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호의 차별 속으로] 나는 사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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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이 조금 열린 상자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오고 있다. Ⓒ김소하
▲뚜껑이 조금 열린 상자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오고 있다. Ⓒ김소하

[더인디고=이민호 집필위원]

이민호 집필위원
▲이민호 더인디고 집필위원

얼마나 달려왔을까. 안개 가득한 버스 차창 밖으로 포천 할렐루야 기도원이라는 글자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지친 몸을 일으켜 어머니와 함께 관광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고 기도원 건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식당으로 향했는데, 김치가 들어간 칼국수를 배식하고 있었다.

배가 고픈 나머지 허겁지겁 저녁을 해결하고 본당으로 향했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과 함께 이동했다. 도착한 본당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넓었고, 이미 수많은 사람이 자리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긴장감과 소음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몇몇 분들은 행사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소리치며 두 팔 벌려 기도하고 있었다. 교회를 다니고 있었지만 이렇게 격렬한 모습은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나와 어머니도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어머니는 내 손을 꼭 잡고 “겁내지 마라, 조금만 참으면 병 낫고 뛰어다닐 수 있다”라며 말씀해 주셨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무대에서 찬송가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본당은 점점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다. 사람들은 공중으로 양팔을 벌린 채 있는 힘껏 찬송가를 불렀다. 바닥에 엎드려 ‘아멘!’, ‘주여!’, ‘할렐루야’ 같은 말을 반복했다. ‘하르르, 하르르’라는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자기 가슴을 부여잡고 오열했다.

찬송가 소리가 커지면서 단상에 하얀 옷을 입은 김계화 원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의 반응은 더욱더 격렬해졌다. 분위기를 잡는 김 원장의 설교에 신도들은 최면에 걸린 듯 기계적으로 ‘아멘’을 외쳤다.

설교를 마친 뒤, “하나님의 권능으로 사탄과 마귀에서 유혹된 이 땅의 인간들을 해방시켜 주겠다”라고 말했다. “오늘 믿음이 충만한 사람을 통해 치유의 기적을 보여주겠다”라고 말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50대 중반의 한 남자가 단상 위로 올라왔다. 일순간 장내는 고요해졌다.

두려움에 찬 남성 앞으로 김 원장이 터벅터벅 걸어갔고, 조수로 보이는 한 여신도가 남성의 웃옷을 젖혔다. 이후 김 원장은 신도들에게 그를 암 환자라고 소개했다. 소개가 끝나자마자 “낫는다”, “아멘”, “예수여, 예수여”와 같은 말을 큰 소리로 외쳤다. 장내는 김 원장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신도들은 그 소리에 또다시 열광했다. 타이밍 좋게 전자음으로 구성된 찬송가가 연주되기 시작되며 안수 의식이 시작되었다.

김 원장은 뱀처럼 “솨! 샤! 솨! 샤!”라는 목소리를 마이크 가까이 대고 내었다. 남성은 상하좌우 불규칙적으로 몸을 흔들었다. 최면이라도 걸린 것 같았다. 김 원장은 거침없이 그 남자의 가슴에 손가락 하나 정도의 상처를 냈다.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김 원장은 피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상처 부위를 자기 손톱으로 있는 힘을 다해 여러 차례 긁어냈다. 그럴 때마다 남성의 몸은 요동쳤다. 손톱으로 긁어내던 환부를 4번가량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그럴 때마다 온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그 와중에도 남성은 계속해서 ‘아멘’, ‘아멘’이라고 반복적으로 소리 질렀다. 보기만 해도 고통스러운데 남성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듯 몽롱해져 있었다.

남성의 가슴에 올려져 있던 김 원장의 오른손이 달걀을 잡은 듯 구부러졌다. 입에서는 계속해서 알 수 없는 주문이 흘러나왔다. 오른손 아래로 계속해서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피를 본 신도들은 광분했다.

주문을 멈춘 김 원장은 남성의 환부에서 작고 붉은 이물질을 하나 꺼냈다. 신도들에게 이것이 바로 ‘암 덩어리’라고 말했다. 말이 끝나게 무섭게 여기저기서 울음과 괴성이 튀어나왔다. 기도원 바닥과 천장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분위기에 취해 나도 장애를 벗고 비장애인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어머니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김 원장을 믿는 것이 아니라 나의 치유를 기원하시는 기도였을 것이다.

김 원장은 손바닥에 올려진 암 덩어리를 신도들에게 보여주며 단상 위를 누볐고, 공중으로 던졌다. 안수 의식은 이렇게 끝났다. 남성은 부축받으며 무대 뒤로 사라졌다. 남성이 사라진 뒤, 안수를 통해 몸속에 숨어있는 사탄을 꺼내고 싶다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권능을 얻은 나에게 믿음을 보이라고 말했다. 연설이 끝나기 무섭게 찬송이 시작되며 본당 이곳저곳에서 헌금함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느 하나 망설이지 않고 헌금함에 돈을 넣기 시작했다. 물론 어머니도 돈을 넣으셨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안수 세트를 판매한다는 홍보 안내가 나왔다. 판매 장소로 가니 물안수, 불안수, 잇몸안수 등과 같은 다양한 세트가 진열되어 있었다. 우리는 집에서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물안수 세트를 샀다. 면도기로 피부를 긁어내고 기도원 생수터에서 나오는 ‘능력의 생수’를 바른 뒤, 반창고를 붙이는 방식이다. 세트 구입을 마지막으로 버스에 올랐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어머니는 너의 장애를 낫게 하는 방법은 이것뿐이라며, 면도칼로 허벅지 살을 긁어냈다. 정말 고통스러웠지만, 왠지 내 몸속의 사탄인 장애가 사라질 것만 같았다.

며칠이 지나고 대구 할렐루야 기도원 관계자들이 집으로 찾아왔다. 안수를 잘하고 있는지 확인했고, 장애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주님의 권능을 입은 김 원장을 전적으로 믿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으로 방 중앙에 나를 두고 신자들이 동그랗게 나를 둘러쌌다. 이윽고 “사탄아 물러가라, 마귀야 물러가라”라며 큰 소리로 기도했다. 나에게 “아멘”과 “할렐루야”를 외치라고 시켰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여서 있는 힘껏 혼신의 연기를 펼쳤다.

그 뒤로도 할렐루야 기도원에 수차례 방문했고, 집에서 안수도 거르지 않았다. 물론 신도들이 방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 장애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러던 중 1993년 3월 MBC PD수첩 프로그램을 통해 김 원장의 안수 행위로 인해 신도들이 ‘매독’에 걸렸다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손톱으로 환부를 긁어 암 덩어리를 빼내었다는 것도 모두 자작극이었다. 이 소식을 마지막으로 할렐루야 기도원과의 인연은 끝이 났다.

이후 30여 년 동안 가슴에 묻고 살았다. 하지만 2023년 3월 3일 넷플릭스에 ‘나는 신이다’라는 다큐멘터리가 공개되며 묻혀있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특히 JMS가 저지른 범죄 피해자들의 증언을 보며 과거 김 원장에게 사기당한 나와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사탄이 아니라 피해자다.

어린 나를 기도원으로 데리고 간 어머니와 나을 수 있다고 기대한 나에게 아무도 돌을 던질 수 없다. 오히려 돌을 맞아야 하는 것은 사회에 깔린 장애에 대한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당시에는 장애를 치료하고 극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취급하고 장애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생각이 훨씬 더 팽배했다. 그러한 생각이 잘못된 신비주의 종교관과 만날 때 장애인들은 다시 제2의 할렐루야 기도원으로 가게 될 것이다. 제2의 김계화는 부활할 것이다.

의문이 드는 것은 과연 사이비 종교의 모델인 된 예수의 행위가 단순한 신체와 정신의 치료에 국한된 것이냐 하는 것이다. 나는 단순히 예수가 장애와 질병의 치료를 목적으로 진리를 설파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치료를 뛰어넘어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 치유가 목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치료가 신체와 정신의 정상화에 국한되어 있다면, 치유는 인간의 근본을 건드리는 사회적·민족적 치유 등을 의미한다. 성경에서 예수는 단순한 치료가 아니라 이 땅에서 차별 받고 억압 받는 이들을 만나는 것으로 그들의 모습을 가시화시켜 주었다. 사회적으로 부정하다고 취급당하던 이들과 예수는 직접 만났다. 그를 통해 몸을 뛰어넘은 영적인 해방과 사회적 회복을 선언한 것이다.

자신을 ‘접근 가능한 곳’에 자리매김하여 이 땅의 모든 이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개방했다. 장애인을 치료의 대상으로 차별하고 분리한 것이 아니라 함께 해야 하는 존재로 통합한 것이다. 어쩌면 예수는 모든 존재가 통합되어 살아가는 사회상을 제시한 것이 아닐까?

예수의 생각대로라면 나는 사탄이 아니라 하나의 사람이다.

[더인디고 THE INDIGO]

대구 지역 다릿돌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권익옹호 팀장으로 활동하는 장애인 당사자입니다. 국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장애 인권 이슈를 ‘더인디고’를 통해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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