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차법 시행 15년] 개정할 결심② ‘연대의 힘’ 다시 모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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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15주년 기념 토크콘서트. 앉은 자리 중심으로 왼쪽부터 염형국 인권위 차별시정국장, 김광이 마실 대표, 박옥순 발바닥행동 대표, 김동범 한국장총 사무총장 ⓒ더인디고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15주년 기념 토크콘서트. 앉은 자리 중심으로 왼쪽부터 염형국 인권위 차별시정국장, 김광이 마실 대표, 박옥순 발바닥행동 대표, 김동범 한국장총 사무총장 ⓒ더인디고

  • 우리가 가는 길이 역사’… 당시 활동가들 소회 밝혀
  • 시행 15? 면죄부 조항 등으로 유보된 15
  • 차별 진행 중이지만 차별·반차별 인식은 성과
  • “20년 전 결속력으로 전면개정 나서야한목소리

[더인디고 조성민]

대한민국 장애인도 ‘장애인차별금지법’을 가진 지 어느새 15년이 흘렀다. 공급자 중심의 서비스법만 존재하던 때 평등권을 기본으로 한 장애당사자 중심의 인권법을 가졌다는 자부심도 가질 만했다. 반면 지난 15년 동안 법 해석과 적용 과정에서 오히려 ‘있는 듯 없는 듯’한 아쉬움이 드러난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 달라진 장애인의 권리 의식과 다양한 사회 변화를 반영하는 새로운 ‘장애인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전면 개정 역시 새로운 과제로 부각됐다.

하지만, ‘개정할 결심’을 했어도 전면 개정은 법 제정만큼이나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11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15주년 기념 토크콘서트가 열렸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해 ‘우리가 가는 길이 역사’임을 증명하는, 당시 젊은? 활동가들이 무대에 섰다.
[더인디고]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함으로써 전면 개정의 지혜와 결심을 빌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장추련을 통해 짧은 시간 압축 과정에서 편집자 개인의 기억과 해석을 덧댔고, 중복 혹은 해석이 난해한 발언은 삭제했다. <편집자주>

무대에는 당시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장차법연대, 현 장추련)’를 이끌었던 활동가들이 올랐다. 박옥순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대표(전 장차법연대 사무국장), 김동범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사무총장(전, 공동집행위원장), 염형국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시정국장(전, 법제정위원), 김광이 상상행동 장애와여성 마실 대표(전, 법제정위 부위원장)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15주년 기념 토크콘서트.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15주년 기념 토크콘서트.

진행은 질문과 답변을 번갈아 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장차법제정연대, 배경과 성과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은 장차법제정연대의 산물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국내 역사상 전 장애계가 법 제정 하나로 연대의 틀을 유지한 경험은 이때가 처음이자 이후에도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당시 단체들이 차지하는 장애계 지형과 정치적 입장, 내부 사정 등을 감안하면 그 자체가 장애계 역사에 기록될 사건 중 하나로 꼽는다.”

단일대오를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김 총장은 법 제정 논의 당시만 해도 차별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음을 꼽았다. 이 과정에서 차별을 이해했고 적어도 법이 제정되면 ‘차별은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고 말했다.

연대체의 유지를 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김 대표는 참여 조직 간의 ‘동등한 의결권’을 가졌다는 것과 ‘실무책임자 중심의 집행구조’라며 즉 ‘평등이 인권을 낳는 성과로 이어졌음을 강조했다.

당시 조직 규모 등으로 볼 때 △한국장총, △장총련 중심의 정치 지형이었다. 여기에 △여성장애인과 △중증장애인, 그 밖의 조직을 △제3단체로 포함한 5개 그룹에서 공동대표 1인과 상집위 3인씩을 구성했고, 평등한 의사결정을 지향했다.

2004년 법안 구성 당시 변호사 1년 차였던 염 국장 반목과 갈등이 깊었던 장애인단체, 특히 장총, 장총련 등이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이 법 제정의 가장 큰 원동력으로 꼽았다.

그렇게 2003년 4월 15일 출범한 장차법제정연대는 결성 과정에서 참여 단체간 약속도 있었지만, 어쩌면 스스로 연대의 틀을 깰 수 없다는 자정 노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그 노력은 2005년 고 노회찬 의원의 대표 발의를 시작으로, 2006년 정화원·장향숙 의원의 추가 발의로 2007년 3월 6일 국회 본회의 통과 결실로 연결됐다.

■ 법 제정 과정에서 기억나는 대중활동과 성과는?

장차법제정연대가 결성되면서 활동가, 법률가 수십 명이 매주 모여 법조문 작업을 했고, 전국의 차별사례 등을 모아 이에 반영하기도 했다. 또 법안을 놓고 순회토론회와 정부, 국회와의 논의 등도 다양한 활동을 이어갔다.”

박 대표는 인권위, 차별시정기구, 청와대 세 키워드를 떠올렸다. 법 제정 논의 당시 권고에 그치는 인권위보다는 독립적 차별시정기구를 주장할 때였다. 하지만 청와대가 인권위로의 차별시정기구 일원화 방침을 정함에 따라 관련 논의에 대한 진정이 어려웠던 때다. 박 대표는 이 과정에서 인권위 점거를 통해 이슈화하면서 국회 보건복지위를 설득하러 다녔던 경험을 꼽았다.

법 제정에 참여했던 김 대표는 전국의 차별사례를 모으는 과정에서, 정작 일부 지인들조차 차별의 정의를 잘 모를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된 때였다고 회고했다. 이에 자신들이 경험한 불편 혹은 불쾌했던 내용을 모았고, 그 내용 대부분이 현재 법 제2장의 고용, 교육 등에 담겼다고 증언했다. 이어 여타 법률에서 전례가 없었던 ‘여성조항(제3장)’을 별도로 포함할 때 중증장애를 가진 남성들의 공감도 컸음을 소개했다.

이와 연결해 김 총장은 당시 일반적 법조문 형태와 다른 법체계를 만드느라 고생한 ‘박종훈 변호사(당시 법제정위원장)’와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여성조항’의 경험을 살려 UN 장애인권리협약에서 별도 조항을 끌어낸 ‘한국의 여성장애인 활동가 및 역할’ 등을 추켜세웠다.

■ 법 제정을 반대한 ‘경제계’ 대응 투쟁은?

진통 끝에 장애계 의견을 담은 노회찬 의원안은 국회 법사위에서, 이후 복지부 법안 중심의 장향숙 의원안이 복지위에서 논의되는 가운데, 국회 밖에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차별금지법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장차법만의 독립적 법안을 반대하는 세력도 있었다. 특히 경제계의 반대가 강했다. 법안이 기업가와 기업인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이유다.”

김 총장에 따르면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은 대놓고,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은 아닌 척하면서도 사실상 반대했다. ‘고용에서의 차별금지’가 주된 이유다. 당시 대화로는 풀기 어려웠다. 언론 역시 관심도 안 가졌던 때다. 결국 점거와 경총 앞에서 불을 지르는 위험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박 대표 역시 경제계를 토론의 장으로 유인하고자 했지만, 대화로 연결되기는 어려웠다는 것. 경총, 전경련, 상공회의소 점거하니까 언론도 주목했고, 대신 5400만원의 벌금 폭탄을 맞았다고 회고했다.

사회적 여론을 환기하는 데는 경제계 점거만은 아니었다. 염 국장은 포괄적인 차별금지법 일원화에 따라 연대 측도 위기를 맞게 되면서, 인권위를 점거했던 때를 꼽았다.

당시 인권위로부터 독립적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대한 찬성을 끌어내기 위한 전략으로 인권위 점거 여부를 놓고 서로 의견이 달랐던 때였다. 관련해 김 총장이 처음 제안했고, 전장연 박경석 대표는 당시 한나라당(야당)으로부터 공격받던 인권위 점거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는 후문이다.

■ 법 시행 15년의 성과와 이후 과제는?

박 대표는 결국 진정을 통해 차별 등을 끌어내기 위해선 인권위의 전담 인력이 필요했고, 실제 장애인차별조사 1, 2과가 생겼다며, 하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두 과 모두 인력이 감축됐다는 소식에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토론 주제인 ‘개정할 결심’처럼 전면 개정에 매진하되,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이 강하게 담길 바랐다.

염 국장도 차별을 모두 예상하고 법을 제정하기는 어렵다. 개정도 마찬가지다. 처한 상황에서 끊임없는 모니터링과 개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문제는 여전히 ‘법원의 시정명령 조치’는 15년 동안 10건 정도에 불과하다며 법원의 전향적 입장과 관련해 법원뿐 아니라 외부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법 시행은 15년 됐지만, 법 제정 때부터 사실상 유보된 것과 다름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 총장은 시행령 등을 통해 단계별 시행 혹은 면죄부를 줌으로써 15년간 유보해왔다. 미완의 과제 역시 장애계 몫이라며, 법 전면 개정을 위해선 당시의 결속력이 다시 필요한 때임을 시사했다.

인권위의 역할에 대한 중요성도 언급됐다. 김 대표는 앞선 의견에 공감하면서도 최근 서울시설공단의 인권침해 사례(장애인콜택시 안에 불법 녹음장치 설치)를 꺼냈다. 지난달 27일 인권위에 진정한 사건이기도 하다. 해당 사례를 빗댄 김 대표는 인권위가 차별에 대한 기각이나 각하 건수를 줄이고 좀 더 적극적으로 조사할 것을 주문했다. 또한 당장 차별로 판단할 수 없더라도, 그 맥락에 무엇이 숨어있는지를 결정문 등에 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법 제정 이후에도 차별은 여전하지만, ‘차별하면 안 된다’는 인식은 자리 잡았다는 것이 큰 성과(염 국장)로 꼽았고, 패널들 모두 진행 중인 차별을 제거를 위해서는 전면 개정에 의견을 모았다. 이 과정에서 반대 또는 더디게 하는 행위에 대한 자제(김 대표)와 15년이 지났어도 법에 애정을 느끼는 것은 장애 대중의 힘이었던 만큼, 다시 그 힘을 발휘할 준비를 하자(김 총장·박대표)는 것으로 ‘개정할 결심’을 다졌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15주년 기념 토크콘서트 단체 기념사진 ⓒ더인디고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15주년 기념 토크콘서트 단체 기념사진 ⓒ더인디고

[더인디고 jsm@theindig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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