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 그들이 전하는 이야기 21] ③ 고미라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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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0일 제21차 화요집회에서 부모연대 서울지부 양전지회 고미라 회원이 발언하고 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지난 1월 10일 제21차 화요집회에서 부모연대 서울지부 양전지회 고미라 회원이 발언하고 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더인디고] 중증 자폐성 발달장애를 갖고 있는 둘째 아들과 9살 위의 비장애 큰아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둘째는 현재 일반학교 통합반을 다니는 중3 학생입니다.

정상 발육하고 있다고 생각한 둘째 아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느낀 건 생후 25개월경부터였는데요. 활발했던 아이의 표정이 없어지고 언어가 점점 소거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가 30개월 되었을 때는 무발화, 무표정이 한 달간 지속되었습니다.

그 당시 제 가족은 남편 직장을 따라 싱가포르로 이주해 살고 있었는데 출산과 아이의 양육을 외국에서 하다 보니 그 상황에서 도움받을 곳을 찾는 것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무엇보다도 고통스러웠던 것은 혼자서 아이의 이런 상태를 받아들이고 견뎌내는 것이었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든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 무렵엔 아이가 잠들면 혼자 울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습니다. 그때마다 큰아이가 눈에 밟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남편도 퇴근 후에 혼자서 발달장애 자료도 찾고, 공부하면서 정말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남편에게 모든 탓을 돌리며 미워했던 제 모습이 기억나면서 애틋하고 미안한 마음을 느꼈습니다.

아이가 42개월 때 한국에 휴가차 나왔는데, 친정 근처 장애인복지관, 정신과, 기타 기관을 방문하고 상담하면서 저는 아들과 싱가포르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남편이 6학년인 큰아들과 단둘이서 싱가포르로 돌아가 6개월간 그쪽 생활 마무리하는 동안 저는 한국에서의 정착 준비와 둘째 아들의 치료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큰아이가 중1부터 진학해서 처음으로 한국 학교에 다니는데 한국말이 안 되고 수업과 문화에 적응이 어려워 아주 힘들었고, 심지어 왕따도 당했다고 들었습니다. 더 슬픈 건 큰아이가 장애 동생의 특이 행동들에 대해 어떤 불평도 하지 않고 참고 지내며 홀로 청소년기를 보냈다는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본인도 많이 힘들었을텐데 아마 힘들어하는 부모를 보며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어 모든 상황을 감내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남편은 직장을 포기하고, 재택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는데 수입이 일정치 않아 경제적으로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그 와중에 아이의 치료는 계속 늘어나고 아이에게 매달리는 시간도 하루 종일이라 그 당시 저는 큰아이의 양육은 전혀 신경 쓸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은 큰아이가 중학교, 고등학교 다니는 동안에 학업 관리를 직접 하는 걸로 사교육을 대신했고, 절감된 사교육 비용은 둘째 아이 치료비로 추가 지출했습니다. 치료비 문제로 남편과 지속해 다툼이 있었습니다. 남편은 ‘치료를 줄여서 지출을 줄여라’, 저는 ‘치료를 더 해야 한다’는 의견이 늘 부딪쳤습니다.
이상의 내용은 아마 여기 계신 부모님들과 서로 비슷한 아픔과 공감을 이룬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양육하면서 느낀 문제점을 과거와 현재로 나눠 요약해보았습니다.
과거 양육 문제점은 ▲발달장애에 대한 생소함, 즉 외부와 차단된 고립감, 발달장애의 정의 이해 부족 ▲발달장애 문제행동에 대한 주변 인식에서 오는 위축감(돌발, 이상한 방식의 언어표현, 도전행동 등) ▲정신과, 치료실에 대한 불신, 아이의 치료 지연, 정상화에 대한 희망 고문 ▲합리적인 치료 세팅 없고 과다한 치료비 지불 ▲비장애 형제의 고통(장애형제 케어로 인해 비장애 형제에게 소홀한 양육으로 인해 뒤늦은 공감 형성)입니다.

현재 양육 문제점은 ▲의무 교육기관의 허상(특수, 일반, 대안 등 교육 방향을 선택할 수 없음) ▲주 양육자의 연령이 높아짐(정보 공유의 불평등, 기력저하, 질병 ➜ 장애자녀 방치) ▲환영받지 못하는 발달장애인(지역, 집단 이기주의에 의한 님비 현상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지역사회 장소, 공간이 줄어듦) ▲갈 곳이 없는 성인발달장애인(기관, 직장 등 기한이 정해져 있고, 모든 곳이 대기, 도전행동이 있으면 받아주지 않음) ▲미래의 불확실성(우리가 여기 있는 이유, 성인 발달장애인에게 의미 있는 낮 활동, 직업, 주거는 반드시 필요)입니다.

현재 발달장애인 인구는 약 25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0.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서울시 복지재단의 가족조사를 인용하면 보호자의 건강 상태 나쁨 41.7%, 긴급 시 도움을 요청하고 대신 돌봐줄 사람이 없다 53.0%, 미래에 대한 불안감 91.3%입니다. 이런 수치에서 알 수 있듯이 발달장애인 가족은 늘 생활의 불확실성과 불안감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는 발달장애인 자녀와 그 가족을 위해 ▲돌봄 욕구의 해소를 위한 24시간 지원체계 구축하고 ▲발달장애 장노가정, 한부모, 위기 가정의 사회적 고립 해소를 위한 특별조치를 마련하고 ▲발달장애인의 체계적인 미래계획의 구체적인 지원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원합니다.

이를 구축하는 것은 정부 입장에서도 결코 손해가 아닙니다. 발달장애인 당사자 삶의 기본이 보장된 미래는 우선 가족 전체의 건강을 지켜줌과 동시에 가족들이 생산 인구로 전환됨으로 경제를 선순환시킬 것입니다. 정부는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발달장애인들의 체계적 복지를 위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대처를 해 줄 것을 강력히 요구합니다.

–2023년 1월 10일 오전 11시, 화요집회 21차 중에서 –

[더인디고 THE INDIGO]

반복되는 발달장애인과 가족의 죽음을 멈춰달라며 윤석열 정부를 향해 삭발과 단식에 이어 고인들의 49재를 치르며 넉 달을 호소했지만, 끝내 답이 없자 장애인부모들이 다시 거리로 나왔다. 2022년 8월 2일부터 ‘화요집회’를 통해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호소하기 위해서다. 더인디고는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의 협조로 화요집회마다 장애인 가족이 전하는 이야기를 최대한 그대로 전하기로 했다.

20년 넘게 과학교재를 만들고 있습니다. 1년간 더인디고 기자로 활동하며 사회적 소수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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