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멋지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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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있는 사람 ⓒ픽사베이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있는 사람 ⓒ픽사베이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는 시각장애 친구들을 보면 총각인 나로서는 부러울 때가 많다. 살뜰하게 서로를 챙기는 부부의 모습도 아장아장 조잘대는 아이들의 소리도 보고 있노라면 그저 함박웃음 지어지는 예쁜 가족의 아름다움이다.

두 아이의 아빠로 살아가는 친구 녀석과 오랜만에 소주 한 잔을 기울였다. 나는 나대로, 그는 그대로 힘든 이야기 즐거운 이야기 고민하는 이야기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오래전 어느 날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주제를 말하는 나와는 달리 친구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아이들 이야기로 채워졌다. 만나지 못하고 지내는 사이에 부쩍 커 버린 첫째는 이젠 제법 아빠의 장애에 대해서도 이해하고 있다고 했다. 물건을 찾아주기도 하고 길을 안내하기도 하는 아이는 다른 친구들에게도 아빠의 장애를 별것 아닌 듯 소개하기도 한단다.

“우와! 대단하네. 잘 키웠네!”

감탄사를 내뱉는 내 반응이 좋았는지 “아내랑 내가 고생 좀 했지. 어려운 일도 많았고…” 하며 조금 으쓱해진 어깨를 하고 껄껄 웃는다.

“조립식 장난감이나 복잡한 종이접기는 내가 못 한다는 걸 알고 어떻게든 스스로 해결한다니까!”

“며칠 전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이야기를 이어가는 친구는 자식 이야기에 절로 신이 나는 듯 보였다.

“내가 수술 몇 번을 하면서 눈 모양이나 색깔이 조금 변했거든. 그걸 보고 둘째가 ‘아빠 눈은 왜 그래?’라고 자꾸 묻는 거야. 그런데 첫째 녀석이 둘째에게 뭐라고 한 줄 알아? ‘그냥 멋지다고 해!’”

생각지도 못한 아이의 말에 이번엔 정말 큰 탄성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맞다. 내가 모르는 다름에 대해 굳이 난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판단하는 것도 정확히 분석해서 솔직하게 평가하는 일도 서로에게 그리 바람직한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언젠가 조금은 낯선 스타일의 과감한 옷을 입고 나타난 친구에게도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멋지네!” 딱히 할 말을 찾지 못해서 내뱉은 단어였지만 그건 최선이었다. 분명 그 옷은 내 맘에 들지 않는 것이었지만 그렇다고 솔직히 말할 필요도 없었고 나의 패션 감각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라든가 친구의 센스에 비해 월등히 훌륭하다고 확신할 수도 없었다. 나는 그의 감각을 존중하면 되었고 그것은 “멋지네!”라는 한마디면 되었다.

다른 친구들도 그렇게 말했고 그들 중엔 나와 같은 판단을 한 녀석도 있는 것 같았다. 다들 멋지다고 하고 자꾸 보니 또 진짜 멋진 것도 같았다. 세상의 사람들은 의도한 대로 변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의도와 다르게 달라지며 살아간다. 내가 바라는 대로 원하는 모양으로만 존재할 수는 없다. 각각의 모습들은 그 나름의 시간을 견디며 만들어진 멋짐이 분명하다.

우리는 모든 다름의 고유성에 대해 멋지다고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다 낡은 옷을 빈티지(vintage)라고 하고 속이 들여다보이는 옷은 시스루(see through)라고 하고 천이 좀 부족해 보이면 섹시 패션이라고 하지만 내 어릴 적 고정관념에 비추어 보면 그건 가난한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입거나 옳지 못한 옷차림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이제 그것을 패션이라고 말하고 존중한다.

사람에게도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안구의 색이나 모양이 조금 달라도 팔이나 다리가 없어도 휠체어를 타더라도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멋지다고 하면 된다. 그것이 말하는 이에게도 듣는 이에게도 좋다. 그리고 실제로 모든 다름이 멋짐으로 인정되는 세상이야말로 진정 멋진 세상이다. 어설프게 배운 척하지 말고 아이처럼 말해보자.

“멋지네요!”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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