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장애인식개선교육 그 이전에 필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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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람들이 무지개 카펫 위를 걷고 있다. ©unsplash
▲여러 사람들이 성소자 운동을 상징하는 무지개색 카펫 위를 걷고 있다. ©unsplash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학교를 포함한 공공기관들은 1년에 두어 번씩 의무적으로 장애인식개선교육을 한다. 언제 어떤 이의 머릿속에서 처음으로 구상된 계획인 줄은 모르겠으나 그 실효성에 대한 내 생각은 그리 긍정적이지 못하다. 성폭력 예방 교육이나 심폐소생술 교육 같은 다른 의무 연수들과는 달리 그 교육에서 다뤄야 하는 내용이 정해진 것도 아니어서 무대에 서는 강사에 따라 내용도 극과 극으로 다르다.

“장애는 특별히 다른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이도 있고 “장애는 불편하고 다른 것이니 올바른 배려가 필요해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복지정책의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하는 반면에 혜택보다는 경쟁할 기회가 절실하다고 외치는 강사도 보았다. 들으면 들을수록 하나의 생각으로 정리되기 어려운 연수들은 장애와 관련된 경험 없는 이들에겐 더 큰 혼란이 되기도 하는데 잠시만 생각해 보면 이는 너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올바른 인식’이라는 것은 원래부터 주관적일 수밖에 없고 어느 부분이 잘못되었는지 어느 쪽으로 개선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도 모든 장애인이 모여 합의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선진학문 좀 배웠다거나 책 좀 읽었다고 하는 학자들 몇몇이 모여서 가이드북 같은 것을 만들기는 했으나 나 자신 혹은 내가 아는 다수의 장애인이 그 방향성에 만장일치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장애인은 혐오의 대상이 아닙니다.”라든가 “차별은 나쁜 것입니다.”라는 정도의 원초적인 표어라면 특별히 반론 제기하는 이 없이 합의할 수 있겠지만 그런 것쯤이야 굳이 시간 내어 연수받지 않아도 대다수의 머릿속에 이미 기본 장착된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들이라도 반복해서 알려주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겠으나 난 그 정도 작은 일에 모든 공공기관 고급 인력들의 시간을 쏟아붓는 것은 굉장히 가성비 떨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혹여 그런 단순한 것 아니라 모든 장애인의 삶의 질을 높여주고 싶은 거대 담론을 끌어내는 것이 연수 창조자의 본래 목표였다면 그것은 현실 가능성이 애초부터 떨어지는 이상적 설계였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불편한 것과 당신이 힘들어하는 부분이 다르고 내가 꿈꾸는 것과 내 친구가 바라는 것이 같지 않은데 장애인이라고 그것이 동일할 리 만무하다. 앞 못 보는 아이들끼리 모인 우리 학교 학생총회만 하더라도 학교의 개선방안을 주제로 토론하면 각자 다른 의견들로 열띤 토론이 벌어지는데 세상의 장애인식을 바꾸겠다는 방법에 대해 같은 모양으로 국민들을 계몽할 방법이 있을리 없다. 다양한 이들의 삶을 통해 다름에 자극 받을 기회를 준다든가 장애인들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업이라면 오히려 동의할 수 있겠다.

어떤 이가 청년에 대한, 노인에 대한, 여성에 대한, 남성에 대한, 혹은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이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이고 이들에게는 이렇게 해줘야 합니다.”라고 강의하면 그로 인해 그 범주에 포함되는 당신의 삶이 얼마나 나아지리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죠.”라는 정도의 답변이 가장 긍정적인 축에 속하지 않을까?

오랜만에 대학 동기들을 만났다. 6명의 친구 중 장애 혹은 그것과 관계한 것에 관련 있는 사람은 시각장애 있는 나뿐이다. 20년 넘게 이 친구들과 만나면서 난 단 한 번도 “장애는 이런 것이야!”, “장애인을 만나면 이렇게 대해야 해.”라고 말해 본 적 없지만 난 이 녀석들과의 술자리에서 한 번도 배제당하거나 차별받는다고 느껴본 적 없다. 때로는 능청스럽게 자기들끼리 맛난 안주를 집어 먹기도 하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 그들에게 나로부터 출발한 특별한 인식개선 교육이 필요하다고 느낀 적도 없다.

우리는 장애와 비장애라는 카테고리의 분리 아니라도 대부분이 다른 존재이므로 약간의 충돌이나 다툼이 있던 적은 있었지만, 그것은 서로가 함께 하는 시간 동안 맞춰지고 다듬어지면서 최선의 방법들을 저절로 찾아갔다.

어느 시점에서부터인가 친구들은 내게 고기를 구워 주어야 하고 찌개를 덜어주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했지만 다른 면에서 나도 그들에게 그 정도의 배려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녀석을 위해 조금 비싸더라도 알코올 없는 음료수를 시켜주기도 하고 입맛 까다로운 어떤 친구를 위해 너무도 가고 싶은 식당을 포기하기도 한다. 그런 모든 것들은 어떤 의무교육이나 개선작업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같은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이 되는 순간 나름의 방식들로 공동체라는 것을 이뤄간다.

‘폭력은 나쁜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소중한 인격체입니다.’ 따위의 기본적 윤리교육이 필요할 수 있겠으나 그것은 최소한으로 족하다.

난 내 친구들이 예외적으로 선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내 장애에 대해 최고 수준의 감수성을 발휘하지만 다른 장애 가진 이들에게 그 인식의 확장성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그렇지만 언제 같은 공간에 있을지도 모르는 이들을 위해 우리가 모두 모든 다름을 배울 필요까지가 있을까?

내가 흑인 여성이나 희소 종교를 가진 이들을 대하는 방법을 안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긴 하지만 그것을 모든 공공기관 종사자가 의무적으로 배울 필요까지는 없다고 본다. 내 친구들은 분명 나에게 한하는 장애인식 개선이 이루어진 것이지만 내가 어느 공간에서 강연자로 나선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는 것은 나 혹은 나와 비슷한 이들만 관련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의 술자리에서 어떠한 차별도 발생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친구로서 오랜 시간 함께 했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이들이 집 앞 학교에 갈 수 있고 원하는 직장에 입사하고 동네의 놀이터에 갈 수 있다면 그들은 그들의 친구를 가지게 되고 그 안에서 불편하지 않은 공동체들을 창조해 나갈 것이다.

작지만 각자의 차별 없는 공간들 속에서 그들은 멀리 있는 다른 이들의 생각을 굳이 노력해서 바꿀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평등하지 못한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 처음부터 함께 살 수 있는 자격을 공평하게 부여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되돌릴 수 없는 불편한 인식들이 만연한 세상을 한두 시간의 교육으로 바꾸려는 생각 대신 그 어떤 누구도 친구가 되고 공동체의 구성원이 될 기회를 되돌리려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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