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에게 살해당한 장애인 딸 “용서할 수 있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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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의 촛불들이 빛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추모의 촛불들이 빛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 뇌병변장애인 비속 살해 집행유예
  • 인천지법 “38년 돌봤고 우발 범행
  • 한뇌협 유감”… 숨진 딸 빙의 “어머니의 차례상 받고 싶지만…

[더인디고 조성민]

중증 뇌병변장애인 딸을 살해한 인천의 60대 어머니 A(64세) 씨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되자, 20일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는 설을 앞두고 “깊은 유감과 우려를 표한다”며 “피해자 입장에 빙의”해 성명을 발표했다.

인천지법 형사14부(류경진 부장판사)는 지난 19일 30대의 장애인 딸을 살해한 A 씨에게 실형 대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아무리 어머니라고 해도 딸의 생명을 결정할 권리는 없고, 우울증 등 정신질환이 있었더라도 법률상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38년간 피해자를 돌본 점, 또한 대장암 진단 후 항암치료 과정에서 극심한 고통을 겪는 딸의 모습을 보며 우발적으로 범행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이어 “장애인을 돌보는 가족들이 국가나 사회 지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오롯이 자신들의 책임만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며 “이번 사건도 피고인 탓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A 씨는 지난해 5월 23일 인천시 연수구 한 아파트에서 30대 딸에게 수면제를 먹인 뒤 살해한 혐의로 불구속기소 됐다. 범행 후 자신도 수면제를 먹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지만, 가족에게 발견돼 목숨을 건졌다.

이에 대해 한뇌협은 “아마도 형량이 가장 낮은 ‘참작 동기 살인죄’에 ‘감경’을 더해 내린 선고”라고 추측하며, “이 경우 ‘정상적인 판단력이 현저히 결여한 상태에서 가족을 살인한 경우’에 해당돼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한뇌협은 “하지만 판결문에는 어머니가 ‘법률상 심신미약에 이르렀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적시돼 있는 만큼, ‘보통 동기 살인’을 적용하면 형량이 기본 최소 10년에 감경이 적용되더라도 최소 7년이라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법리에 어긋남에도 왜 재판부가 집행유예를 결정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며 “이번 재판부의 선고는 국가나 사회의 지원이 갖춰지기 전까지는 어머니처럼 장애를 가진 가족을 죽여도 감옥에 가지 않을 수 있다는, 살인 면허에 준하는 잘못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재판부를 겨냥했다.

이어 한뇌협은 숨진 딸에게 빙의해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가족을 포함해 40년 가까이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이 세상을 향한 마음을 글로 전했다.

요약하면

저와 같은 중증장애인들에 대한 돌봄 부담의 책임을 오롯이 개인과 그 가족에게 전가하는 국가와 지역사회의 문제는 그것대로 제기하고 해결해야 합니다. 하지만 왜 어머니가 저를 40년 가까이 홀로 돌봐오셔야 했는지, 왜 저를 죽이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셨는지 온전히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동생의 말대로 40년 가까이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혀 살았습니다. 부족하겠지만, 활동지원서비스처럼 어머니의 부담을 덜 수 있는 제도가 있는데 왜 알아보고 이용할 생각을 안 하셨을까요? 제가 세상에 드러나는 것이 부끄러우셨을까요? 아무리 제가 대장암으로 고통스러워했더라도 어머니의 귀한 딸이었다면 어떻게 죽일 생각까지 할 수 있을까요?

저도 어머니를 용서하고 싶습니다. 어머니가 감옥에 가지 않으셔서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싶습니다. 이번 설 명절에 어머니가 차려주신 따뜻한 차롓밥을 마음 편히 먹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러기엔 제가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모 방송사에서 방영된 드라마 ‘일당백집사’ 12화는 초등학생 딸을 죽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그 드라마에는 딸의 꿈이 자세하게 나옵니다. 그런데 저의 사건에는 제가 중증장애인이고, 대장암을 앓고 있었다는 것 외에는 전혀 없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고, 어떠한 삶을 살고 싶었는지, 어머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고, 또 듣지도 않았습니다. 결국 저의 꿈은 세상에 드러나지도 않은 채 깨져버렸습니다.

어머니를 용서하고 싶습니다. 제가 어머니를 온전히 용서할 수 있도록 저의 이야기, 저의 꿈이 세상에 온전히 드러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처럼 어머니의 손에 죽임을 당하는 장애인들이 더 이상 생겨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법 앞에 장애인도 동등한 인격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더인디고 jsm@theindig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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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인디고 대표] 20대 80이 경제적 불평등의 상징이라면,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 20은 권력의 불평등을 뜻하는 숫자 아닐까요? 20의 다양성과 차이를 함께 나눔으로써, 80대 20이 서로를 포용하며 보듬어가는 미래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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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철
1 year ago

 <인간의 생명권은 어디에 있는가?> 38년의 시간 동안…이 사건의 어머니가
차라리 힘들다고 국가 기관 앞에서 시위를 하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 극단적으로 국가 기관에 위탁이라도 했으면 … 죽임을 당한 그 장애가 있는 사람이 살수는 있을 텐데..
요즘도 장애인 및 그 가족들 중에는…

특히 최중증의 장애자녀와 함께 살아가는 부모들은 동반 자살을 수시로 생각을 하는데, 어떤 부모님은 그 시기를 넘어 작년부터 제발 그러지 말라고 맘 고쳐먹는 일이 시급하다고 정확히 얘기 하더라구요.

자식은 자신의 소유물이 아니라고 하는 sns 내용을 보면 …공감 가는 성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