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석의 잡썰] 불구(不具)에 대한 두 프로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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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생산의 의도와 보고서 편집과정에서 인지하지 못하는 개인, 집단, 대중을 상대로 한 관료주의 프로파간다는 민주주의 현대 국가에서 고안해낸 정책 선전 전략이며 전문가들과의 지지를 통해 공고해진다. Ⓒ 더인디고 편집
▲보고서 생산의 의도와 보고서 편집과정에서 인지하지 못하는 개인, 집단, 대중을 상대로 한 관료주의 프로파간다는 민주주의 현대 국가에서 고안해낸 정책 선전 전략이며 전문가들과의 지지를 통해 공고해진다. Ⓒ 더인디고 편집

[더인디고=이용석 편집장]

이용석 편집장
▲이용석 더인디고 편집장

한 소년을 들어 올려 품에 안은 김건희 여사의 활짝 웃는 모습과 그 뒤로 배경처럼 서성이는 윤석열 대통령을 담은 사진을 보고 잠시 어리둥절했다. 알고 보니 지난해 11월 윤석열 대통령이 캄보디아를 방문했을 당시 김건희 여사가 현지 의료 취약계층을 찾았을 때 만났던 소년이었다. 당시 심장병을 앓고 있는 로타를 안고 찍은 사진이 공개되면서 “빈곤 포르노” 논란이 일기도 했다. 로타는 국내 한 병원에서 건강을 되찾았고 이날 대통령실을 방문해 김 여사와 재회했던 모양이다. 로타가 김 여사와의 사진 한 장으로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니 여간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김 여사 또한 자신의 선의(善意)의 선택이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현실적 경험이 ‘약자 복지’라는 윤석열 정부의 통치 철학을 알리는 전통적인 프로파간다(propaganda)로는 제격이라고 여겼을 수도 있다. 선전, 선동을 의미하는 프로파간다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매우 중요한 정치공학적 전술 중 하나로 확장된 만큼 김건희 여사의 선택과 실천은 비판이든 지지든 상관없이 여론의 주목을 받은 만큼 성과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전날 보건복지부가 개최한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 공청회는 옹색했고 초라했다. 윤석열 정부의 장애인 정책 방향성과 국정철학이 담긴 만큼 장애계의 기대는 컸지만 막상 포장을 뜯어내고 들여다 본 내용은 이전 정부가 설정했던 정책 범위와 방향성을 극복하지는 못했다. 고도화, 선진화, 확대, 강화 등 정책 설명 뒤에 어김없이 붙어 있던 거창한 종결어미들로는 정책 내용의 지리멸렬함을 감추지는 못했다. 정책 설명 이후 부록처럼 마련된 토론 시간에도 정책 설계 과정에 참여했던 전문가들의 소회가 대부분이었을 뿐, 정작 정책의 수요자들의 질의는 군더더기처럼 최소화했으니 보건복지부 입장에서는 번거로운 일손을 던 셈이다.

김건희 여사가 대중 일반 국민을 상대로 매체를 통해 ‘약자 복지’의 윤석열 정부의 고전적 프로파간다를 보였다면, 지난 31일 정부는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 공청회를 통해 관료주의적 프로파간다를 행했다고 볼 수 있다. 즉, 장애인 정책이라는 대상이 장애를 가진 시민으로 한정된 국가 정책을 설계하고 발표하는 과정에서 고도화는 발전으로, 선진화와 확대는 보편화와 포괄로, 그리고 강화는 의무화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만을 남겼을 뿐이다.

프로파간다는 대중 여론이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 된 민주주의 현대 국가에서는 국민의 생각을 지배하기 위한 필수적인 통치 수단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예전과 달리 국민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는 공권력으로 통칭되는 물리력 외에 이렇다 할 묘안이 없는 상황이었던 1980년대 은밀하게 재구성된 것이 바로 ‘관료주의 프로파간다’라고 한다. “보고서 생산의 의도와 보고서 편집과정에서 인지하지 못하는 개인, 집단, 대중을 상대로 관료조직이 어떤 대상을 평가하는지 등을 담은 보고서를 생산하는 행위”를 통한 프로파간다는 전문가 집단의 암묵적 동조가 더해지면 훨씬 공고해진다.

달라지는 것은 없을 듯하다.

김건희 여사는 가난한 나라의 한 어린 생명을 구했다는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사실을 남겼다면 전날의 공청회는 앞으로 5년 동안 장애인 정책은 그다지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떠름한 기억만을 남겼다. 어쩌면 또다시 장애당사자들은 새롭게 고도화된 전달체계를 좇아 불구(不具)가 얼마나 자신과 가족들의 삶의 질을 저하시키는지 구구하게 증명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지 모른다.

‘약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책임을 다하려는 국가는 존재하고 그래서 국가의 책임은 무한하고, 국가를 운영하는 권력은 유한한 이유이기도 하다. 흔히 장애인 정책에 소요되는 국가 예산이 예전에 비해 비약적으로 늘었다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같은 기간 동안 전체 국가 예산 또한 큰 폭으로 늘었으며, 국민소득도 꾸준히 늘었으며, 삶의 비용도 그만큼 증가했다. 장애인 정책 예산이 는 만큼 관련 종사자들의 수도 많아졌으며 이들이 일하는 전달체계 기관들도 당연하게 늘어났다. 늘지 않은 것도 있다. 전체 인구수 대비 장애인 비율은 5%를 유지하며, 장애인 서비스를 받는 당사자의 수도 예산 증가만큼 늘지 않으며 더구나 선진화되고 고도화된다는 장애인 정책의 체감도는 현저히 낮다. 왜지?

[더인디고 yslee506@naver.com]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소설 대신 세상 풍경을 글로 그릴 작정입니다. 사람과 일, 이 연관성 없는 관계를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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