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호의 차별 속으로] 기부 당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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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벚꽃 나무 아래 한 명의 여자 아이가 휠체어 위에 서서 하늘로 손을 뻗고 있다. ⓒ김소하 작가
▲봄날, 벚꽃 나무 아래 한 명의 여자 아이가 휠체어 위에 서서 하늘로 손을 뻗고 있다. ⓒ김소하 작가

[더인디고=이민호 집필위원]

이민호 집필위원
▲이민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맛있는 음식을 먹다가 혀를 깨물거나 카페에서 여유를 즐기다 테이블에 팔꿈치를 부딪쳐 본 경험은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행복한 순간에 깜빡이도 켜지 않은 채 끼어든 고통이기에 더 아프게 느껴집니다. 그러한 고통은 마음에도 찾아옵니다. 장애인 부부인 제 가족에게도 마음의 고통이 불쑥 찾아왔습니다.

5월 5일 어린이날이었습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저희 부부가 딸아이와 함께 유원지에 놀러 가기 위해서 지상철 3호선에 몸을 실었습니다. 지하철에 타자마자 저희를 훑어보는 시선들이 느껴졌습니다.

눈에는 성대도 없고 입술도 없기에 말을 하지 못합니다만, 느낌은 강력하게 전달되었습니다. 발끝에서부터 머리까지 뚫어지게 쳐다보는 시선 속에서 ‘대단하다….’ ‘불쌍하다….’ ‘어쩌다가….’라는 메시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시선을 뚫고 “쯧쯧쯧… 어떡해… 애가 불쌍해….”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지상철 내에 사람들이 많이 있고 아이와 함께 즐겁게 지내기 위해 나왔기에 무시했습니다. 타인의 일방적인 시선 때문에 오늘을 망치기 싫었고 평소에 자주 들었던 이야기인지라 익숙했던 탓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목소리와 시선을 뒤로하고 목적지로 향하기 위해 다른 호선으로 갈아탔습니다. 편견이 가득했던 지상철에서 내려 해방감을 느꼈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예고편에 불과했습니다.

옆 좌석에서 대견하다는 눈빛으로 저희를 지켜보던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 한 분이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다가왔습니다. 이윽고 “불쌍하고, 장하다”라고 말하며 아이 손에 지폐 1만 원을 쥐여주었습니다. 조금 전에 시선을 뚫고 날아온 목소리였습니다. 아이가 동그란 눈을 뜬 채로 저와 옆지기를 번갈아 쳐다보았습니다.

옆지기가 아주 정중한 목소리로 “할아버지, 이러시면 저희가 참 불편합니다.”라고 말을 하고 돈을 다시 돌려드렸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께서는 “좋은 마음으로 주는 거니 받아둬.”라고 대뜸 반말하셨습니다. 반말과 함께 가벼운 술 냄새가 났습니다. 다시 한번 더 정중하게 “요즘 유치원에서도 남의 물건이나 돈 함부로 받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아이가 혼란스러울 수 있으니 이 돈 다시 가져가 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더 큰 목소리로 “아니, 불쌍해서 어른이 주는 거면 받아야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희 부부는 장애가 있지만, 회사에 다니며 엄연히 4대 보험을 내고 있기에 ‘불쌍하다’라는 말에 동의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저희는 불쌍하지 않으니 돈을 다시 가져가세요”라고 답변했습니다.

승객들이 힐끔힐끔 저희 쪽을 쳐다보며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빨리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1만 원을 할아버지 손에 올려드렸지만, 급히 몸을 빼시는 바람에 바닥에 돈이 떨어졌습니다. 제 가족의 자존심도 바닥에 떨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실랑이가 벌어지는 와중에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자존심을 챙길 새도 없이 급히 내렸습니다. 뒤통수로 “배가 불러서 그렇지”라는 목소리가 날아들었지만 대꾸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문이 닫히고 서서히 움직이는 차창으로 할아버지가 저희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원망스러움이 가득한 눈빛이 점이 되어 사라져갔습니다. 할아버지도 지하철도 모두 사라졌지만, 수치스러운 기분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 새겨져 버렸습니다. 물론 장애인이 불쌍하다는 인식을 가지는 것은 개인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자신의 인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1만 원을 강압적으로 받은 것보다 더 수치스럽고 불쾌한 것은 과정에서 우리 가족이 ‘투명인간화’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에게 1만 원이 필요한지 정중히 물어봐 주셨어야 합니다. 하지만, 필요 없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기에 반드시 의사를 확인하여야 합니다. 애석하게도 저는 1만 원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중히 거부하였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있는 공공장소에서 반말하며 적선하듯이 돈을 주는 것은 상대를 존중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평소 유치원에서 어린이 대상 범죄 예방을 위해서 낯선 사람이 주는 돈과 물건은 받지 말라고 교육하는 데 그것을 수포로 만들어 버릴 수 있습니다.

질문과 동의가 없는 도움은 자신의 선함을 외부에 드러내기 위해 상대방을 ‘도구화’하는 것입니다. ‘너는 조용하고 내가 주는 돈이나 받아’, ‘감히 내 성의를 무시해’라는 자세는 상당히 고압적이고 폭력적입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자유도 존재하지만, 반대로 그 도움을 거부할 자유도 함께 존재합니다. 어떤 자유가 먼저인가는 논란이 있겠지만, 저는 거부할 자유가 우선한다고 생각합니다. 물 한 잔을 주더라도 ‘미지근한 것을 마실지?’, ‘뜨거운 것을 마실지?’, ‘차가운 것을 마실지?’ 상대방 의사를 물어봅니다. 도움과 돈도 물 한 잔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받을지 말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개인이 규정하고 있는 선한 마음과 행동이 타인에게는 수치스러운 것이 될 수 있으므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다가 깨문 혓바닥, 휴일을 즐기다 책상에 부딪힌 팔꿈치처럼 불쑥 튀어나온 고통을 안겨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의를 구하지 않는 일방적인 기부는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만족을 얻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상대방이 기부 당하는 마음을 느끼지 않도록 사회와 개인이 살피고 또 살펴야 합니다. 받는 이, 주는 이 모두 기쁘지 않다면 원래의 목적은 사라질 것입니다.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들에게도 부탁드립니다. 상대방이 기부 당하는 느낌을 갖지 않도록 한 번 더 생각해주시길 바랍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존엄이 있고, 거부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 글은 2021년 1회 작은책 생활글 공모전 장려상 수상작입니다.

[더인디고 THE INDIGO]

대구 지역 다릿돌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권익옹호 팀장으로 활동하는 장애인 당사자입니다. 국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장애 인권 이슈를 ‘더인디고’를 통해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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