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우리 결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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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 위에 wedding 이라는 글씨가 적혀있고 그 옆에 반지 2개가 놓여 있다. ⓒ픽사베이
▲노트 위에 wedding 이라는 글씨가 적혀있고 그 옆에 반지 2개가 놓여 있다. ⓒ픽사베이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결혼을 준비하는 중이다. 늦은 나이에 드디어 평생을 함께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 응원해주고 지지해 주는 독자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나의 연애와 결혼 소식을 알리고 싶었다. 여느 연예인처럼 “아직 서로를 알아가고 있는 단계입니다. 조심스럽게 응원하고 지켜봐 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었고 “제게 너무 특별한 사람과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했습니다.”라고 발표하고 싶었다.

내 연애와 사랑을 자랑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고 살짝이나마 세상에 이름 내놓고 사는 사람으로서 알리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가장 가까이 있는 이들에게도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고 구체적인 결혼 준비의 시간까지 와 버리고 말았다. 비밀연애를 하려고 한 것도, 노력하여 숨기려고 한 것도 아니었다. 마음껏 드러내고 만방의 축복을 받을 시간이 내게 허락되지 않았을 뿐이다.

“여자친구가 생겼어요.”

“진지하게 결혼을 생각하고 만나보려 해요.”

라는 말을 슬며시 꺼냈을 때 가족을 포함한 내 주변 이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만세삼창이라도 외칠 만큼 기쁨 가득한 설렘과 축복이었지만 여자친구 주변의 반응은 거의 정확하게 그 반대 방향을 향해 있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는 친구도 있었고 결혼이라는 게 그렇게 급히 하는 게 아니라는 지인도 있었다. 머뭇거리고 부정하는 다양한 반응들이 있었지만, 장애인과의 연애나 결혼에 대한 부정적 반응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자친구 부모님과 가족의 반응이 그보다 더 호의적일 리 없었다. 그녀를 사랑하는 크기가 크면 클수록 반대하고 만류하는 적극성도 큰 것 같았다. 내 친구가 서두르라고 조언하면 그녀의 친구들은 천천히 가라고 이야기했다. 나의 부모님이 웃는 크기만큼 친구 부모님의 시름이 깊어져 갔다. 만천하에 알리고 싶었지만, 반쪽의 축제를 위해 다른 반쪽이 아파하는 것을 간과할 수는 없었다.

오랜 시간 장애라는 것에 무뎌지고 괜찮아졌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건 아무 소용이 없었다. 선배들의 경험과 조언을 들어가며 할 수 있는 노력을 해 보아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나 스스로 자부심 가지는 나의 매력이나 자신감 따위는 이 상황에서만큼은 아무런 작은 힘도 되어주지 못했다.

반대! 반대! 반대! 반대! 결사적인 거부반응들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축복받지 못하는 외로운 사랑을 견디는 여자친구를 지키는 것만이 유일하게 내가 움직일 방향이었다. 지킨다고 했지만, 사실 그마저도 그녀에게 큰 위로가 되지를 못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상황에서 많은 이들에게 나의 연애와 결혼을 알릴 수 없었음을 이해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답답하고 원망스러웠던 적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내 친구들의 말만 듣고 무작정 찾아가고 소리 지르고 애원하는 것이 답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정말 조심스럽게 하루하루 우리의 사랑을 지키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이해하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아무것도 아닌 말 몇 마디에 혹시나 하는 기대를 하기도 했고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는 근거 없는 희망도 가져보았지만, 아직 내가 받은 응답은 없다.

어느 날 조용히 앉아서 반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대해 가만히 이해해 보려고 노력해 보았다. 장애인! 그리고 그 장애인과 산다는 것! 그건 어쩌면 장애를 모르는 이들에겐 내 딸이, 내 친구가 장애인이 된다는 것만큼이나 큰 충격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장애를 가지지 않았던 내 어릴 적을 생각해 보면 장애인과 무언가를 함께 한다는 것은 그 일이 작은 것이더라도 큰 고민이 필요한 일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장애와 장애인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지만 그러기에 더더욱 그런 것들과 연관 지어지는 일은 실체와 관계없이 부정하고 싶은 일이었을 것이다.

장애인으로 살아가던 어느 날이라 하더라도 내 가족과 연관 지어지는 장애라는 말을 들었다면 나 또한 반대와 거부를 택했을지 모른다. 장애 아닌 선택지가 있는 문제들 앞에서 장애라고 하는 선택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결정인 것이 아직 많은 사람의 머릿속을 채우는 솔직한 마음이라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임이 분명하다. 장애를 마주하고 많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난 괜찮아지고 나아지긴 했지만 나도 내 가족도 그 처음의 시간부터 그렇지는 못했다.

분명 부정하고 분노하고 회피하고 우울했다. 벗어날 수 있었다면 억만금을 들여서라도 탈출했을 것이다. 지금 가족을 장애인에게 시집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녀의 부모님과 형제들의 심정이 그때의 나와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을 수 있다면 막고 싶을 것이고 그건 그동안 가져왔던 윤리 의식과 종교적 신념을 벗어나는 것이라도 아주 가능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와 내 가족이 그리고 내 주변이 나의 장애를 받아들이기까지는 정말 많은 시간과 경험과 깨달음이 필요했다. 울기도 하고 어이없이 웃기도 하고 화내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했다. 어느 세상에 장애를 가지자마자 껄껄 웃으며 사는 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은 나와 내 가족처럼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내 여자친구의 친구들 그리고 가족들에겐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난 언젠가 내 주변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을 이해하고 기다려줘야 한다. 화를 낼 때도 부정할 때도 우울할 때도 이해하고 기다리는 것은 이제 나의 몫이 되었다.

나는 내 여자친구를 누구보다 사랑한다. 사랑하고 또 사랑해서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했다. 너무도 당연히 그녀의 부모님도 나의 가족이고 그녀의 친구들도 내 친구이다. 내 부모를 공경하듯 내 친구를 사랑하듯 내 마음은 깊은 마음으로 그녀의 가족들과 친구들을 사랑할 것이다. 나를 받아들이고 사랑해 주실 때까지 난 기다리고 또 기다릴 것이다.

장애를 거부하는 이들은 많지만 결국 대부분의 장애인은 그 장애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기쁘게 살아간다. 난 내가 기다리는 모든 이들도 머지않은 시간에 그렇게 되리라고 확신한다. 나를 택하기 위해 너무도 무거운 짐을 견디고 있는 내 여자친구에게 감사하며 조금은 울퉁불퉁한 길을 걸어가는 우리의 인생 여정에 응원과 격려를 부탁드린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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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훈
1 year ago

선생님~그 길을 먼저 가봤기에 어느 누구보다 온맘으로 응원합니다!
누구보다 더 행복하실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