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석의 잡썰] 내 ‘장애’는 얼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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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가격'이 '생명 가격'보다 높고 복지서비스를 통해 파생되는 비용은 누군가의 임금 등으로 쓰이는 만큼 장애인 정책 예산의 증가는 선순환되는 사회적 재투자의 비용 증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unsplash
▲'장애 가격'이 '생명 가격'보다 높고 복지서비스를 통해 파생되는 비용은 누군가의 임금 등으로 쓰이는 만큼 장애인 정책 예산의 증가는 선순환되는 사회적 재투자의 비용 증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unsplash

[더인디고=이용석 편집장]

지난 2001년 미국의 신자본주의와 국방력을 상징했던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이 민항기의 자살 테러로 속절없이 부서졌고, 2880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되었다. 당시 부시 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희생된 시민들의 유족과 부상자들의 피해 보상에 나섰다. 예산을 무제한으로 쓸 수 있는 9·11 희생자 보상기금을 설립했고 의회도 즉각 승인했다.

기금 운영자로 임명된 케네스 파인버그 변호사는 노회한 전문가였다. 그는 베트남 전쟁 과정에서 살포된 고엽제 피해를 본 25만 베트남 참전군인들에게 고엽제 제조회사가 1억 8000만 달러를 피해 보상하도록 중재하는 등 협상에는 이골이 난 전문가였다. 파인버그는 9·11테러 희생자와 그 가족들의 경제적 손실과 비경제적 손실에 기초한 보상 지급 기준을 설정했는데, 이 원칙을 통해 소위 ‘생명 가격’을 정했다. 파인버그는 9·11테러 희생자들의 비경제적 손실을 한 명당 평균 25만 달러, 부양가족 한 명당 10만 달러를 책정했는데, 황당하게도 이 비용은 근거 없이 임의대로 정한 가격이었다.

하지만 파인버그에게 경제적 손실을 정하는 것은 골칫거리였다. 경제적 손실은 희생자들의 임금을 기준으로 나이와 배우자 여부, 부양가족의 수 등을 감안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고액 연봉을 받는 희생자는 낮은 임금을 받았던 건물 관리인이나 주방 요리사 보조인보다 더 가치가 높을 것이고, 젊은이가 노인보다, 남성이 여성보다, 비장애인이 장애인보다 더 비싼 값으로 평가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결국 9·11테러 희생자 유가족들은 평균 약 200만 달러를 보상받았는데, 연봉 400만 달러 이상의 희생자 가족들에게는 640만 달러, 반면 최저 가격으로 책정된 희생자에게는 25만 달러가 지급되었다.

최근 울산과 광주의 공공병원 설립 계획이 무산될 조짐을 보이자, 전진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은 경향신문 칼럼을 통해 공공병원 설립의 이유를 ‘비용 대비 편익’으로만 계산하는 정부의 의료정책을 비판했다. 그렇다면 정부는 ‘편익’을 어떻게 계산했을까? 전진한 정책국장의 주장에 따르면, 한국개발연구원(KDI) 표준지침의 응급사망을 막는 ‘가치’는 사람의 노동생산성과 같은데, 그 계산법은 기대수명에 평균임금을 곱한 값이라는 것. 그렇다 보니 30대의 가치는 4억 1093만 원인데 비해 80대 이상 노인은 487만 원에 불과하다는 거다. 그래서 응급치료로 사망할 수 있는 사람이 중상자가 되면 8237만 원의 편익을 얻게 될 테니 결국 기획재정부가 정한 한 사람을 살리는 데 적절한 비용은 2억 2569만 원이다.

궁금했다. 그렇다면 KDI의 표준지침에 따른 장애를 가진 내 생명 가격은 얼마나 될까?

중증장애를 가진 50대 중반의 내 기대수명은 13.3년(중증장애인 평균 기대수명 69.3세-현재 나이 56세)이고 중증장애인 평균임금은 196만 원이니 이를 곱한 값인 2606만 원. 물론 나는 현재 임금근로자도, 연금을 받는 처지도 아닌-대부분의 중증장애를 가진 시람들의 처지– 상황이어서 정확한 생명 가격은 ‘0원’이다. 그렇더라도 그럭저럭 글값으로 밥벌이는 하고 있으니 평균치로 계산해도 무방할 듯했지만 2606만 원은 민망할 정도로 지나치게 적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장애 가격’은 제법 된다. 이를테면 내가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를 신청해 가장 이용자 분포가 많은 구간인 8구간에 포함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8구간은 월 364만 5000원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고, 이는 연간 4374만 원으로 내 ‘생명 가격’의 두 배 남짓이다. 장애인 정책 예산인 4374만 원은 돌봄 종사자의 임금과 관련 기관의 운영비 등 사회적 비용으로 충당되니 이들의 ‘생명 가격’에 내 ‘장애 가격’이 꽤 기여하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복지정책은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국가와 그것을 통해 이윤을 얻는 사람들에 의해 결정된다. 이를테면 장애인 이동권이나 건강권, 고용, 탈시설 등을 위한 사회적 인프라와 제도들은 장애당사자들의 호소와 주장으로 시작되지만, 정책 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에 대한 이윤을 챙기는 집단은 따로 있다. 올해 장애인 정책 예산 중에서 20% 정도만이 장애인연금 등의 직접 지원 예산이고 나머지는 인프라 구축이나 서비스 전달체계 운영비, 그리고 종사자들의 임금 등에 쓰인다. 그래서 내 ‘생명 가격’보다 ‘장애 가격’이 높은 이유일 테고 이 기이한 현상은 어쩌면 우리 사회가 ‘장애’를 이해하는 노골적인 관점이기도 하다. 아무려나 높은 가격의 장애를 가진 이들 모두 ‘존재’의 자긍심쯤은 가져도 될 듯하다.

[더인디고 yslee506@naver.com]

오래 전에 소설을 썼습니다. 이제 소설 대신 세상 풍경을 글로 그릴 작정입니다. 사람과 일, 이 연관성 없는 관계를 기꺼이 즐기겠습니다. 그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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