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준의 다름알기] 장애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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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하게 발버둥치면서도 당당한 백조 ⓒ픽사베이
▲치열하게 발버둥치면서도 당당한 백조 ⓒ픽사베이

[더인디고 = 안승준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안승준 더인디고 집필위원

난 자신감이 넘치는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어릴 적 웅변학원 보내시며 당당함을 강조하시던 부모님의 교육철학 덕분이기도 하지만 지금 나의 성격을 완성한 것은 장애가 가진 지분이 적지 않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으나 보이지 않는 난 스스로 나서지 않으면 어떤 역할도 부여받지 못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여기 이 짐 좀 날라 주실 분이 있을까요?”라고 어느 직장 선배가 말할 때도 “발표는 누가 하실래요?”라고 대학그룹 과제 역할을 정할 때도 “회장은 누가 하는 게 좋을까요? 추천해 보세요.”라고 어느 모임에서 대표를 뽑을 때도 내가 나서기 전에는 두 눈 멀쩡한 다수 대신 나를 대상의 우선순위로 보는 이는 없었다.

존재를 알리기 위해 온갖 짐을 나르고 작은 능력이라도 인정받고 싶어서 발표자가 되었다. 회장도 대표도 총무도 누가 뽑아 준 것이라기보다는 나 스스로 추천하고 내 의지로 자원했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에 가까웠지만 어느 틈에 자신감 넘치고 당당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장애가 아니었다면 조금은 더 소극적으로 살아도 되었을 삶은 장애 덕분에 용기 있고 리더십 있는 모양이 되었다.

그렇지만 장애라는 것이 다수의 사람들에겐 아직도 부족하고 부정적인 이미지로 인식되는 것 또한 현실이어서 새로운 낯선 이를 만날 때면 또다시 난 작아지곤 한다.

장애 가진 친구 하나 없는 대학에 입학했을 때도 그랬고 특수학교에 취업했을 때도 그랬다. 길을 찾는 것도 인쇄된 글씨를 보는 것도 어려운 내가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 사이에서 괜찮은 동료가 된다는 것은 그곳이 장애와 관련 있는 곳인지 아닌지조차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난 반강제적으로 겸손해져야 했고 적응하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해야 했다. 주어지지 않은 일도 찾아서 하고 다른 이들이 꺼리는 역할도 웃으면서 도맡았다.

장애가 아니었다면 조금은 더 거만하고 게으를 수 있었지만 그러기엔 장애 있는 내 환경이 그리 여유로운 상태가 못 되었다. 웃고 있었지만 즐기고 있는 듯했지만 물속 백조의 발버둥처럼 치열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장애 덕분에 당당했고 장애 덕분에 겸손했고 장애 덕분에 단단하게 성장했다.

요즘 결혼식을 앞두고 여자친구의 지인들을 종종 만나는 중이다. 상대적으로 덜한 분도 더한 분도 있지만 대체로 장애 가진 남자친구 소개하는 여자친구를 바라보는 시선은 우려와 걱정이다. 드러내 놓고 말은 못 하지만 시각장애인 남편을 맞이하는 것은 무언가 사정이 있거나 순간적인 동정심에 의한 것이라고들 생각한다.

장애 없는 이를 만난다면 어떤 남성을 택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나를 만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고들 판단한다. 난 매 순간 작아지지만 다시금 당당하게 나만의 매력 어필 방법을 찾고 겸손한 마음으로 물 아래 발버둥을 시작한다.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지만 덕분에 난 다른 이들보다 우리의 만남을 깊게 고민하고 성찰한다. 한걸음 한걸음에 최선을 다해야만 다른 이들만큼 보일 수 있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신중하게 살아간다.

내가 조금이라도 스윗하게 보였다면 그건 내 장애 덕분이다. 내 여자친구와 내가 보통의 커플들보다 좀 더 다정하게 보인다면 그 또한 장애 덕분이다. 앞으로 내가 그리고 우리 커플이 걸어가야 할 길은 또 다른 당당함, 겸손함, 발버둥이 필요할 것을 나는 안다.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많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도 안다.

지금도 오늘도 내일도 내가 장애와 함께하는 모든 시간 남만큼 살려면 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 장애로 인해 조금은 불편하지만 장애 덕분에 지금처럼 살 수 있었다. 나를 나아지게 해준 장애에 감사한다.

[더인디고 THE INDIGO]

한빛맹학교 수학 교사, "우리는 모두 다르다"를 주장하는 칼럼리스트이자 강연가이다. 밴드 플라마의 작사가이자 보컬이다. 누구나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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