불편함으로 느끼게 할 만큼 많은 편안함을 만들어 준 이들에게 감사하자.

불편함은 끝나지 않는다. 그때마다 나의 감사함도 끊임없이 함께하기를 바란다. 내 글을 보고 환혼 파트 2의 화면해설 작업을 더욱 빠르게 서둘러줄 관계자 여러분께 미리 감사드린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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