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영의 오늘] 사소한 선택으로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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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바람을 담은 돌탑들 Ⓒ더인디고
▲마음의 바람을 담은 돌탑들 Ⓒ더인디고

[더인디고=조미영 집필위원]

조미영 집필위원
조미영 더인디고 집필위원

“하진아, 엄마가 너 시설에 보내려고…”

더 이상 말을 못 하고 나는 울음이 터져 버렸다. 아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눈을 껌벅였고 남편과 딸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딸이 냉정하게 입을 열었다.

“엄마는 벌써 그렇게 울어 버리면 우리가 무슨 얘기를 더 할 수 있겠어?”

“어허이, 애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면 우짜노?”

남편도 내가 못마땅해서 눈을 흘겼다.

칠년 전쯤 엄마들이 종교 단체의 힘을 빌려 그룹홈을 만들려고 준비했다. 입주가 시작되었지만, 우리는 차례가 늦어 좀 더 기다려야 했다.

한때 나는 부모 없는 세상에서 아들이 살아갈 공간은 장애인시설이 답이라고 생각했다. 입버릇처럼 딸은 시집보내고 아들은 시설 보낸 뒤 평화로운 노년을 살 거라 말하곤 했다.

주위의 통제와 지시로 살던 아들은 성인이 되어 자기 결정권을 연습하며 자유로운 환경을 접하면서 표정이 달라졌다. 시설은 아니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룹홈을 함께 준비했던 몇몇 엄마들도 탈퇴하려는 사람이 생겨났다. 그러다 보니 인원 재정비 차원에서 탈퇴와 입주 의견을 물어온 것이었다.

가족 넷이 식탁에 모여 각자의 생각을 말하기로 했다. 내가 제일 먼저 말을 꺼내 아들의 의사를 물으려다 결국 말을 잇지 못하고 울어버린 것이다.

딸이 다시 물었다.

“하진아, 너 엄마 아빠랑 헤어지고 시설 가서 사는 거 어때?”

작은 소리로 ‘네’ 대답하는 표정에선 긍정이나 부정을 읽기 애매했다.

“그럼 호호 형님들이랑 같이 사는 건 어때?”

조금 더 큰 소리로 ‘네!’라고 했지만 아들의 속마음을 정확히 읽을 수는 없었다. 남편은 시설에 가는 것을 원하고 나는 반대하는 입장, 딸은 엄마 아빠의 결정에 따르겠지만 어디든 자신이 살고 있는 곳과 동생 거주지가 너무 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동생 만나러 가는 길이 가급적 쉬운 곳이길 바랐다.

자식을 시설에 보내고 한 달에 한 번 가다가 일 년에 한 번으로 바뀌면서 잊고 살까 봐 두렵다며 나는 또 울었다.

어차피 잊어야 할 때가 있는 법인데 미리 생각하고 그러냐며 남편이 나무랐다.

부모 없이 아들만 남겨진 세상을 생각하면 여전히 눈물이 먼저 나온다.

그렇지만 시설보다는 지역사회에서의 삶이 답이라는 생각으로 불안해하는 남편을 설득해서 탈퇴 의사를 밝혔다.

아들의 미래 보험으로 생각했던 곳을 접고 보니 지역사회에서 살아가야 할 하나의 길만 남았다. 여기 아니면 저기가 있다는 생각은 여기에 집중하지 않아도 차선책이 있다는 안도감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밖에 다른 길이 없다는 절박함은 일상의 긴장감을 높인다. 가족을 떠나 살기 위해서는 지원자의 도움을 하나라도 덜기 위해 스스로 해야 할 일들을 익혀 나가야 한다.

요즘 아들은 표정이나 말로 지시해야 행동하던 것들을 줄이는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 스스로 찾아서 움직이게 하다 보니 기다려 주는 시간이 길어진다.

어눌한 발음으로 말을 하고 싶어 하는 아들의 입을 보면서 단어 하나라도 정확하게 말해주다 보면 노력하며 사는 아들의 모습이 기특하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누군가의 날은 축하받는 날이다. 그래서 우리는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로 바꿔 말한다. 하루 종일 많은 행사가 줄을 잇는다. 시혜와 동정이 극에 치닫는다. 그날의 주인공들은 과연 그날만큼은 행복한지 모르겠다. 반짝 관심으로라도 행복하다면 다행이라고 말하려니 찜찜하다.

장애인 거주시설에 직접 들어가 살면서 그들의 삶을 그대로 실은 기사를 보았다. 지저분한 환경도 그렇지만 하루 24시간이 단조롭고 종사자의 퇴근을 위해 오후 5시에 저녁을 먹는다는 건 안타까웠다.

시설을 옹호하는 부모들은 있지만 장애 당사자는 시설의 삶이 좋다고 하지 않는다. 지체장애인으로 휠체어와 한 몸인 어떤 이는 시설이 좋다고 했다. 눈에 보이는 상황이 아니다 싶으면 신고하고 고소하는 걸 일로 삼는 남성이었다. 잘하는 종사자들을 칭찬하는 글도 구청 홈피에 게재하다 보니 종사자들은 이 남성의 눈치를 보며 그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이 정도의 인지와 상황 판단에 표현까지 잘 되는 사람이라면 시설의 삶이 그리 나쁜 건 아니다. 그럼에도 공동생활의 통제는 따라야 하니 개별 지원보다 나을 리 없다.

아들의 시설 입소 계획을 취소하고 느꼈던 약간의 불안감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 지금 사는 곳에서 음식 하나라도 본인이 원하는 것을 먹고, 휴일에 늦잠 자는 자유, 이른 아침 산책하면서 일출의 장엄함에 감동할 수 있는 소소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일상이 아들에게 주어지면 좋겠다.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준비하며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아들의 자립을 위해 오늘도 간단한 호불호와 선택의 기회를 제공한다.

“하진아, 우리 여행 가려는데 어때?”

“하진아, 이번 가족여행은 어디로 갈까?”

[더인디고 THE INDIGO]

가족과 함께 하는 일상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그 행복을 나누면서 따뜻한 사회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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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na@naver.com'
황숙현
11 months ago

최고입니다~~~!!! 멋집니다.

시설은
침대에 사람을 맞추기 위해 사람 다리나 목을 자르는 procrustes의 침대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