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독자에게 다가가는 마음 중요”… ‘읽기 쉬운 책’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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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기념회 한 참석자가 읽기 쉬운 책을 보고 있다. ⓒ 더인디고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 앞에 전시된 읽기 쉬운 책들을 살펴보고 있다. ⓒ더인디고
  • 국립장애인도서관, 동화·위인전 등 15종 선봬
  • 작가, 특수교육전문가 개발원저자·당사자 검증
  • 같은 도서도 문해 수준달리해 비교 가능
  • 이해하기 쉬운 정보 등 국가 정책 강조제기

[더인디고 조성민]

“처음 동화를 봤을 때는 이해가 어려웠어요. 제작에 참여하면서 재미도 느꼈고, 지금은 읽을 수 있습니다.”

‘읽기 쉬운 책’ 제작 과정에 검증단으로 참여한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효자동 레시피’ ‘장영실’, ‘가방 들어주는 아이’ ‘우산과 미꾸라지’ 등의 창작동화나 위인전 등을 언급하며 인터뷰한 내용 일부다.

발달장애인 등을 위한 ‘읽기 쉬운 책(easy-to-read book)’이나 ‘이해하기 쉬운 정보자료’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는 분위기다. 글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문해력 역시 모두가 누려야 할 ‘권리’인 데다, ‘발달장애인권리보장법’이나 ‘UN 장애인권리협약’ 등에도 이를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먼 이야기다. 최근 투표권을 비롯한 장애당사자들의 요구에 비해 국가는 “검토하겠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는 것이, 지난 1월 한 토론회(발달장애인 권리보장을 위한 이해하기 쉬운 정보자료 토론회)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지난달 31일 국립장애인도서관 주최로 ‘발달장애인을 위한 읽기 쉬운 책 출판기념회’가 국회의사당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읽기 쉬운 책’의 필요성을 널리 알리고, 관련 제작을 촉진하고자 마련된 자리다. 국립장애인도서관이 나선 데에는 발달장애인이 도서관 이용에서도 소외되지 않으면서, 누구나 동등한 독서문화의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이러한 시도가 국내에서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5년 공익활동을 펼치는 민간단체 ‘피치마켓’이 러시아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번안한 바 있다. 당시에도 국립장애인도서관의 ‘발달장애인용 쉬운 책 개발’ 보고서를 토대로 ‘피치마켓’이 제작하고 국립장애인도서관과 스위치랩이 협력했다.

하지만 이번 출판기념회에 선뵌 15종의 책들은 발달장애인의 다양한 학년이나 연령을 고려한 것이 특징이다. 베스트셀러 저자의 창작동화를 중심에 두고, 작가를 비롯해 특수교육전문가, 언어재활사 등도 직접 개발에 참여했다. 원저자와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검증까지 진행함으로써 유아 그림책, 초등 동화, 위인전, 고전, 교양, 실용 서적 등이 나름대로 완성도 있게 재탄생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책 제작에는 김경양 서울시 장애인의사소통권리증진센터장 등이 지난 2021년에 연구한 ‘발달장애인을 위한 알기 쉬운 자료 제작 안내서’에 따라 국가문해교육센터의 문해 수준을 적용했다. ▲‘수준 Ⅱ(쉬운 읽기)’는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의 읽기로, ▲‘수준 Ⅲ(보통 읽기)’은 중학교 수준의 읽기로 기준을 각각 정했다. 특히, 같은 제목의 도서임에도 ‘수준 Ⅱ(노란색 라벨)’와 ‘수준 Ⅲ(파란색 라벨)’으로 비교 가능케 했다. 각기 다른 책으로만 제작하면, 향후 읽기 쉬운 책을 만들 때 기준이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읽기 쉬운 책 제작과정_수준Ⅱ(왼쪽)와 수준Ⅲ(오른쪽) ⓒ더인디고
▲발달장애인을 위한 읽기 쉬운 책 제작과정_수준Ⅱ(왼쪽)와 수준Ⅲ(오른쪽) ⓒ더인디고

관련해 이상권 작가의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웅진주니어)’, 고정욱 작가의 ‘선생님이 들려주는 장영실(도서출판 산하)’, 김현주 작가의 ‘사람을 구하는 개 천둥이(아르볼)’ 등은 수준Ⅱ·Ⅲ을 동시에 제작, 발달장애인이 책을 고를 수 있도록 했다. 실제 이날 출판기념회 행사장 입구에는 관련 도서들이 원문과 함께 전시돼 참석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제작과정에 참여한 김현주 작가는 “읽기 쉬운 글로 고치는 작업뿐 아니라 발달장애인 당사자나 어린이와 대화할 때도 적용하면 좋을 것 같은 규칙을 터득하게 됐다”며 7가지 경험을 소개했다.

김 작가에 따르면 △문장은 쉽고 짧게, △알기 쉽고 뜻이 분명한 낱말을 고르고, △주어는 표기하고, 피동형(수동형)은 가능한 피하기, △내(작중화자)가 누구인지 먼저 알려주고 화자의 입장에서 상황 설명하기, △대화의 경우 누가 지금 말하고 있는지 알려주기, △(미루어 짐작하지 않도록) 주인공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유를 적기, △내 마음(주인공의 마음)이 지금 어떤지를 정확히 알려주기 등이다.

▲김현주 작가가 제작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 더인디고
▲김현주 작가가 제작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 더인디고

몇 가지 원칙을 정해도 어려움은 남기 마련이다.

김 작가는 쉽게 고쳐쓰기 과정에서 “원고 분량이 늘어나고, 대화체 표기 방법, ‘수영한다’와 ‘헤엄친다’ 중 쉬운 어휘는 무엇일지, 글과 그림의 관계, 말풍선 등 만화기법의 읽기 방식 등에 있어서 많은 논의가 이어졌다”며, 하지만 언어를 통해 발달장애인 독자를 가르치며 훈련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독자에게 어떻게 전달할지에 대한 태도와 마음의 문제”라고 역설했다.

김경양 센터장은 “비장애인도 문해력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발달장애인 등은 이 문제가 더 심화할 수밖에 없다”고 전제한 뒤, “OECD나 UNESCO 등에서 ‘문해’는 포괄적이며 구체적인 능력으로 개념을 확장하고, 이에 어려움이 있는 이들을 돕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서 기울이고 있다”며, “그동안 발달장애인이 얻지 못한 문해력 기회와 경험을 늘릴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발달장애인 수준에 따른 적합성을 따지는 것도 꼭 필요한 일이지만, 선택은 당사자의 몫인 만큼 다양하게 만드는 일 역시 우리의 몫”이라며, 국립장애인도서관을 비롯해 더 많은 작가 등의 참여를 제안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출판기념회에는 감각장애인,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가족, 제작과정에 참여한 연구진과 출판사, 장애인단체 관계자, 그리고 여당인 국민의힘에서는 정희용, 김예지, 김승수 의원, 더불어민주당에선 강선우 의원이 현장에 참석해 ‘읽기 쉬운 책’과 관련한 정책적인 관심을 보였다.

원종필 국립장애인도서관장은 “읽기 쉬운 책 제작과 보급은 발달장애인이 스스로 독서 문화생활을 시작할 수 있는 출발점”이라며, “앞으로도 읽기 쉬운 책 제작사업을 계속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예지 의원은 축사를 통해 “모든 사람이 글을 읽고 이해하는 문해력의 수준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장애의 특성을 고려한 읽기 쉬운 책이 제작됐다는 것은 발달장애인의 독서접근권을 보장하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며 “이번 사례가 앞으로 독서권의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 의원은 지난해 9월, 장애인 등 ‘독서소외인’의 독서권 보장과 독서 접근성 제고를 내용으로 ‘독서문화진흥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바 있다.

▲한 참석자가 ‘사람을 구하는 개 천둥이’ 원문과 읽기쉬운책(수준Ⅱ, 수준 Ⅲ)을 비교해 보고 있다. ⓒ더인디고
▲한 참석자가 ‘사람을 구하는 개 천둥이’ 원문과 읽기쉬운책(수준Ⅱ, 수준 Ⅲ)을 비교해 보고 있다. ⓒ더인디고

이날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장애계 관계자는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자료가 발달장애인만이 아닌 학습장애가 있거나 이주민 등 모두를 위한 ‘권리’로 인식해 국가가 나서야 함에도 아직까진 민간 영역의 필요성에 의해 강조되는 것 같다”며 “관련 연구나 기준도 없이 비장애인 전문가 등이 제 각기 제작하다 보면 혼란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더인디고 jsm@theindig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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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인디고 대표] 20대 80이 경제적 불평등의 상징이라면,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 20은 권력의 불평등을 뜻하는 숫자 아닐까요? 20의 다양성과 차이를 함께 나눔으로써, 80대 20이 서로를 포용하며 보듬어가는 미래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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