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수학 교사라고 나를 소개할 때면 많은 사람이 그 많은 공식을 어떻게 외우는지부터 물어보곤 한다. 수학을 잘한다는 건 공식을 잘 외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이라면 어느 정도는 그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 문제에 맞는 공식을 대입하고 결과로 나온 답을 찾아내면 높은 점수를 얻기는 하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내 생각은 아주 다르다. 정말 수학을 잘하는 사람은 공식을 만들어내는 사람이지 그것을 암기하고 이용하는 사람이 아니다.
공식이란 여러 번 같은 문제를 풀어본 사람들이 풀이 과정을 빠르게 진행할 수 있는 매크로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우리가 그 도구를 사용해서 문제를 풀어내면 시간을 단축해서 답을 얻어낼 수 있지만 그 문제가 가진 본질에는 다가가지 못할 수도 있다. 맛있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자동 기계를 사용하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정교하게 설계된 기계에 잘 갈아지고 볶아진 원두 가루나 캡슐을 삽입할 줄 안다는 것은 훌륭한 커피를 뽑아낼 수 있는 상황을 만들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기 작동법을 아는 사람이 정말 커피를 잘 만드는 바리스타라고 할 수는 없다.
많은 공식을 외우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커피머신의 설명서를 외우는 것에 불과하다. 정말 어려운 수학 문제는 문제를 해석하고 풀어내는 모든 과정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것처럼 최고의 커피는 결국 원두를 볶고 갈고 추출하는 과정이 장인의 손안에서 한땀 한땀 이루어질 때 가능하다. 그런 이들이 정말 수학자이고 바리스타이다.
‘인생의 공식이란 없을까?’라는 질문을 받았다. 수학 공식처럼, 커피머신처럼 삶에도 그런 것이 있다면 살기가 조금은 쉬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난 이미 사람의 삶에도 수많은 공식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어른들의 말씀이 그것이고 종교의 가르침이 또 그것이고 삶의 지혜를 담은 책들이 바로 그것이다.
먼저 세상을 살아낸 이들의 경험을 공유받는 것은 시행착오를 줄이고 더 나은 결과로 다가갈 수 있는 공식임이 틀림없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인맥을 넓히는 것도 좋은 평가를 받는 것도 인생 공식을 이용하면 조금은 수월하게 목표 지점으로 다가갈 수 있다. 그러나 정말 어려운 수학 문제는 어떤 공식을 대입해야 하는지 뻔히 보이는 문제가 아닌 것처럼 우리가 어려워하는 인생의 과제들엔 그런 흔한 공식이 적용되지 않는다. 공식이 존재하지만 내가 모르는 것일 수도 있고 이제부터 내가 새로운 공식을 만들어내야 할 수도 있다. 아직 모르는 것이라면 누군가에게라도 물어보고 책이라도 살펴보면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다행인 것은 과정이 어려운 문제는 있어도 답이 없는 문제는 없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어떤 문제든지 해결 방법은 만들어지고 그것은 다음번 같은 문제를 마주할 때 공식이 된다. 한 문제 한 문제의 수학 문제를 풀어가면서 좀 더 나은 수학실력을 갖추는 것처럼 인생의 어려움을 넘어서면서 우리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
내가 해결한 오늘의 문제는 다음번 사람들에게 공식이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멋진 작업이다. 보이지 않는 삶을 처음 마주했을 때 나의 마음은 공식 없는 수학 문제를 마주한 것과 같았다. 풀어낼 수 없을 것 같았고 답이 없는 것도 같았다.
그렇지만 아직 답이 없는 문제는 없었다. 어려웠지만 지나왔고 또 하나의 공식이 되었다. 난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는 교사이다. 조금 더 쉬운 방법으로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공식을 만들어 내는 정말 수학 잘하는 사람이길 원한다.
조금 다르게 사는 내 삶에도 공식 없는 과제들이 빈번하다. 느리지만 하나씩 해결되어 가는 나의 발걸음이 또 다른 이들에게 공식이 되는 삶이기를 바란다. 어느 유명한 수학자처럼, 세계적인 바리스타처럼 삶의 공식을 만들어 가는 인생 장인이 되고 싶다.
[더인디고 THE INDIG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