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현의 닮은 다름] 중증 CP 부부의 동유럽 패키지여행기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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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부다페스트 관광 지도 ⓒUnsplash
▲헝가리 부다페스트 관광 지도 ⓒUnsplash

[더인디고 = 김주현 집필위원]

▲김주현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
▲김주현 더인디고 집필위원 ⓒ더인디고

지난 3월 초, 코로나19로 미뤄두었던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혼인(‘결혼’이라는 용어는 성차별적, 일본식 한자 용어라 사용하지 않는다)하면서 옆지기와 5년에 한 번은 해외여행을 나가보자 이야기한 바가 있었다. 하지만 옆지기가 이직으로 두 달 가까이 쉬게 되면서 이때 아니면 또 일정을 잡기 어려울 것 같아 무리해서 휴가를 내서라도 추진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가까운 동남아 휴양지로 알아봤다. 일행 없이 우리가 직접 코스를 짜고 정보를 수집해야 하는 자유여행보다는 정해진 일정과 일행이 있는 패키지 상품이 더 안정적일 것으로 생각해, 괌에 다녀왔던 신혼여행, 혼인기념일 제주도 여행 때 의뢰했던 장애인 전문 여행사 ㈜어뮤즈트래블을 통해 패키지 중심으로 알아봐 달라했다. 그런데 항공료가 비싸져서 예전과 다르게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때마침 5년간 부어온 적금이 마감되는 시기라 금전적 여유는 좀 있었지만, 예상과 차이가 커서 고민이 되었다.

알아보는 김에 유럽 쪽은 어떤지 문의해보기로 했다. 어차피 돈 들여서 갈 건데, 알아보기라도 하자는 생각이었다. 업체 쪽에서는 유럽 쪽은 휴양보다는 관광 중심이라 걸어 다니는 일정이 많은데 그나마 덜 걷는 일정인 7박 9일, 동유럽 4개국(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 투어 상품을 소개해 주었다. 참고로 옆지기와 나는 비슷한 정도의 심한 뇌병변장애인으로 일상적으로 휠체어를 이용하진 않지만, 걸음이 느리고 오래 걷기 힘들다.

견적을 확인해보니 동남아 비용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차이가 없었다. 게다가 신혼여행을 체코 프라하로 갈까도 생각했는데 휴가를 길게 사용할 수 없어 포기했던 터라 구미가 당겼다. 여행이라는 게 돈과 시간이 맞아떨어져야 가능한지라 생전에 유럽 여행을 또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생각에 큰돈이 들더라도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어뮤즈에 구체적인 견적을 요구하자 부가세 및 수수료가 붙는다며 20%가량 비용이 추가되었다. 예상하지는 못했지만, 그 정도 지급 의사는 있었던 터라 그냥 진행하려 했는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현지 여행사에서 우리의 장애를 이유로 활동지원사나 별도의 인솔자 등 소위 ‘보호자’를 동반하지 않으면 패키지 상품을 이용할 수 없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의뢰한 어뮤즈는 자체적인 유럽 여행 상품을 가지고 있지 않고, 일반 여행사 상품 중에 적합한 상품을 찾아 연계하는 시스템이었는데, 해당 여행사에서 그런 조건을 걸어온 것이었다. 어뮤즈 쪽에서는 우리가 활동지원사가 없다면 우리 두 사람만 인솔할 별도의 인솔자를 보내줄 수 있다고 했다. 다만 그 인솔자로 인한 항공료나 숙박비 등의 추가 비용은 우리가 지급해야 하는 것이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보호자 없이는 비장애인이 이용하는 상품을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고, 비장애인은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별도의 인솔자 비용을 지급해야 하는 것도 불합리한 일이었다.

고민이 되었다.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 명백한 장애인차별 사안이었지만, 문제를 제기하게 되면 이 상품은 이용할 수 없게 되고 이 시기를 놓치면 휴가 기간 내에 이용할 수 있는 다른 유사 상품은 없었기 때문에 유럽 여행은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는 장애인운동의 당사자 활동가들이기에 더욱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우리는 일단 다녀와서 문제 제기하기로 했다. 어찌 되었든 평생 한두 번 있을지 모를 기회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계약이 진행되고, 거액의 비용을 결제하고, 불편함과 설렘이 뒤섞인 마음으로 동유럽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7박 9일간 현지에서는 45인승 버스로 이동하며, 전체 인솔자와 버스 기사, 현지 가이드의 비용은 계약에 포함되지 않아 현지에서 추가로 지급해야 했다. 이 비용은 상품 이용자 1인당 비용으로 계산된다. 하지만 우리는 어뮤즈 인솔자가 이용자를 포함해 3인 비용을 지급해야 했다. 그리고 전체 모집인원이 15명 미만이면 거기에 가산 비용까지 붙는다는 조건이 있었다. 결국 최종 인원은 우리와 인솔자까지 포함해 13명, 가산 비용까지 지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가산 비용을 청구한다는 이야기는 업체로서는 모집인원 미달에 의한 적자를 메우기 위함이겠지만, 고객으로서는 해당 스태프들이 모집인원이 15명 이상일 때보다 고객에게 더 신경 쓸 여유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어 추가 비용을 감수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기적인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모집인원 미달로 인솔자나 스태프들이 여유가 생긴다면 우리에게 신경 쓸 여유가 좀 생기는 것이고, 그러면 굳이 별도의 인솔자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더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어찌 됐든 가기로 했고 과정에서 불편함을 일으켜 여행을 망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일단 다 지불하기로 하고 여행길에 올랐다. 집에서 공항까지 이동, 비행기 탑승, 기내 서비스 이용, 현지 이동 등 관광 과정, 호텔 이용, 귀국, 공항에서 귀가에 이르기까지 과정 내내 여러 생각들이 들었다. 그런 생각들을 한편의 글로 정리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 몇 차에 걸쳐 기고할 생각이다.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자면, 이 문제를 여행사의 장애인차별 사례로만 접근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증장애인이 일반 패키지 상품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아무런 정책적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여행사에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어뮤즈에 많은 장애인단체와 개인들이 여행 의뢰를 해오는데, 대부분은 국내 여행이나 해외라 해봐야 가까운 일본이나 동남아 휴양지 정도라 했다. 유럽 관광을 의뢰한 고객은 우리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자신들도 내부적으로 회의를 거쳐 직원을 지원인력으로 파견하기로 했고, 우리를 시작으로 장애인들도 유럽 등 관광 중심의 여행을 할 수 있는 상품을 개발해볼 의향도 있다고 했다.

다시 말해 대부분의 장애인이 유럽 등 관광 중심의 장거리 해외여행을 시도할 꿈도 꾸지 못했고, 수요가 없으니 장애인에게 맞는 상품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일반 패키지 상품을 소개하게 되었고, 장애인 고객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일반 여행사 처지에서는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조건을 내걸었던 것이다. 실제로 상품설명에 보호자 동반 조건은 노인과 아동만 적시되었을 뿐, 장애인은 언급되지 않았다. 장애인이 패키지 상품을 이용하려 했던 사례가 없었던 것이다.

이번 기고를 통해 중증장애인들도 유럽이나 아메리카 등 관광 중심의 장거리 해외여행을 꿈꿀 수 있고, 그 꿈이 실현되기 위해 어떠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할지에 대해 함께 고민해가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바란다.

▲동유럽 여행 일정 1. /사진=김주현 집필위원
▲동유럽 여행 일정 1. /사진=김주현 집필위원
▲동유럽 여행 일정 2. /사진=김주현 집필위원
▲동유럽 여행 일정 2. /사진=김주현 집필위원

– TO BE CONTINUED –

사단법인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정책국장. 말장난을 좋아하는 언어장애인이며, 투쟁보다 투덜대기 좋아하는 활동가다. 끊임없이 존재의 이면을 탐구하고 실천하려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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